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S 현장에서 ① - 과학정책 거버넌스의 미래는?]
트럼프 과학등한시 우려···지구의 날 대규모 시위 등 대응 고조
오바마 과학리더십 주목···美 백악관, 과학정책 어떻게 다뤘나?

세계 최대 과학지식 교류의 장 AAAS(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연례대회. 2월 16일 보스턴에서 개막했다. 21일까지 5일간 펼쳐지는 AAAS 연례대회는 이번이 183번째다. 2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현장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트럼프 정부 출범의 영향이다. 이민제한 조치 등으로 미국 과학기술계가 우려와 혼란 속에 과학을 위해 결집하는 상황이다. AAAS 집행부가 시의적절하게 새로운 정부의 역할을 묻고 토론하는 ‘과학정책을 통한 사회 기여’라는 주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 결정과 과학커뮤니케이션, 기후변화 이슈 등 사회 변화와 관련된 과학기술자 역할에 대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깊고 풍부한 토론 속에서 미국 과학의 저력이 베어 나온다. ‘AAAS 현장에서’ 기획보도 시리즈를 연재한다. ▲과학정책 거버넌스 ▲미국 과학계의 목소리 ▲과학외교 속 한국 ▲과학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실전팁 ▲AAAS 대표 인터뷰 ▲과학을 즐기는 현장 화보 등 다양한 현장소식과 이슈를 전할 예정이다.<편집자의 편지>

17일 하인스컨벤션센터. '미국 백악관의 과학정책은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까'의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사진=김요셉 기자>
17일 하인스컨벤션센터. '미국 백악관의 과학정책은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까'의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사진=김요셉 기자>

"오바마 정부에서는 최대한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과학정책 자문에 참여를 하도록 노력했다. 연구기관과 에이전시, 과학학술단체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끝까지 충분히 의견을 내고 수렴한 과학정책이 실행되도록 노력했다."

"트럼프 정부에서는 우수한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을 떠날 것으로 심히 우려된다.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과학정책 추진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학의 진실성 훼손을 막기 위해 과학계가 적극 사회와 소통하고 더 높은 차원의 강한 커뮤니티로 진화해야 한다." 

지난 17일 오후 3시(미국 동부 기준) 보스턴 하인스컨벤션센터(Hynes Convention Center). 미국 과학기술자들이 새로운 정부,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정책 역할을 토론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200여 좌석을 가득 메우고도 부족해 바닥에 앉아 토론에 임했다.  

18일 트럼프 시대의 과학적 순수함을 방어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특별세션. 빈틈이 없을 정도로 토론장이 가득찼다.<사진=김요셉 기자>
18일 트럼프 시대의 과학적 순수함을 방어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특별세션. 빈틈이 없을 정도로 토론장이 가득찼다.<사진=김요셉 기자>
다음날 18일 오후 4시 쉐라톤보스턴호텔에서 열린 트럼프 시대를 맞아 과학과 과학적 진실성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열린 특별세션에서도 토론 열기가 뜨거웠다. 앉을 틈이 없을 정도로 토론장이 가득찼다. 

특히 과학자들은 존 홀드렌(John P. Hodlren)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 과학보좌관이 발표한 오바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결과를 주목했다. 

홀드렌 오바마 대통령 과학보좌관.<사진=김요셉 기자>
홀드렌 오바마 대통령 과학보좌관.<사진=김요셉 기자>
오바마 정부 초기부터 최근까지 8년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을 겸한 홀드렌 과학보좌관은 과학정책의 합리적 조정을 위해 다수 과학기술자들의 참여를 통한 정책 조화를 강조했다. 

그는 "국가 과학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기관과 에어전시, 과학학술단체 등에서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해 과학정책 리더십의 기반을 만들었다"며 앞으로 미국 백악관의 새로운 과학기술 참모진이 이끌어 가야할 과학정책 관점을 피력했다. 

홀드렌 과학보좌관은 과학자들의 집단 참여를 통한 과학정책을 기반으로 오바마 정부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교육에 따른 우수 인재들의 유입과 배출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고, 과학적 증거를 기반한 진실성 있는 혁신정책을 몰고 나갈 수 있었다고 평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의 백악관 과학정책 4대 핵심 주춧돌로 기초과학 투자와 과학인프라 확대, STEM 교육 활성화, 혁신친화적 과학정책 추진을 꼽았다. 

