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파 측정으로 미국 과학계 잔치 분위기
과학 선진국 이너 서클의 주도…우리도 참가해야
장기적 안목과 국민 이해, 과학 외교 등 '틀' 바꿔야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현장은 오감이 작동하며 눈이나 귀로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인류 최대의 과학적 성과라 할 수 있는 중력파 측정 발표가 있는 때 마침 워싱턴 DC에 있을 수 있었다. NSF(전미과학재단)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는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전미과학자협회 연례 대회가 열리는 워싱턴 매리엇 워드만 호텔 프레스 센터로도 생중계가 돼 지켜볼 수 있었다. 기자실에 있던 다른 나라 과학기자들과 함께 지켜보며 금세기 최대의 과학적 발견이란 흥분과 그것이 앞으로 가져올 인류 생활의 변화에 대한 기대 등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었다.

기자 회견을 지켜보면서는 후발 과학국의 기자 입장에서 선진국 연구자와 언론이 느끼는 흥분과 기대 외에 느끼는게 하나 더 있었다. 어떻게 해야 저 이너 서클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다소 복잡한 심회가 그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눈에 띈 것의 하나는 질문하는 기자들의 국적.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거기에 이탈리아와 일본 기자가 외국인 기자로는 질문을 했다. 두 나라 모두 중력파 검출 장치를 건설중인 나라. 기자 회견장에 한국 기자가 있는지는 확인이 안됐으나 질문은 없었다. 결국 세기의 과학 발견도 국력에 비례하고, 그 소식을 접하고 의미를 이해하고, 함께 기뻐하고, 미래 먹거리로 만들어 가는 것도 결국은 선진국에 한정되는 것인가 하고 안타까움을 갖게 됐다.

NSF의 발표 현장은 마침 AAAS 프레스센터로도 중계돼 관심을 모았다.<사진=이석봉 기자>
NSF의 발표 현장은 마침 AAAS 프레스센터로도 중계돼 관심을 모았다.<사진=이석봉 기자>

과학의 발전은 이미 많은 사례가 증명하듯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동구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고,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며, 다시금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로 이어지는 등 선순환이 된다.

이번 발견도 미국 중심으로 이뤄졌고, 여기에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과 새로운 시설을 건설중인 일본 정도가 이너서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중력파 연구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보조적인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자회견 장에도 자연히 국력 순으로 참가하게 됐고, 소식을 전달받는 국민들도 그에 비례해 정보를 수신했다고 여겨진다. 기자가 현장에 있으면 느끼는 것이 다르듯이, 정보를 받게 되는 국민들도 현장 분위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뉴스를 받느냐, 경기 결과가 나온 녹화 방송을 보드냐에 따라 정보의 질과 가치가 다를 것으로 본다.

AAAS 연례 행사가 열린 회의장에는 마침 아인슈타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형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사진=이석봉 기자>
AAAS 연례 행사가 열린 회의장에는 마침 아인슈타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형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사진=이석봉 기자>

그럼 어느 나라는 이런 대발견을 하는 연구를 하게 되고, 어느 나라는 못할까?

연구진이 기자 회견 내내 밝힌 내용 중 하나는 장기적인 지원을 해준 NSF와 의회에 대한 감사였다. 발의에서 이날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40년이 걸렸다. 연구진은 오랜 기간을 과학자를 믿고 묵묵히 지원해준 의회와 재단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본 프랜스 코르도바(France A.Cordova) NSF 이사장은 실패 가능성도 있지만 정부가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며 당연한 지원이었다는 겸손을 보이기도 했다.

장기간의 연구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은 후발 과학국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 관점에서는 실력이 쌓여야 전인미답의 경지를, 그것도 수십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를 입안할 수 있다.

과학자가 계획을 세운다고 바로 연구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의사결정자들이 단안을 내려야 한다. 언제나 예산과 인력은 부족하다. 그런 가운데 최선의 선택을 해야한다. 전문 관료와 정치인의 안목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관료와 정치인 등 의사결정권자가 결심한다고 장기적 과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여론이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은 국민들이 좌우한다. 국민들이 오래 걸리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참고 기다려 주고 응원을 해주어야 세대를 넘는 연구가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성공을 경험해 봐야 하고, 학습을 통해 지난 과학은 물론 다가올 과학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눈앞의 먹거리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안정되며 인류의 과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투자에 대해 공감을 해주어야 한다.

이른바 선진국은 이런 환경이 정비돼 있고,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가 되고, 그 결과를 맛보게 된다. 연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내내 국민들과 소통돼야 한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드는 것이 아니라 밥상 차리는 과정에도 함께하며 이해의 폭과 깊이가 더해진다. 연구자만이 아니라 테크니션과 과학 언론 등 서포터 그룹도 함께 갖춰져야 바라는 결과가 나온다.

미국 과학자 협회가 주재하는 연례 대회이지만 여기에는 전세계에서 기자들이 온다. 세계적 연구 동향을 접할수 있는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등등의 다른 지역의 과학관계자들도 다 모이기에 과학 외교가 벌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여기에 참가한 언론 종사자들의 국적을 보면 과학에 대한 그 사회의 관심도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총 1000여명이 등록한 프레스 센터에는 아시아권에서는 압도적으로 일본이 많다. 기자만이 아니라 프리랜서, 과학저술가,홍보 담당자 등 넓은 범위의 언론계 종사자들이 등록하는데 일본은 약 5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는 10년전부터 계속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1명 밖에 없었다. 세계 흐름과 같이 호흡하며 경쟁과 협력을 해야 하는데 우리 과학계가 '나홀로 연구'를 하는 단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창의재단과 IBS에서 그나마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국의 존재를 알렸다.

중력파 측정 발표하는 기자회견장 모습은 세계 과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기도 했다. 먹거리 마련을 위해 모방을 통해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 선진국에 비해 아직 우리가 갈 길은 멀다.

모방은 나홀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인류가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이웃과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실험실을 나와 국경을 뛰어넘은 교류를 해야할 단계에 진입했다.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노력이 낳은 선물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지금은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세기의 과학 성과를 미국에서 발표할 때 한국 과학자가 함께 자리하며 설명을 하고, 그 자리에 한국 과학기자도 참여해 취재해 국민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NSF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이 한국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한국인 과학자가 외국인 과학자와 공동 연구를 주도하며 인류의 삶을 향상시킬 성과를 발표하는 그런 자리를 꿈꿔본다. 우리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의미이리라. 한 세대 뒤에는 가능하게 되기를 중력파 측정 발표 현장에서 기대해본다.

LIGO 40여년의 여정.<사진=이석봉 기자>
LIGO 40여년의 여정.<사진=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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