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순 목원대 교수 새통사 강의서 '성당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강연

성당의 매력에 빠진 박효순 교수. 그는 이날 강연에서 성당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강의했다. <사진=강교민 수습 기자>
성당의 매력에 빠진 박효순 교수. 그는 이날 강연에서 성당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강의했다. <사진=강교민 수습 기자>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25년간 여러 성당을 다녀왔다. 직접 본 성당은 준공까지 짧게 20~30년, 길게는 400년이 걸렸다. 성당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의 자발적 학습 커뮤니티인 새통사(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는 원내 '혼' 교육장에서 박효순 목원대 교수를 초청해 '넘볼 수 없는 유럽의 축적 : 성당과 수도원'을 주제로 지난 12일 제138회 모임을 가졌다.

성당은 그리스도를 위한 예배장소로써 천주교 공동체를 수용하는 곳이다. 박 교수는 25년간 150개의 성당을 돌아다닌 일화를 들려주며 강의를 채워나갔다. 그는 죽을 때까지 성당에 대해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 성당을 갔더니 40년동안 신을 위해 자기 재능을 다 바쳐서 성당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라며 "자기 인생 모두를 성당 조각에 썼다는 사실이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성당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당은 인간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 성당건축은 다른 예술과 달라서 조각, 그림 등이 집약돼 있는 종합예술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고딕양식 이전까지의 성당에는 만든이가 많이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성당의 매력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성당만을 위한 컨텐츠' 강의에 빠진 참석자들. <사진=강교민 수습 기자>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성당만을 위한 컨텐츠' 강의에 빠진 참석자들. <사진=강교민 수습 기자>
그는 성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밝혔다. 박 교수는 대학생 때 건축공학을 전공했지만, 철학에도 심취했었다. 호기심에 처음 접한 종교는 조계종. 여러 철학적 궁금증에 절을 찾다가 의문점이 해결되자, 그의 발걸음은 개신교로 향했다. 이후 개신교와 통일교를 거쳐 최종 종착지인 천주교를 만난다.

박 교수는 "어느날 서울 미아리고개를 넘자 혜화동 교회가 나왔다. 혜화동 교회가 울긋불긋 춤추는 것 같이 느껴져 발걸음을 멈춰세웠다"라며 "신부가 '6개월동안 교리를 배워보고 싫으면 그만둬도 괜찮다'고 하더라. 그걸로 우연히 성당을 접했고 성당이 철학과 미술이 다 들어간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빠져들게 됐다"고 전했다.

그렇게 그는 성당에 매료돼 유럽, 미국, 뉴질랜드 등으로 성당투어를 다니게 된다.

본인 스스로 일중독자라고 얘기하는 박 교수. 그는 건축사협회지에 4년 반에 걸쳐 성당에 대해 기고를 하기도 했다. 처음엔 20년을 쓰기로 마음 먹었는데 건축사협회지에서도 말릴 정도로 열성이었단다.

대전에서 성당건축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성당을 전공한 것에 대한 소회도 전했다. 성당 관련 일을 하며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됐다는 것. 박 교수는 "인간이란 정신적으로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고, 만족도 없더라"라며 "성당 관련 일을 하며 정신적으로 매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됐다"고 성당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은 박효순 교수가 새통사에서 소개한 성당 중 일부.

◆ 고딕의 파르테논 성당 '파리 노트르담(Notre-Dame) 성당'

노트르담 성당 전경과 첨탑에 위치한 가고일(Gargoyle). <자료=박효순 교수>
노트르담 성당 전경과 첨탑에 위치한 가고일(Gargoyle). <자료=박효순 교수>
1250년에 준공된 노르트담 성당은 프랑스혁명 중에 파괴되었다가 1879년 복원된다. 성당은 약 65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첨탑에 가고일(Gargoyle)이 있는 게 특징이다. 가고일의 흉측한 외모를 이용, 악한 영혼이 성스러운 교회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또 신앙심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런 괴물에게 먹혀버린다는 경고의 역할로도 사용되고 있다.

◆ 해골 성당 '코스트니체 세디렉(Kostnice Sedlec) 성당'

코스트니체 세디렉 성당 전경과 성당 내부에 해골이 쌓여 있는 모습. <자료=박효순 목원대 교수>
코스트니체 세디렉 성당 전경과 성당 내부에 해골이 쌓여 있는 모습. <자료=박효순 목원대 교수>
14세기 흑사병과 이후의 '후스전쟁'의 대량 학살로 수많은 유골이 성당 터 주변에 쌓이게 됐다. 이후 세드레츠키 신부가 약 4만 개의 해골을 발견해 1511년부터 해골을 성당 안 장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1870년 한 남작이 대저택을 지을 터를 물색하던 중 '코스트니체 세디렉(Kostnice Sedlec) 성당' 터를 발견해 저렴하게 구입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량의 해골과 어느 노 수도사의 유언장을 발견한다. 

유언장에는 "누군가 훗날 이 유골을 발견하면 가벼이 여기지 말아달라. 이 사람들은 죽어서 차가운 땅 위에 있었으니 따뜻한 곳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남작은 노 수도사의 뜻을 받들어 해골로 성당을 꾸미게 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 자연, 기하학 그리고 인간의 성당 '롱샹 (Ronchamp) 성당'

롱샹 성당 전경과 롱샹 성당 내부에 빛이 들어온 모습. <자료=박효순 교수>
롱샹 성당 전경과 롱샹 성당 내부에 빛이 들어온 모습. <자료=박효순 교수>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가 1955 완공한 롱샹 성당은 수용인원 최대 약 300명이다. 여느 성당과는 달리 내부 수용인원 규모가 적은데, 이유는 롱샹 성당은 그리스 신전처럼 제식을 올릴 수 있는 옥외 예배장소를 구상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축적 특징은 노아의 방주 혹은 모자를 쓴 수도자의 얼굴과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졌고, 성당 북서쪽 면은 일정한 빛의 입사를 위한 채광창이 있다. 일몰 때까지 성당 내부로 빛이 들어오는데, 단조로운 외부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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