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청년 부탁해 ㉘] 합성생물학 연구하는 이대희 생명연 박사
장염 치료, 지뢰 탐지 미생물 등···"참신한 활용법 찾기 중요"

이대희 박사는 "나에게 미생물은 냄새마저도 친근한 존재이며 삶의 일부"라며 "미생물을 이용해 다른 연구자가 시도하지 않은 연구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대희 박사는 "나에게 미생물은 냄새마저도 친근한 존재이며 삶의 일부"라며 "미생물을 이용해 다른 연구자가 시도하지 않은 연구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미생물은 아주 빠르게 번식해요. 저는 이 특징을 이용해 미생물과 거래를 합니다. '좋아하는 먹이를 줄 테니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빠르게 많이 만들어줘'라고요. 미생물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하는 일이 제 역할이죠."
 
이대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김장성) 박사는 미생물을 만든다. 이 미생물은 평범한 미생물과 다르다. 몸속에서 살다가 이상 증세를 발견하면 소변으로 신호물질을 보내고, 약물을 만들어 치료도 한다.
 
이렇게 미생물을 새롭게 설계해 공학적으로 활용하는 연구 분야를 '합성생물학'이라고 한다. 미생물을 만들 구성요소에 관한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이를 '부품'처럼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합성생물학은 국내에서 연구된 지 10년 정도 된 신생 학문이지만,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아 연구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주목하는 분야다. 이 박사가 합성생물학을 만난 것은 2010년, 생명연 바이오합성연구센터에서 연구 생활을 시작하면서다.
 
그는 "대사공학과 시스템생물학을 전공했지만, 그동안 미생물을 계속 연구했기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학문에 스며들 수 있었다"며 "이 분야는 연구 경쟁이 치열하지만, 다른 연구자가 시도하지 않은 연구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 장염 치료, 지뢰 탐지 미생물 등‧‧‧참신한 발상이 핵심
 
합성생물학 연구는 생물 DNA를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만들도록

이대희 박사팀은 주로 대장균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사진은 연구팀이 현미경으로 찍은 대장균. <사진=이대희 박사 제공>
이대희 박사팀은 주로 대장균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사진은 연구팀이 현미경으로 찍은 대장균. <사진=이대희 박사 제공>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DNA 조각을 합성·연결해 생물에 넣어주고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검증하는 단계를 거친다.
 
각 단계를 책임질 컴퓨터공학, 효소공학, 시스템생물학, 통계학, 나노바이오, 대사공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모여야 연구가 완성된다. 이 박사는 합성생물학 기술 개발과 대사공학적 활용을 주로 담당한다.
 
최근 이 박사가 시작한 연구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장내 미생물' 만들기다. 그는 "국내에서 장내 세균에 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합성생물학으로 만드는 시도는 없어 연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리가 만들 미생물은 장 속에 살다가 염증을 감지하면 형광물질을 생산해 소변이나 대변으로 내보내요. 사람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는 거죠. 동시에 염증을 치료하는 물질도 만들어 우리가 병원에 가기 전부터 장을 치료해요."
 
이때 미생물이 만드는 치료제는 캐모마일(국화과 식물)에 들어있는 '터펜'. 이 물질은 브라질에서 자라는 특정 나무에서만 얻을 수 있는데, 이 나무가 보호종으로 지정된 후로 화학적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이 박사팀은 화학물질보다 안전한 도구인 미생물을 통해 터펜을 대량생산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뢰를 탐지하는 형광물질이나 분해되는 플라스틱 등 미생물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은 다양하다. 이 박사는 "어디에 어떻게 미생물을 사용할지 참신한 발상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선배에게 배운 것···모험 택할 용기와 자유로운 소통
 

이승구 박사(오른쪽)와 함께. 이승구 박사는 팀 내에서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이대희 박사는 “이 박사님이 새로운 생각을 많이 뿜어내셔서 우리가 할 일이 많아지지만,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승구 박사(오른쪽)와 함께. 이승구 박사는 팀 내에서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이대희 박사는 “이 박사님이 새로운 생각을 많이 뿜어내셔서 우리가 할 일이 많아지지만,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 박사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자극을 주는 사람은 선배이자 스승인 이승구 박사. 그는 국내 합성생물학 연구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주역이다.
 
"어느 날 연구계획서를 들고 박사님을 찾아갔더니 이렇게 조언하셨어요. '1~2년 계획에만 맞추는 한정적인 연구에 안주하지 말고, 10년을 투자해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연구를 해야 한다'라고요."
 
이 박사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많이 배운다"며 "남들이 하지 않은 어려울 것 같은 연구와 안전한 연구 사이에서 갈등할 때 모험을 택할 용기를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대화는 거리감 없는 의사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박사가 "요즘 연구가 잘 안 돼서 기운이 없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이승구 박사도 허심탄회하게 그의 걱정을 말한다. 대화 주제는 연구와 일상, 가족 이야기를 넘나든다.
 
권위 없는 대화는 팀 문화로도 자리 잡았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전체 회의에서 직급에 상관없이 거침없는 토론이 오간다. 이 박사는 "학생연구원이 선배 의견에 다른 생각을 말한다고 해서 누구도 그 사람이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좋은 의견이 나오고 연구도 발전하게 되더라"고 평가했다.

"과학자로서 사회 기여하고 싶어"
 
이 박사는 여러 대외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올해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 회원으로 선발돼 젊은 시각으로 과학 정책에 의견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외에 과학 영재 멘토링과 대학생 현장실습 교육도 담당한다.
 
특히 과학 영재 멘토링은 의무가 아니지만, 이 박사가 자원해 시작한 활동이다. 그는 "조금만 투자하면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과학자로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바빠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 박사는 "앞으로 합성생물학과 과학을 국민에게 알리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면서 "새로 시작한 장내 미생물 연구에도 매진해 산업과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대희 박사 연구실 한쪽 벽에는 실험 계획과 강의 내용이 적힌 대형 종이가 붙어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대희 박사 연구실 한쪽 벽에는 실험 계획과 강의 내용이 적힌 대형 종이가 붙어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 이대희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식품생명공학으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합성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된 후 본격적으로 합성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미생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합성생물학 기술'에 관한 논문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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