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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의 '20년' 숙원···원자력에 數를 놓다

수학연 산업수학혁신센터-한수원 고리1발전소 협력···"핵연료취급공정 개선으로 수천만원 절감"
핵연료 삽입체 위치 변경 등 통해 예산절감 가시화
"한 도시에서 여러 도시로 이동하는 비용값이 모두 주어졌다. 이 경우 최소비용으로 각 도시를 단 한 번씩만 방문하고 첫 시작점으로 돌아오기 위한 이동 순서는 무엇일까?" 

'외판원 문제(Traveling Salesperson Problem)'의 정의다. 최적화된 조합을 찾기 위해 수학의 계산 복잡도 이론에서 주로 활용되는 개념이다. 그동안 이론으로만 머물렀던 수학이 산업수학으로써 연구현장뿐만 아니라 기업 혁신, 산업계 응용에 접목되고 있다.  

판교에 위치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소장 박형주)의 산업수학혁신센터는 지난해 개소한 이래 산업계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문제발굴부터 해결까지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공정 불량을 감지하는 알고리즘 고도화 작업, NCS 기반 직업 매칭, 통계패키지 프로그램 코딩 등에 수학적 모델링을 활용하면서 산업 현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부터 진행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1발전소(소장 박지태)와의 협력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고리2호기를 대상으로 선형계획법을 이용한 핵연료 삽입체 재배치 방법 개선을 통해 예산절감 등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학연 연구진은 직접 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저장조 현장을 둘러보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양 기관 연구진들이 고리1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조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양 기관 연구진들이 고리1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조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수학의 산업적 활용성 체감···성공 경험 타 발전소 전파 계획"

수학연과 한수원, 양 기관의 협력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상일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 차장의 고민과 의지가 컸다. 

안상일 차장은 지난 2년여 전부터 핵연료 삽입체 재배치 방법 개선 방안을 고민해 왔다. 그는 초등학생 아들과 수학축제에 참가하면서 전시부스에 마련된 '검은 말과 흰 말의 자리 바꾸기 게임'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퍼즐 게임과 발전소 문제가 유사하다고 느낀 그는 수학연으로 연락을 하게 됐다.

안 차장은 "사실 수학 분야와 원자력계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산업수학혁신센터를 소개받아 김민중 박사와 통화하게 되었으며 문제를 정리한 문서를 전달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세미나, 발전소 방문 등을 수시로 하면서 문제 해결이 진행됐다. 처음에는 냉담했던 주변 반응도 뜨겁다. 현재 타발전소 12개 팀에도 성공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발전소에서는 원자로를 500일 운전한 이후 1달 정도의 정비기간을 1주기로 갖는다. 수학연 연구진이 제시한 해결책을 활용하면 매 주기마다 10분 정도의 정비기간 단축이 가능해진다. 국내 원전 23호기 중 도입 가능한 7개 호기에 동일하게 적용할 경우 총 70분이 절감된다.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수천만원 수준이다.

이번 협력을 계기로 다른 분야 협력도 추진될 예정이다.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 있다. 원자로에 연료를 배치할 때 여러 주기(Multi-cycle)를 고려한 효율적 배치 방법을 찾기 위한 수학적 개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방법이 도입된다면 1개 호기에서 약 500일마다 500억원에서 700억원이 소요되는 신연료 비용의 일부를 절감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가동되고 있는 23기의 원자로에 적용되면 경제적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안상일 차장은 "수학연 연구진과 협력하면서 수학이 이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업적에도 활용성이 높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타분야에서도 이러한 협업에 관심을 갖고 안전성과 경제성을 겸비한 효과를 창출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산업수학혁신센터 연구진들의 단체 사진.<사진=강민구 기자>산업수학혁신센터 연구진들의 단체 사진.<사진=강민구 기자>
◆ 산업수학 활용해 발전소에 활용···최소 경로 이동 탐색

일반적으로 원자력발전소는 핵연료 배치 모형에 따라 핵연료를 원자로에 장전해 약 18개월간 운전한다. 이후 약 1개월 간 핵연료 교체와 발전소 정비 등을 수행하는 계획예방정비가 실시된다. 이러한 활동은 매 주기마다 반복돼 실시된다.  

