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분석]카이스트 학생들 야식,수면부족 등에 건강 '빨간불'

지난 23일 밤 자정 무렵 대덕밸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정문앞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숙사 담장. 수요일 밤 적막을 깨고 '부릉부릉' 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중년의 한 아저씨는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담장 맞은 편에서는 실내화 차림의 한 학생이 쏜살같이 달려온다.

"아저씨, 얼마에요." "응, 0000원." "소주는요?." "안에 있어."
물건을 건넨 오토바이 아저씨는 다시 '부릉부릉'하는 소음을 뒤로 하고 왔던 길로 총총히 사라진다. 한국 최고 이공계 영재 학교 카이스트 '담벼락'을 두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학생들과 패스트 푸드 및 야식 업체간의 '은밀한 음식 거래'다.

카이스트의 담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음식 거래는 사실 하루 이틀 사이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사람들 치고 은밀한 거래를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일반화된 야식 문화가 영재 학교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는 등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5일 카이스트 학생회가 실시한 '카이스트인의 건강에 대한 설문조사'(학부 재학생 101명 응답) 결과 일주일에 1-2차례 야식을 배달하는 경우가 절반을 훨씬 넘는 61%를 기록했다. 카이스트 학생 10명중 무려 6명이 일주일에 한번은 야식을 먹는다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3번이상 야식을 먹는 '심각한 야식 중독자'도 20%에 육박했다. (19.8%)

메뉴는 남학생 들의 경우 치킨이나 탕수육 등 고기류를 좋아하는 반면 여학생 들의 경우는 샌드위치나 과자 등을 선호했다. 설문조사를 보도한 카이스트 신문사는 "여학생보다는 남학생들이 야식을 먹는 빈도가 높다"면서 "기숙사 별로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울타리가 가까운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의 야식 배달이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밤늦게 군것질을 하는 이런 야식 문화는 다양한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벽에 먹는 야식은 밤잠을 설치게 하고 당연히 아침을 거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학생 10명 중에 4명은 일주일에 아침을 한차례도 먹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겨우 1-2번 먹는 학생들이 27%로 나타나는 등 전체의 64% 가량이 거의 아침을 건너뛰는 것으로 조사됐다.

밤 문화가 형성되니 만성적인 수면부족도 큰 문제로 떠올랐다. 사실 카이스트는 사실 자정 무렵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새벽 2-3시는 물론 4-5시가 되어도 불야성을 이루는 기숙사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카이스트 학생들의 별명이 '올빼미'가 되었을까.

설문조사에 따르면 카이스트 학생들 중 3명 중 1명이 입학전에 비해 건강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건강을 해친 가장 큰 이유는 수면 부족(29%)으로 꼽았다. 카이스트 건강관리실 담당자는 "카이스트 학생들은 대개 과제 때문에 밤을 새서 공부하다가 야식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식습관이 건강을 헤친다"면서 "건강한 학교생활을 하려면 불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습관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한정훈 박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이공계 대학이라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밤늦게 선진국에서는 점점 외면하는 정크푸드를 먹고 지내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현재의 카이스트 밤 문화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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