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니콜라스 피초프 SARAF 프로젝트 책임자, 야니스 파파필리포우 CERN LHC 부위원장
전 세계 연구계서도 주목···"성공·실패 통해 배우고, 교류 활성화 기대"

세계적인 빔운영, 가속기 전문가인 니콜라스 피초프 이스라엘 SARAF 프로젝트 책임자(왼쪽)과 야니스 파파필리포우 CERN LHC 빔운전위원회 부위원장.<사진=강민구 기자>
세계적인 빔운영, 가속기 전문가인 니콜라스 피초프 이스라엘 SARAF 프로젝트 책임자(왼쪽)과 야니스 파파필리포우 CERN LHC 빔운전위원회 부위원장.<사진=강민구 기자>
"라온은 물리학 관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시설을 통해 도전적이고, 광범위한 분야의 물리학 연구를 할 수 있다. 전세계 연구 커뮤니티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국제 연구진과 함께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결과를 창출하기를 기대한다."(니콜라스 피초프 이스라엘 SARAF 프로젝트 책임자)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LHC(거대강입자가속기) 운영이 항상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2008년 초전도 케이블 전기저항 문제로 1년 반 가동을 중지해야 했다. 실패를 은폐한 것이 아니라 이를 인정하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도움을 요청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거대시설을 운영하다보면 언제든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라온이 계획, 연구 방법에 유연성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야니스 파파필리포우 CERN LHC 빔운전위원회 부위원장)

수소보다 무거운 입자들을 이온화해서 가속한 후, 가속입자의 표적과의 충돌로 핵반응을 일으켜 다양한 희귀동위원소를 생산하는 장치인 중이온가속기. 이러한 장치를 활용하면 희귀 동위원소 기반의 최첨단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가 지난 달 24일 발표한 계획에 의하면 대전 신동지구에 건설되고 있는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의 본격적인 가동에 앞서 국제공동연구기획사업이 추진된다.

계획안에 의하면 올해부터 4년간 4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우주의 생성원리 규명, 새로운 원소, 희귀동위원소, 암흑물질 등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 계획이 수립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해외 이용자그룹의 참여와 해외 가속기 관련 연구기관과의 협력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최근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단장 정순찬)이 주최한 '2018강입자빔역학워크숍' 참석차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빔운영, 가속기 전문가들은 첨단과학 연구를 위한 거대 과학 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라온의 성공적인 건설과 가동을 위한 조언을 건넸다. 

◆거대시설 필요성? 응용과학, 재료공학 등 획기적 진전 가능

현실적으로 거대시설을 운영하게 되면 연구비 투자가 집중되게 된다. 해외 전문가들은 과학에서는 소형과학(Small Science) 만큼 거대과학(Big Science)에 대한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첨단 연구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대시설은 시설 규모답게 보다 큰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지식의 발전이나 기술의 스핀오프(spin off)를 통한 산업계 발전의 꾀할 수도 있다.

실제 이스라엘 소레크핵연구센터가 구축하고 있는 연구용 양성자‧중양성자 초전도선형가속기 SARAF(Soreq Applied Research Accelerator Facility)는 다량의 고속 중성자와 방사성 핵종들을 만들어내 희귀 핵반응 연구와 방사성 신약 연구개발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니콜라스 피초프 이스라엘 SARAF 프로젝트 책임자는 "라온은 최첨단가속기 시설로 천체물리학, 핵물리학, 우주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가능하며, 뮤온스핀완화기를 이용한 물성과학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니콜라스 책임자는 "거대 시설은 대학, 인근 연구소 등이 협력하는 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라면서 "작은 연구실들이 상호간 연결되고 협력이 활성화되면서 다수 연구자들이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CERN LHC에서는 지난 2012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규명하기도 했다. 이론적으로 예측되었던 것을 실제 검증하면서 거대 시설의 중요성을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야니스 파파필리포우 CERN LHC 빔운전위원회 부위원장은 "라온을 통해 지식확장과 기술 발전, 산업 발전 등을 추진할 수 있다"라면서 "핵물리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응용 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거대시설은 지역, 사회, 종교를 초월해 기술발전과 평화 구축에도 활용될 수 있다.

야니스 부위원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되었던 유럽이 협력해 성과를 창출하고, 과학의 발전을 이끄는데 CERN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면서 "CERN을 롤모델로 한 입자가속기 'SESAME' 프로젝트나 그리스, 불가리아, 터키 등 발칸반도 국가들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방사광가속기 관련 프로젝트도 거대시설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평화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중이온가속기 사업부지(왼쪽)과 시설배치도(오른쪽).<자료=IBS 제공>
중이온가속기 사업부지(왼쪽)과 시설배치도(오른쪽).<자료=IBS 제공>
◆라온 국제적 연구 거점으로···안정적 예산지원, 국제협력, 홍보 등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라온이 거대시설인 만큼 쉽지 않은 건설·운영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했다. 가령 거대 시설을 설계하고 이에 맞춰 건설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다. 또한, 사용자가 약속한 시간에 가속기를 운전하는 과정에서 높은 상태의 가동성을 지속적으로 운전하는 것도 요구된다. CERN LHC 운영에서도 가속기가 최상의 조건으로 운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성능 향상 논의와 개선점을 찾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니콜라스 책임자는 "거대시설이라 건설·운영 과정에서 제한된 인력, 예산, 경험 등을 주위에서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보다 짧은 시간에 국내의 최대한의 역량을 조합해 건설·운영하면서 국제 자문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야니스 부위원장은 "라온이 기술적 도전을 지속하면서 발생하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과정도 필요하다"라면서 "해외의 경험많은 전문가를 불러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꾸준히 도움받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통한 정부·대국민 설득과 안정적인 예산지원 등도 라온의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로 꼽았다. 

니콜라스 책임자는 "CEA(프랑스원자력청) 등에서도 기관공개일(Open house)을 설정해 개방하고 있으며, CERN에서도 2차세계대전 이후 분쟁을 딛고 과학적인 협력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의사소통이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야니스 부위원장은 "정부의 안정화된 예산 지원, 신뢰와 감시체계 구축, 대중 설득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국내외에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후학 세대 설득 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시설 사용자의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면서 "라온에 해외 사용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미래 첨단 연구를 위한 국제 연구 거점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은 국내 기초과학의 글로벌 경쟁력 기반 마련과 가속기 활용 우수 연구자 양성을 위해 지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조 4314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사업 규모는 약 29만평 부지에 2만 7000평 건축면적을 활용한다. 건물은 총 14개동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건설된다. 

중이온가속기 활용 영역.<자료=IBS 제공>
중이온가속기 활용 영역.<자료=I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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