계획예방정비 과정에서 인출된 핵연료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에 보관된다. 전체 핵연료 중 일부에는 삽입체가 장착된다. 삽입체가 장착된 핵연료는 손상도 등에 따라 그룹별로 구분돼 위치를 변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중기를 이용한 위치 변경 과정에서 작업자 경험에 의존한 교체 작업이 주로 진행돼 왔다. 그런데 이 거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이동거리를 최소화할 경우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수학연 연구진은 지난 11월 한수원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이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게 됐다. 행렬, 확률론, 편미분방정식 등 다양한 수학 이론을 전공한 연구진들은 이를 위해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논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진들이 가장 먼저 고안한 해결책은 거리에 대한 행렬을 만들어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는 방법이다. 가령 33개의 삽입체가 33개의 핵연료로 재배치되는 경우의 수를 분석하면 33계승(팩토리얼)에 해당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수치가 나온다. 

특정량의 샘플을 추출해 분포도 작성 등의 방법이 논의되던 상황에서 내부 회의를 거쳐 외판원 문제 해결 방식이 도입됐다. 김 박사는 이 방법을 통해 최소값을 구하고 1차 솔루션을 도출해 발전소 측에 전달했다. 이어 발전소별 제한 조건과 안전문제를 고려한 최적화 방안이 수립됐다.

한수원 측과의 협업을 담당한 김민중 수학연 산업수학혁신센터 박사는 "전공한 확률론을 기반으로 데이터분석 도구인 R, C언어 프로그래밍을 학습하면서 실제 산업현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서 "문제 해결과정에서 팀 차원에서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최적화 방안 수립과정에서는 수학연 연구진이 직접 고리 원자력발전소 현장을 둘러보면서 문제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기존 회의에서 도출된 문제점과 달리 실제 현장탐방을 통해 새로운 변수가 드러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 추가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인형뽑기처럼 단순히 옮겨 시간을 최소화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중기가 움직이면서 가로, 세로 각각 움직이는 속도가 달랐죠. 현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결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예상보다 큰 변수였습니다."

기중기의 변화 뿐만 아니라 각 발전소별로 상이한 현장 조건도 걸림돌 중 하나였다. 김 연구원은 이 변수에 맞춰 유클리디안 노름(Euclidian Norm)을 사용한 거리 공식을 만들어 새로운 해결책도 제시했다.  

김 박사와 함께 정재원 박사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위치 입력자료 세팅 등을 담당했다. 특히 마모도 상태에 따라 구분되는 삽입체에 대한 좌표, 거리 추출 등 전체 구간 코딩 작업이 실시됐다.  
정재원 박사는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여러번 사용하면 안되는 삽입체 정보들을 세팅해서 구분 활용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수작업하던 것이 데이터화되면 실수할 확률이 감소하고 과학적인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 "다만 현재 데이터가 고리2호기에 맞춤형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제한조건이 다른 각 발전소마다 최적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학연은 지난해 2월 고리발전소와 군소 문제 해결을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다. 이번 협력 성공을 계기로 발전소와의 연계도 추진된다. 김 박사는 앞으로 수학연구자의 생태계가 확장되기를 기대했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더 많은 스타트업, 기업 등과 연계되었으면 합니다. 연구실에 머물렀던 수학이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수학적인 접근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응용될 수 있습니다. 수학연 판교센터가 새로운 사업을 위한 산업 수학 허브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고리발전소에서 열린 양 기관 연구진들이 논의하고 있는 모습.<사진=김민중 박사 제공>고리발전소에서 열린 양 기관 연구진들이 논의하고 있는 모습.<사진=김민중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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