가족까지 70여명 3년간 머물며 원자력연서 기술 배우고 공동설계 마쳐
SMART 기술 전수···"한-사우디 파트너십 공고히 해야"

#1 1970~1980년대 중반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된 한국 근로자들은 성실함과 끈기로 근무했다. 이들이 송금한 외화는 당시 오일쇼크로 위태로운 국가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원동력이 됐다.

#2 1986년 12월 14일 원자력설계기술자립을 목표로 44명의 연구진이 미국 소도시 '윈저(Windor)'의 컨버스천엔지니어링(CE) 회사로 파견됐다. 3년간 총 600여명이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한국형 원자력기술자립의 기틀을 마련했다. 

받기만 했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원자력 기술로 역사가 반전됐다. 국내 인력이 중동 건설현장 근로자로 일하며 외화를 벌어 들이고, 대규모 연구인력이 미국에서 기술을 배워야 했던 한국이 30여년만에 반대로 국산 기술을 해외 인력에게 전수하게 된 것.

2015년부터 3년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한국형 원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덕연구단지를 찾았던 사우디아라비아 연구진이 최근 공동설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모국으로 귀국했다. 

사우디 엔지니어와 관료 48명을 비롯해 가족 70여명이 대덕에서 약 3년간 거주했다. 이들은 연구소 인근 오피스텔 또는 신탄진의 아파트에서 거주했고, 자녀들은 국제학교(TCIS)에 보냈다.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익히며 한국 예찬론자가 됐다.

한국과 사우디는 지난 2015년 SMART 공동파트너십 구축에 합의한 이후 원자력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협력 분야는 원자력연이 자체 개발해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중소형 일체형 원자로 'SMART(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이다. 

스마트는 대형 상용원전의 10분의 1 규모인 100메가와트(MWe)의 중소형 원전. 배관없이 원자로시스템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 안에 배치해 배관 파손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원천 차단, 기존 원전대비 10배 이상 안전성이 증진됐다.

양국은 공동투자로 스마트 원자로의 사우디 건설과 해외공동 수출을 위한 건설전 상세설계(PPE: Pre-Project Engineering)을 실시하고 사우디 내에 스마트 원자로 2기 이상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건설 전 설계사업(PPE, Pre-Project Engineering)'이 진행됐다. 사우디 왕립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K.A.CARE)이 이 사업의 일환으로 파견한 사우디 엔지니어 48명을 대상으로 SMART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지난 5월 원자력연을 찾은 알팔레(H.E. AlFalieh) 사우디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 일행과 대전에 체류 중인 사우디 엔지니어의 단체 사진.<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지난 5월 원자력연을 찾은 알팔레(H.E. AlFalieh) 사우디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 일행과 대전에 체류 중인 사우디 엔지니어의 단체 사진.<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윈저' 경험 그대로 전수···공동설계 성공적으로 마쳐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서 보낸 3년이 만족스러운데 귀국하려니 아쉽습니다. 노심설계, 안전 해석, 열수력 검증시험 등 원자로 공동설계를 배우면서 한국의 원자력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사우디간 파트너십으로 양국 협력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합니다."(사우디 엔지니어)

"대덕연구단지 역사 이래로 이 정도 규모의 해외 연구진이 장기적으로 기술을 배워간 것은 전례가 없을 것입니다. 32년전 한국 연구진이 미국 윈저에서 기술을 배워 온 것과 같은 방식이죠."(김병구 박사)

사우디는 기술 확보, 인력양성을 위해 20대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연구자들을 한국에 파견했다. 연구진은 이론학습(Classroom Training), 원자로 설계. OJT(On-the-job Traing), OJP(On-the-job Participation)를 차례로 진행했다.

원자력연을 비롯해 산업현장을 다니면서 한국의 원자로 설계 기술을 배웠다. 그 결과물로 1만장에 이르는 사우디에 건설될 스마트 원전의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PSAR)를 만들었다. 사우디 연구진은 자국의 원전 건설시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사우디 연구진은 약 3년 원자력연에 파견되어 공동설계 훈련을 받았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사우디 연구진은 약 3년 원자력연에 파견되어 공동설계 훈련을 받았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한국표준형원전 개발 주역이자 국제협력 전문가인 김병구 박사는 "사우디에서 고학력 기술자들이 증가하는데 비해 첨단기술분야 일자리는 많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사우디는 원전 건설로 자국의 고학력 인력의 취업난을 해결하고 첨단 기술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향후 대형 원전 프로젝트의 예비사업자 선정을 계획하고 있다. 김 박사는 한국과 사우디가 원자력 기술로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 만큼 이 기회를 잘 살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한국과 사우디가 백년지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궁합을 가졌다"면서 "사우디는 기술을 자립·발전시키기 보다 수입하는데 관심이 있지만 상술이 좋기 때문에 우리와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박사는 "교육을 받은 사우디 연구진은 앞으로 현지에서 SMART 건설·운영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면서 "30년전 우리가 미국 '윈저'에서 배웠던 방식으로 사우디에 성공적으로 전수해 감회가 새롭고, 이 기회를 잘 살렸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병구 박사가 사우디 엔지니어가 귀국하기 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사우디 전통 향료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김병구 박사가 사우디 엔지니어가 귀국하기 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사우디 전통 향료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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