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이기주의에 빨간불···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돼야
과학자, 주인의식 갖고 건강한 생태계 만들어야

대통령이 파면됐다. 

이유는 주어진 권력을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해 국민을 위해 써야 했으나 '지속적으로' 사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개선 여지가 안보여 그만두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게 헌법 재판소의 파면 선고 요지이다.

헌재의 탄핵 인용 선고 과정을 보면서 과학계의 현실이 떠올랐다. 미래부로 대표되는 과학 관료들은 과학 행정을 올바로 해서 국민들의 복리 증진에 기여하라고 자원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과연 신의성실 원칙에 의거해 과학행정을 하고 있는가? 혹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탄핵 심판 전후에 나온 신문 기사들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게 몇 개 있다. 그 중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관료가 타락하면 상부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획일적 사고가 만연하면서 관료제의 목표(직무 중심의 인사 관리와 조직 관리, 규칙과 절차에 의한 행정,효율성 제고)는 사라지고 수단만 살아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관료제는 국민을 억압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갑질의 먹이사슬로 변할 수 있다. 상부 권력자에 아부하고 중심과 목표를 잃어버린 폐쇄적인 관료제 조직은 국민이나 직원들을 섬기는 조직이 되지 않고 이너 서클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다.

그러면 결국 심판을 받고 일반 대중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이번 국정 농단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과도한 규제를 통해 지대(rent)를 추구하면서 기득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굴러가는 게임의 룰을 혁파하고 개방적인 행정과 포용적이면서도 공정한 제도를 시행하고 성과에 따른 신상필벌, 자신이 결재한 업무에 대해서 철저히 책임지는 관료조직을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중앙선데이 3월 6일 김성국 이화여자대 교수)

"대통령 말 한마디가 공직사회에 법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낡은 권력 풍토, 그런 권한을 남용하는 대통령의 잘못된 권력 인식, 불과 몇 %를 더 득표했을 뿐이나 100%의 권력을 휘두르는 승자독식 정치, 그로인해 죽기살기식 진영 싸움이 구조화된 정치체제 모두가 탄핵된 것이다."(조선일보 3월11일 사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신과 다른 이익과 의사와 대화하고 포용해야 한다. 이런 전제 없이 경쟁만으로는 되는 일이 없다."(중앙일보 3월11일 최장집 교수 대담)

위의 기사들을 요약하면 '관료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고,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작금의 과학계 현실이 그러한가?

모든 일에 있어서 인사(人事)는 중요하다. 일이 되게도, 안되게도 하는 출발점이고 동시에 정점(頂点)이다. 사람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계에는 중요한 인사가 두어개 있다. 하나는 과학기술 정책기획의 큰 틀을 정하는 기관의 인사이고, 다른 하나는 40년동안 수십조원을 쏟아부은 대덕특구의 생태계를 담당하는 자리에 대한 인사이다.

그런데 이 인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위의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관료 내부 이너서클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과학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선 과학기술 정책기관에 대한 인사를 살펴보자. 기관의 이름은 KISTEP이고 과학기술 기획 및 평가를 하는 중요기관이다. 인력도 200여명이 넘고 예산도 500억원이 넘는다. 

이 기관의 신임 기관장을 선임하면서 2배수까지 압축돼 최종 결정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있다. 탄핵 인용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계속 진행될지, 두 달뒤 탄생할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진행 중인 사안이다.

이 기관은 미래부로서는 손발과 같은 기관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산하기관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그런데 이 기관의 전임 기관장이 상급기관인 미래부와는 갈등 관계에 있었다. 공무원들 숫자가 많아 불필요한 간섭이 심하다는 언론 인터뷰도 해 관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이후 연임 여부를 둘러싸고도 법적 다툼까지 갔다.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나 미래부는 이번에는 확실하게 자신들 수중으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미래부 관료 출신으로 다른 기관에서 임기가 끝난 사람을 행정부처 차원에서 밀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위한 기반 조성 작업을 하면서 이사회 이사진의 자율적 판단을 어렵게 하는 편파적 개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현행 이사진이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 인물들이 있는 만큼 임기 만료 등으로 새롭게 이사진을 구성하며 자신들의 의중이 관철될 인사들로 채우려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 주장의 타당성은 이사진 명단이 발표돼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다음일 것이다. 합리적 이사진 구성에 의해 과학계의 자율을 높이는 방향이 바람직한데 그와는 반대로 관료 이기주의로 흐르며 결국 국민을 위한 과학과는 거리가 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게다가 이 기관 부설기관으로 과학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KIRD란 조직의 차기 기관장을 거의 같은 시기에 뽑는다. 그 자리에 미래부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는 설(說)도 관료 이기주의의 한 사례로 거론된다. 

