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울대 석좌교수 부임 '세르주 아로슈'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

아로슈 교수는 사제 간에 3세대에 걸쳐 노벨상을 수상하며 만들어진 '신뢰 기반의 창의 연구'를 노벨상 수상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았다. <사진=정윤하 기자>
아로슈 교수는 사제 간에 3세대에 걸쳐 노벨상을 수상하며 만들어진 '신뢰 기반의 창의 연구'를 노벨상 수상의 가장 큰 배경으로 꼽았다. <사진=정윤하 기자>
"내가 연구자로서 경력을 시작했던 1970년대는 제안서를 써서 프로젝트를 하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나의 지도교수, 또 그의 지도교수 역시 노벨상을 수상한 분들이었는데 그들은 젊은 연구자들에게 '자유로운 생각(Free Thinking)'을 강조하며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라'고 신뢰를 보여주었지요. 그리고 연구에 대해 분별력을 가지고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계속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과학자에게 제안서를 쓰도록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과학자를 믿지 않는다는 건데, 요즘 젊은 과학자들처럼 그런 환경에서 연구했다면 나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프로젝트로만 진행한다면 창의력 있는 생각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세르주 아로슈(Serge Haroche) 꼴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 교수가 지난 4일 오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이하 한림원)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 환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신뢰의 우산(umbrella) 아래서 자유롭게 연구한 것이 가장 주효했다"며 "이러한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올바른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아로슈 교수는 제안서(proposal) 및 프로젝트 기반의 미국식 연구방식이 기초연구의 창의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미국의 벨연구소(Bell Laboratories)를 예로 들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3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연구소인 벨연구소도 과거에는 연구소장(director)에게만 보고하며 자유롭게 연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벨연구소의 보일(Willard Boyle)과 스미스(George Smith)는 1970년 발표한 디지털 카메라 핵심 기술인 전하결합소자(CCD) 센서로 200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만 이미 벨연구소에서 해당 부서는 없어진 상태였다.

그는 "프로젝트 기반으로만 연구하면 창의력 있는 생각과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들이 나올 수 없다"며 "어떠한 연구들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오늘날 GPS 등의 기술이 1960·70년대 자유로운 기초과학에서 나왔듯이 지금 기초과학을 하지 않으면 미래과학기술 유산은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 역시 옛날처럼 신뢰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연구를 하기 쉽지 않고 미국 과학자들 또한 마찬가지"라며 "올바른 과학정책을 통해 양극단의 시스템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기자간담회의 진행 및 통역을 지원한 제원호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1970년대 미국의 연구스타일이 바로 들어오며 한 번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없다"며 "우리도 아로슈 교수의 조언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첨언했다.

아로슈 교수는 1967년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까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서 연구원으로 있으며 파리제6대학(UPMC)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40여 년간 양자물리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두 개의 완벽한 반사거울 사이에 단일광자를 파괴하지 않고 포획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고안, 양자역학의 중첩상태를 구현하고 관측하는 길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그의 연구결과들은 현재 광전자 및 광통신 과학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연구진들이 회로양자 전기역학(Circuit QED)이라는 새로운 물리학 분야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또 양자컴퓨터, 양자암호기술 등 관련 분야의 다양한 연구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양자컴퓨터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받았다.

그는 "내 노벨상은 최근 10년간의 결과물이 아니라 20년 넘게 장기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러 가지 기술들이 발전하는 것을 배우고 적용한 연구에 대한 것"이라며 "양자물리학이 활용도(capable) 및 신뢰성(credible)이 높은 과학 분야이긴 하지만 20년 후에 무엇이 가능할지 미리 알 수는 없었음에도 연구의 공백 없이 장기간 기초과학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했기 때문에 혁신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양자컴퓨터가 언제쯤 가능할지 질문을 많이 받는데 언론에서 나오는 예측과는 달리 10년 안에는 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양자컴퓨터는 '매우' 아름다운 아이디어지만 이를 안정화 하는 것은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어려울 뿐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아로슈 교수는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교수 시절 제자였던 제원호 교수와의 인연으로 올해 서울대 석좌교수로 부임했으며, 한림원이 국내외 세계 정상급 학자들을 초빙하여 강연 및 토론을 진행하는 '한림석학강연'과 연계해서 한 학기에 10시간씩 공개강의를 진행 중이다.

강의는 '물리학에서의 레이저 혁명 50년(Fifty years of Laser Revolutions in Physics)'을 주제로 레이저 분광학, 레이저 냉각, 원자시계 및 극초단 펄스 레이저 등 지난 반세기 동안 레이저에 의한 물리학의 혁명적 발전에 대해 소개하는 높은 수준의 과학강연이다. 현장에는 물리학과 및 공과대학 학생들과 연구원, 교수 등 50~60명이 참석하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다.

아로슈 교수는 "프랑스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한국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해 왔다"며 "같은 강의를 두 번 연속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강의 주제를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로슈 교수가 2001년부터 재직 중인 꼴레주 드 프랑스는 500년 역사를 지닌 프랑스 최고의 학문의 전당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지식 제공과 교류의 장으로서 누구나 수강할 수 있는 시민공개강좌를 열고 있으며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들은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초빙 받는 것을 가장 큰 영예로 여긴다. 수업료 및 학위과정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 강의로서 연간 12만 명 이상이 수업에 참석한다. 아로슈 교수의 강의 역시 서울대 물리학과 학생들과 같은 내용을 프랑스에서는 매회 100여명의 일반 대중들이 듣는다.

실제로 아로슈 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꼴레주 드 프랑스의 역사와 의의 등에 대해 매우 열정적으로 소개하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과학과 인문학 분야의 석학 50여명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내용을 대중들을 대상으로 강의한다"며 "석학들일지라도 지속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매번 새로운 강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꼴레주 드 프랑스에는 물리학과 생물학 실험실, 독서실 등이 있고 전 세계 문헌들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해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젊은 과학자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며 "그들이 걱정 없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로슈 교수의 꼴레주 드 프랑스 강연은 100여명의 일반 대중들이 참석한다. <사진=꼴레주 드 프랑스 홈페이지의 강의 동영상 화면 저장>
아로슈 교수의 꼴레주 드 프랑스 강연은 100여명의 일반 대중들이 참석한다. <사진=꼴레주 드 프랑스 홈페이지의 강의 동영상 화면 저장>

500년 전통의 꼴레주 드 프랑스는 과학, 예술, 문화 등에 대한 일반 대중 대상 석학강연을 진행한다. <사진=위키피디아>
500년 전통의 꼴레주 드 프랑스는 과학, 예술, 문화 등에 대한 일반 대중 대상 석학강연을 진행한다.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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