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 - 해외기획취재]연구관계①글로벌 트렌드 뒤지고 일류 과학자들과 교류 소극적소통‧도전정신 회복으로 과학계 교류 질적 향상 꾀해야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연구소 구내식당. 다양한 형태로 배치된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모인 연구자들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막스 플랑크 협회 산하 연구소에는 80여개국에서 온 연구자들이 연구에 참여하며 교류한다.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연구소 구내식당. 다양한 형태로 배치된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모인 연구자들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막스 플랑크 협회 산하 연구소에는 80여개국에서 온 연구자들이 연구에 참여하며 교류한다.
"한국 과학자들은 최근 메르스 사태라는 좋은 연구 기회가 생겼었는데 왜 NIH를 비롯한 외국 연구그룹들과 적극적으로 손잡으려 노력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국 내 자원만 활용할 생각하지 말고 글로벌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NIH 한인 과학자 P박사) 

"프라운호퍼 협회 내에만 국제협력 담당자가 15명이다. 세계적으로 파견된 사람은 20명 정도이고 67개 연구소마다 외교 담당자가 있다. 서로 영역은 다르지만 100여명이 국제 협력을 위해 같이 논의하며 집중하고 있다. 담당자들도 쉽게 바뀌지 않고 10년 20년 전문성을 갖고 일한다."(데니스 카스케 프라운호퍼 아시아 매니저)

'12 대 102.'

누가봐도 콜드게임이다. 야구경기에서 점수차가 너무 커 따라 잡을 수 없을 때 심판이 강제로 경기를 종료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과학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글로벌 교류 상황이 그랬다. 

독일 응용연구의 중심인 프라운호퍼 협회는 협회자체 국제협력 지원 인력을 비롯해 각 연구소마다 별도의 국제협력 담당자가 배치돼 100여명이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며 국제공동연구의 핵심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 궁극의 목표를 글로벌 부흥에 두고 해외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펼치면서 세계 각국의 젊은 인재들이 독일의 연구소로 몰리는 시너지 효과도 얻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해외주재 과학관은 미국, 영국, EU, 독일 등 12개국에 상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는 고참 공무원 연수용으로 왜곡되면서 해외주재 과학관으로서 전문성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과학관이 2~3년마다 바뀌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해외 과학선진국들과 중장기적 협력이 어려운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폐쇄적이고 단기 성과중심의 연구문화가 팽배해 지면서 과학자들 스스로 국내 연구자간 교류는 물론 글로벌 교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과학 선진국들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글로벌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는 반면, 국내 연구자들은 여전히 과제 중심의 연구에 매몰돼 있는 상황이다.

과학 선진국에서 만난 해외 과학자들은 이러한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한국 상황을 놓고 안타까와 하며 "국가의 발전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큰 목표를 갖고 국제적인 협력을 꾀하는 연구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어느 한인 원로 과학자는 "이대로 가면 한국은 고립된 갈라파고스와 다를 것이 없는 연구현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 자유로운 교류와 협력은 문제해결의 시작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자들간 교류는 자유롭다. 연구자들의 오픈마인드가 정착된 열린 문화다. 아무리 유명하고 지위가 높은 연구자라도, 이메일 한 통으로 약속을 잡고 같은날 아니면 다음날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 있다.

가령 NIH 연구원들은 새로운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을 때 대개 NIH 웹사이트에서 전문가를 찾아 이메일을 보내고, 다음날 직접 찾아가는 식으로 교류가 직접적이고 활발하게 진행된다.

최의묵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연구원은 "한 번은 DNA 인테그라제(integrase)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어 NIH 웹사이트에서 전문가를 찾아 이메일을 보내고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라며 "만약 전문가도 본인이 정확한 답을 모를때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전문가를 직접 소개시켜줘 결국 속시원히 문제를 빠른 시일안에 해결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에 본원을 둔 NIH 캠퍼스 내에만 해도 수천명의 각기 다른 분야의 석학들이 포진해 있어 웬만한 연구에 대한 궁금증은 내부에서 풀 수 있단다.

독일 막스 플랑크의 연구자들도 상하 구분 없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분위기다. 디렉터와 박사 후 과정으로 처음 온 신입 연구원도 아이디어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교류하는게 자연스럽다.