그러나 현장 과학자들은 오바마 정부는 이제 끝났고,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이 된 트럼프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강하게 실감하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 거버넌스 무용지물, 이민제한 조치 등에 대한 강한 우려

오바마 정권의 과학정책 방향이 트럼프 정부에서도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미국 과학기술국(OSTP: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고위 관료를 역임한 케리앤 존스(Kerri-Ann Jones) 뉴욕시립대학 교수는 오바마 정권에서는 OSTP가 확실한 역할을 했지만, 트럼프 시대에는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OSTP는 대통령의 국가 과학아젠다와 정책을 챙기며 보좌하는 역할을 맡는 민간 중심의 독립된 조직이다. 존스 교수는 백악관 과학보좌관도 임명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배 아래 OSTP가 제대로 운영되기 힘든 상황임을 우려했다.

홀드렌 과학보좌관 역시 앞으로 기초과학과 기후변화 연구, STEM 등과 같은 과학기반과 관련된 사항들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홀드렌 과학보좌관은 "백악관이 과학기술에 대한 서비스를 잘 하려면 과학적 마인드가 더욱 많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면서 과학자들의 정책 참여구조를 강조했지만 "그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여 위험을 느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제한 조치도 과학자들 사이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플로어에서 온 식구가 이민자라고 소개한 한 연구자가 이민제한 조치에 대한 비판섞인 질문을 하자, 바트 고든(Bart Gordon) 전 미국 하원의원은 "이민자들은 실리콘밸리 발전에 엄청난 막대한 기여를 했다"며 "이민제한은 말도 안되는 조치"라고 일갈했다. 

고든 전 의원은 "과학기술은 부가가치가 높은 혁신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우수인재를 영입해 협력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은 국가사회적으로 이미 합의점이 형성돼 있다"며 "오히려 영주권을 줘서라도 젊은 이민학생들을 영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스 교수 역시 "과학기술은 이동성과 글로벌 가치가 중요한데 자유로운 왕래를 막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 反트럼프 시위 좋은점과 나쁜점?···"과학, 모든 면에서 부각돼야"

과학정책 전문가들은 대안 중심으로 과학계가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 토론했다.<사진=김요셉 기자>
과학정책 전문가들은 대안 중심으로 과학계가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 토론했다.<사진=김요셉 기자>

AAAS를 비롯한 미국 과학기술계 단체들은 오는 4월 22일 지구의 날 'Stand up for Science'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전례가 없던 미국 과학계의 이번 시위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토론 열기가 더 달아올랐다. 
 
과학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선 이번 시위가 좋은 점은 미국 과학기술계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과학의 진실성과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에 집중된 시위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흘렀다. 또, 기존 과학기술 커뮤니티에 강한 신뢰가 형성돼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공유했다. 반면 과학계가 또 다른 이익집단으로 비춰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관점도 제시됐다.

그런 가운데 앞으로 과학계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 대안중심의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르위스 브랜스콤(Lewis Branscomb) 샌디에고 캘리포니아 대학 글로벌정책전략대학원 교수는 더 높은 차원의 과학계 커뮤니티의 진화를 주문했다. 트럼프는 과학적 결과와 성과를 좋아할 것이기 때문에, 과학계가 이번 기회를 삼아 좀 더 경제적이고 혁신적인 강한 협력을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계가 과학자와 엔지니어링, 의료계 등 다양한 그룹과의 협동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며 기존 보다 더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다양한 교류를 펼쳐나가길 주문했다.

스콜 글로벌 위협기금(Skoll Global Threat fund)의 에이미 루이어(Amy Luers) 박사는 "단기적 차원에서 과학에 대한 위협에 적극 반응해야 하며, 장기적 차원에서는 결국 과학계가 공공의 이익에 더 참여하고, 과학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스 교수는 대중의 참여와 이해를 위해 과학자들에게 "과학이 모든 면에 눈에 띄도록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과학에 접근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에 소외된 국민들을 위해 큰 그림의 과학계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과 과학기술자들이 연구과정에 대한 익사이팅한 스토리를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홀드렌 과학보좌관은 "과학자들이 과학정책에 대한 정보를 더 공유해야 하며, 자신의 일과중 10%를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등 공적 영역에 활용하라"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그는 "이번 캠페인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걸 끝까지 긴 호흡으로 캠페인을 전략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론 현장에 있던 과학자들은 지속적으로 주도적 참여를 통해 과학의 역할이 모든 면에서 부각되고, 일반 대중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데 큰 뜻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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