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ITER 사무차장, 12일 핵융합연서 강연
단계별 목표 성공적 진행···70여개 시설 한번에 건설

"주변 지인들도 말렸습니다. 많은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프로젝트 자체가 복잡·난해했습니다. 모두가 어려울 것이라고 봤죠.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도전했습니다."

오는 2025년경 '인공태양'이 뜬다.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건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2일 핵융합연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이경수 ITER 사무차장은 국제기구에 합류한 과정부터 공정 현황,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설명했다.

핵융합에너지는 친환경·안전성·풍부함·고효율 등의 장점을 갖춰 미래에너지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중수소핵과 삼중수소핵이 초고온에서 결합해 헬륨과 중성자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프랑스 남부 생폴레듀랑스(Saint-Paul-les-Durance) 카다라쉬에서는 이러한 핵융합 발전의 과학·기술적 실행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핵융합실험로가 건설되고 있다.

이 사업은 인류 역사상 최장, 최대 투자의 국제 공동 과학기술 협력사업으로, 참여국만 미국, 러시아, EU, 일본, 중국, 인도, 한국 등 7개 회원국 35개 나라에 이른다. 

애초 ITER 국제기구의 계획은 2007년 시작해 2017년까지 실험로 건설을 완료하는 것. 하지만 국가 간 이해관계, 문화 등의 문제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자 주변에서 의심과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ITER 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공정률은 55%로 나타났다. 상황이 반전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이경수 사무차장의 역할이 컸다. 이 사무차장은 지난 2015년 ITER 사무차장으로 임명된 이래 연구장치 설계·건설·설치·시험·시험운전·시스템 운영 등 기술 부분을 총괄하고 있다.   

이 사무차장은 세계적인 핵융합 연구 전문가로 국가핵융합연구소장, ITER 이사회 경영자문위원회 위원장, ITER 이사회 부의장직 등을 역임했다. 

6월 기준 ITER 건설 현장 모습.<사진=ITER 제공>
6월 기준 ITER 건설 현장 모습.<사진=ITER 제공>
◆공정률 55% 넘어···디자인 설계 마치고 건설 본격화

"부임 당시 기초 공사만 되어 있었는데 현재 70여개 시설이 한꺼번에 건설되고 있습니다. 황무지였던 곳에 최첨단 시설이 건설되며 '혁명적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동안의 핵심 구성요소 설계 작업이 마무리되고, 850여명 임·직원을 비롯해 현장 3000명 등 총 5000여명이 투입되며 '인류 거대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경수 사무차장은 국제협력프로젝트가 본궤도로 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 변화를 위한 혁신과 KSTAR 건설 경험 등을 꼽았다.

이 사무차장은 부임 이래 ITER 프로젝트 일정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2035년까지 ​총 4단계에 걸쳐 단계별 접근 계획이 확정됐다. 계획안에 의하면 2025년에 첫 플라즈마 실험을 진행하고, 2035년까지 중수소-삼중수소 실험을 하는 것이 주요 목표로 제시됐다.

이 사무차장은 "중·장기적 목표 설정과 이를 현실로 이뤄나가는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라면서 "기존 계획을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하도록 수정했으며, 이를 반드시 지켜가며 건설 현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수정된 목표 아래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기부여를 끌어내는 것도 필요했다. 국제기구 특성상 강요나 지시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 사무차장은 현장 책임자로서 새벽부터 현장에 나오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KSTAR 건설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KSTAR는 ITER와 가장 유사한 초전도핵융합 연구장치이다. 핵융합연구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은 2007년 KSTAR를 완공하고, 이듬해 실험까지 성공적으로 해낸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이 거대과학 장치 건설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됐다.

ITER 참여 회원국은 주요 품목을 분담해 맡는다. 이 사무차장에 의하면 전 세계 40개국 300개 공장에서 ITER에 활용될 조달품목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초전도 도체, 진공 용기 본체, 열차폐체 등 10여개 품목의 조달을 맡았다.   

이 사무차장은 "KSTAR를 통해 한국 기술력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됐다"라면서 "ITER 건설은 위험 부담이 존재하고, 긴장감도 높은 작업이지만 KSTAR 건설 경험이 활용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거대 프로젝트만큼 과학적 어려움도 적지 않다. 실제 조달품과 현장에서의 성능, 규격 등을 맞추고 최적화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부품이 분할되며 코드, 표준, 인터페이스 등이 고려해야 한다. 또 로봇, 인공지능 등과 연계될 필요성도 있다.

ITER 회원국 각국에서 조달품목 개발이 속속 완료되고 있다. 러시아, EU, 한국, 일본(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에서 개발된 품목.<사진=ITER 제공>
ITER 회원국 각국에서 조달품목 개발이 속속 완료되고 있다. 러시아, EU, 한국, 일본(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에서 개발된 품목.<사진=ITER 제공>
최근 이 사무차장은 중국, 일본의 행보를 보며 위기감도 느끼고 있다. 중국은 자체적으로 핵융합연구로 건설을 추진하고, 다수 연구진들이 ITER 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일본 등의 기술력도 만만치 않다.

이 사무차장은 더욱 많은 국내 연구진이 ITER 국제기구에 참여해 경험을 쌓고, 이를 토대로 미래 한국의 핵융합발전소 실증화의 주역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 연구자들이 의사소통과 영어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자신을 충분히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융합 연구는 릴레이 마라톤이며, 과학적 열망을 표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전적 이지만 우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예순이 넘은 제 역할은 국제핵융합실증로(ITER)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후배 연구자들은 저보다 더 열심히 해서 핵융합연구의 상용화를 이끌고, 국내 핵융합 연구의 국제적인 위상을 공고하는데 기여해주기를 바랍니다."

이경수 ITER 사무차장이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강연하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이경수 ITER 사무차장이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강연하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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