더욱이 전문성이 요구되고 임기제인 과학계 기관장이란 자리를 중간에 그만두고 옮기는 셈이 돼 더욱 인구에 회자가 되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의 결정이기도 하겠지만 배후에는 미래부가 자신들 몫이라고 생각하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일들이 국민들과 과학자들을 위한 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들을 위한 행정의 대표적 사례들로 여겨지며, '이너 서클'을 챙기는 행위는 대통령 탄핵 결정을 계기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대덕특구 관련 인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의구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덕특구는 1974년 첫 삽을 뜬 이래 한국 과학기술의 중심지로 매년 엄청난 액수의 투자가 이뤄졌다. 세계 최첨단 수준의 장비가 설치됐고, 1만5000여명의 고급 두뇌가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후발주자인 중국의 중관촌 혹은 선전(深川)이나, 하다못해 독일 통일 이후의 드레스텐 정도의 성과도 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만큼 더더욱 제대로 된 행정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곳이 특구로 지정된 것이 2005년. 그로부터 특구본부, 특구진흥재단 등으로 형태를 바꾸었지만 기관장은 기재부나 미래부 등 관료들이 맡아왔다. 관료 기관장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관장은 소임을 하기도 했으나 그렇지 못한 기관장이 더 많은만큼 제대로 된 인사가 돼야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며 창업을 강조하자 연구소 기업이란 것에만 집중을 했을 뿐 생태계 조성은 외면해왔다. 그 결과 내부에서는 구성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 됐다. 임기 만료로 후임 인선을 하는 과정에서 국회 청원 등의 행위가 있었다. 과학기술계 초유의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 결과 1차 공모가 무산되고 재공모로 들어가고 이전에는 없던 서치 커미티도 가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밑으로부터의 추천은 원천 봉쇄된 것이나 다름 없고 시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탁 및 외압을 이유로 서치 커미티를 비공개로 한 것은 물론이고, 이들 외에는 추천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널리 인재를 발굴하라는 서치 커미티의 본래 취지는 사라졌다는 것.

우리나라는 강대국들간의 힘 싸움과 4차 산업혁명이란 퍼펙트 스톰에 놓여있다. 드론과 자율차, AI, 빅 데이터 등등에 있어 대안을 내고 세계를 주도해야 할 대덕이건만 실상은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돼 있다. 

때문에 대덕특구 차기 이사장의 3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헤쳐나가는 조타수 역할을 해야하는 중차대한 시기이다. 그러려면 이 지역을 잘 알고, 여전히 큰 힘을 갖고 있는 관료들과도 잘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 요구된다. 특구 구성원들과의 소통은 물론이다. 특구 문외한이 올 경우 새롭게 지역 상황을 파악하고 조직을 장악하는데만 1년도 넘게 걸린다. 

그런데 특구도 잘 알면서 관료도 잘 아는 인물은 공개 과정에 응모를 안할 확률이 높다. 자신들의 경험칙으로 내정자가 있는데 지원해서는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져놓은 인간관계만 다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특구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창구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는 결코 인사권에 대한 침해가 아니다. 책임 있는 기관이 자신들이 아닌 국민을 위한 인사권을 행사해달라는 간청이다. 이번 탄핵에 있어 헌재의 선고 취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는 링컨이 밝힌 바와 같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이고 행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탄핵은 기존 권위주의에 대한 탄핵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은 권력을 국민을 위해 행사할 것이라고 믿으며 다소의, 아니 좀 큰 불편이 있어도 참아왔다. 개인은 불편해도 전체는 이득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행태는 그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보면서 신뢰가 무너졌고, 그 부분에 실망해 그동안 참았던 것에 대해 근본적 회의를 갖게 된 것이다.

과학 행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은 연구비가 세금으로 나오고 그것을 관료들이 국민들을 대신해 집행한다고 보고 좀 의아한 점이 있어도 참아왔다. 또 과학계 일부에서는 관료와의 결탁을 통해 이득을 보기도 하며 그들이 오피니언 리더가 되어 불만을 잠재우기도 했다. 

여기에 이공계 특유의 내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도 한 몫을 해서 편파 행정, 혹은 관료를 위한 독재가 일부 가능했다. 이는 앞으로도 일정부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탄핵 인용이 의미하는 바는 이제는 과학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비인 세금을 내는 국민을 생각하는 연구를 해야 하고, 과학계 생태계를 과학자들 스스로 건강하게 만들고, 국민들도 과학의 즐거움을 알도록 노력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총에서 내는 '과학과 기술' 3월호에서도 차기 정부에 있어 탈관료주의와 과학자들의 자립을 과학계의 중요 이슈로 거론한다.

선진국 과학자들을 보면 자신들의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국가 공동체가 어디로 나아가야할 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불의에 대해 저항하며, 연구 생태계를 스스로 만들어 왔다. 뉴튼,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등등의 대과학자들도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면서도 사회의 방향에도 늘 관심을 가졌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의 하나가 공익이고 이타심이다. 

독일의 4차 산업혁명도 국가 경쟁력을 고민하면서 나온 결과이다. 최근에 참가한 AAAS 연차 총회에서도 정권의 비과학적 판단에 대해서는 과학계가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았다. 게다가 연구가 거대화되며 개인 차원의 연구 시대는 끝났다. 국가 내에서도 융합을 해야하고, 더 나아가서는 글로벌 연구를 해야한다. 더 이상 자신의 실험실에만 만족해서는 큰 성과를 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관료들 갑질의 먹이 사슬이 깨지고, 이너 서클이란 그들만의 리그는 해체되고, 진정으로 과학을 연구자의 품으로,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러려면 촛불에서 보듯이 공동체 구성원들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과학정책에 대해서는 약간의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과학계 인사에 대해서는 인사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있다고는 여겼지만 애써 눈감아 왔던 것이 우리 과학계의 풍토였다. 내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과학 행정에는 눈 감은 결과가 관료 이기주의로 귀결됐다.

이제는 생태계가 건강하게 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연구개발비에서 KISTEP이나 특구진흥재단 등 산하기관에 쓰이는 비용이 적지 않다. 이 돈들이 효과적으로, 과학자와 국민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는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국민이 대상에서 주인으로 바뀌었다. 주인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 존재이다. 만들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조건을 만드는 존재이다. 헌재의 판결은 과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들이 바꾼 역사를 과학기술자들이 채워 국가가 더욱 건실해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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