연구그룹 안에서 연구자간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적용한다. 그러면서 시너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천정환 박사는 "처음 막스 플랑크에 가니 그룹 리더가 하고 싶은 연구분야에 대해 묻고, 현재 구상중인 연구 아이디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더라"며 "연구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적극 찾아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천 박사는 또 "막스 플랑크 연구소 특성상 각 대학과 연계되고 연구분야 최고의 교수진들이 독일 전역의 대학에서 자유롭게 강의를 할 수 있어 연구자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분야의 교수에게 직접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자와 테크니션 간 거리감도 없다. 우리나라가 연구자와 테크니션 간 교류가 단절되는 것에 비해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연구 그룹간 연구자와 테크니션의 왕성한 교류로 아이디어가 보다 업그레이드 되기도 한다. 손광효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박사 과정생은 "테크니션과 논의하고 의견을 교류하면서 종종 연구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본 역시 산·학·연·관 협력과 연구자간 협업과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며 성과를 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다른 분야와의 융합연구를 수행하는 산·학·연 소통과 다학제 연구가 활발한 것이 특징이다. 준 태니 KAIST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산·학·연간 의사소통이 활발해 대학은 민간연구소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고 있어 적절한 협업과 대응이 가능하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포진해 연구와 인재양성에 나서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00년 이후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고야 대학이 위치한 관서지방은 일본에서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도요타, 미쓰비시 등 자동차와 항공 우주 분야 등 세계 1위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기업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들 회사에 인재를 공급하고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구실력이 향상되는 체계다. 우수한 교수들은 연구를 이끌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앞장선다.

쿠니에다 나고야 대학 부총장은 "우리 대학은 훌륭한 교수와 학생이 짝을 이뤄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발전해 나갔다"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는 공동 수상자인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 연구실 출신이며 아카사키 교수가 청색 LED 연구를 지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공동체 시대…"협력할수록 파이 커진다"

아시아 국가와 독일 프라운호퍼 간의 국제 협력을 맡고 있는 데니스 카스케(Denise Kaske) 프라운호퍼 아시아 매니저에 의하면 프라운호퍼의 궁극의 목표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국가들의 부흥이다. 카스케는 한국과의 협력을 위해 올해만 벌써 한국을 3번이나 찾았다. 

그는 "독일은 연구의 궁극의 목표에 따라 해외 교류가 활발하다"면서 "한국의 과학기술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특히 정보통신분야인 ETRI와 협력하고 싶다"고 희망을 밝혔다.

선진 연구 현장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경우 국제협력 부분에서는 좀 더 힘써 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 RIKEN이나 AIST 등 국가 연구소는 기본적으로 국제협력이 일상화 돼 있지만, 대학의 경우 외국인 학생과 교원 수가 많지 않은 등 국제화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연구자들은 해외에서 박사학위 받는 것을 높게 평가하거나 해외 출신 연구자를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일본의 과학기술 국제화는 정부와 대학 차원에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경우 보통 25세에서 30세 정도에 연구를 시작한 내용이 20~30년 뒤 성과로 이어지므로 국제적 교류를 통해 젊은 연구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JSPS(Japan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Science·일본학술진흥회)는 국제 세미나와 해외 과학자 초정 프로그램, 대학의 국제화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나고야 대학도 6년 전부터 시작된 Global 30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국제적 협업과 교류의 빈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쿠니에다 나고야 대학 부총장은 "201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영향으로 일본으로 들어온 외국 유학생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이는 전 세계와 교류하면서 자국 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기초과학연구원의 김해진 박사는 최근 연구비의 100%를 해외국가에서 지원받는 국제공동연구 과제를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제에 성공하기까지는 김 박사가 해외 연구자들과 오랫동안 교류를 펼쳐 왔기에 가능했다.

김 박사는 "외국 연구자들과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매년 학회를 열며 교류를 이어왔다. 그러면서 신뢰가 쌓여 그들이 먼저 국제공동과제에 대한 정보도 주고 참여해 볼것을 권했다"면서 "우리도 이젠 돈들고 가는 단기 연구가 아니라 긴 안목으로 교류하는 연구문화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연구과제가 여럿이라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이 정보를 알렸지만 관심이 없거나 소극적이었다"며 "이젠 국내가 아닌 국외 연구과제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생명공학 연구의 특성이 자기 혼자 연구하는 시대는 지났고, 연구집단이 함께 목표를 이뤄 나가는 경향이 강한데 한국 과학자들의 교류 면면을 보면 너무 소극적이고 닫힌 문화에 젖어있다는 지적이 많다.

NIH의 한 원로 과학자는 "국제학회나 세미나 등에 참석한 한국 과학자들은 외국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한국 사람끼리 한 구석에서 이야기를 하고 만다. 오히려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펼친다"고 지적하며 "이제 한국 과학자와 정부도 글로벌하게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적 접근과 지속가능한 글로벌 과학외교를 펼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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