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최고 과학자의 연구…한 프로젝트만 16년

"한국 과학계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자신감 갖고 연구해야"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상 수상자 정용환 단장, 이용희 교수 초청 대담
"연구자는 자기 분야에 대한 확신 갖고 세계와 경쟁해야"

대덕넷은 '2015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이용희 KAIST 교수와 정용환 원자력연 박사를 초대해 대담회를 진행했다.<사진=김요셉 기자>

"저를 비롯한 1세대 2세대 선배 연구자들이 과학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연구환경 조성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후배들이 해외 연구진들과 정면승부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본격 승부는 이제부터입니다. 젊은 과학자들을 위한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이용희 KAIST 물리학과 특훈교수) 

"무조건 연구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어떻게 좋은 기술을 찾고 사업화시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왜 기술을 안 갖다 쓰냐고 남탓하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 기술을 믿게하고 사용하게 하는 것도 연구원의 중요한 역할이자 몫입니다."(정용환 원자력연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

'2015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 이용희 KAIST 물리학과 특훈교수와 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은 모두 대덕연구단지에서 수십년간 연구활동을 펼친 한국 과학 역사의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용희 교수는 초소형 레이저를 연구하는 광학분야의 대표적인 물리학자다.
빛의 특성을 바꾸는 광결정을 이용해 빛의 파장크기의 작은 레이저 공진기를 구현해 자연이 허용하는 가장 작은 레이저 개발에 단초를 마련했다. 이 기술은 반도체나 통신교환기에서 전선을 대체하는 초단거리 통신을 하는 초소형 레이저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과학계에서 초단거리 광연결 레이저 광원 실용화의 첫 걸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용환 단장은 우리나라 원자력소재 기술이 발전하는데 공헌한 대표적인 원자력소재 전문가다.
출연연 출신 첫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인 신희섭 IBS 단장(전 KIST 과학자) 이후 10년 만에 출연연 출신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정 단장은 고성능 지르코늄 핵연료피복관 개발을 위해 한 과제에만 16년이란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의 연구인생 30년 가까이 원자력 소재만 집중한 셈이다. 그 결과 선진국보다 2배 우수한 고성능 지르코늄 핵연료피복관을 개발해 냈다. 이 피복관을 국내 원전에 실제 적용하기 위해 검증절차도 10년 넘게 추진했다. 노르웨이 할덴 연구용원자로에서 6년 간의 검증실험, 국내 원전에서 4년 간 검증을 거쳐 드디어 국산 원전에 일부 개발성과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정 단장은 20여년에 걸친 이 기술개발·검증 성과를 기반으로 국내 원자력 연구개발 사상 최고액인 100억 원이라는 기술이전 성과를 이끌었다.

원자력 글로벌기업 프랑스 아레바와 벌인 7년 간의 특허 분쟁에서 최종 승소한 사례는 한국 과학계에서 기술개발 소유권의 유명한 승리 일화가 됐다.

대덕넷은 대한민국 최고 과학자인 이 교수와 정 박사를 초청해 그간 연구활동에 대한 스토리와 역경, 과학자로서의 연구자세와 미래 한국 과학계의 방향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 한 우물을 판 '두 과학자'…"장기적 연구할 수 있도록, 과학자 스스로 변해야"

이 교수의 연구 원칙은 자신이 선택한 한 우물의 연구만 파는 것.

이 교수는 "회사에서 연구를 하자고 제안이 와도 내가 연구하는 주제와 맞지 않으면 거절해 왔다"면서 "KAIST에서 연구하면서 약간의 연구비 여유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연구자금 때문에 이리저리 영향받지 않았고 오로지 내 연구테마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92년 미국 AT&T Bell 연구소에서 귀국 당시 연구소에서 사용하던 레이저 장비를 그대로 가지고 와 연구할 정도로 한 분야 연구를 집중하기 위해 올인했다. 직접 가져온 장비 덕분에 귀국 후에도 계속 좋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고, 광학 레이저 연구에 대한 학문적 뿌리를 더욱 깊고 넓게 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교수는 "귀국 전 미국 벨 연구소 근무 경력보다 더 큰 성과는 해외 연구자들과도 경쟁할 만하다고 느낀 자신감을 얻은 것"이라면서 "한국에서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과 공유하고, 이 친구들이 노벨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 과학사를 볼때 6.25전쟁 이후의 1세대 과학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고생했고, 2세대 과학자들이 연구 저변 확대를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본은 연구자 Critical mass가 우리나라의 10배 수준으로 전분야에 걸쳐 촘촘하게 있는데, 우리도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장기적 연구환경 조성과 함께 젊은 후배 과학자들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앞으로 젊은 과학자 중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후임양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우리 젊은 후배 과학자들이 이제는 세계와 본격적으로 경쟁하며 연구실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단장 역시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연연 연구원들과 대화 나눌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는 연구자들에게 우리는 한우물을 파야 한다고 늘 이야기한단다.

정 단장은 "16년간 오로지 한 프로젝트에 집중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연구원들이 3년 후 등 연구를 근시안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학계에서는 원천 연구를 하며, 출연연에서는 장기적 연구 수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 단장은 "연구자들 역시 장기적 연구 수행을 위해 각 단계별로 성과를 보여줘서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구자들이라면 누구나 장기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단장은 "연구자가 장기적 지원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야를 연구하면서 단계별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라며 "출연연에서는 기술을 개발하면 산업체에서 당연히 사용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무조건 개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두 과학자는 아울러 한국 과학계에서 소통과 교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같이했다.

정 단장은 "대학교수는 기초 과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출연연 연구원은 과학보다는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상호간의 교류 활성화를 통해 대덕의 울타리 안에서 시너지 효과가 더욱 활발히 창출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이 교수 역시 "서로 교류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은 함께 나눴으면 한다"며 "우리 과학계가 사회의 좋은 뜻을 위해 모일 때 국가의 자생력은 더 강해져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용희 교수 "후배들 중 노벨상 수상자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

이용희 KAIST 물리학과 특훈 교수. <사진=김요셉 기자>
이용희 교수는 "수상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게 되서 가문의 영광이다. 대덕의 그동안의 노력들이 인정받은 것이라 생각한다"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KAIST 출신으로는 이용희 교수의 수상이 신성철 DGIST 총장, 이재형 교수 등에 이어 4번째다.

이 교수는 "레이저 분야만 30년 가까이 연구했다"면서 "KAIST 내부에서는 한 연구가 지겹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하니까 경쟁력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실험실 원칙은 효율적 운영. 적은 예산과 선별적 인원 배정을 통해 성과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지금까지 수행한 과제중 평균적으로 연간 연구예산은 2억 5000만원 수준. 이 정도면 연구활동 하는데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KAIST 학생들의 직접 인건비가 타대학에 비해 낮은 편이며, 우수학생들을 선별적으로 택해서 연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박사과정생 10명만 택해서 함께 하고 있다. 소수정예로 운영하면서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 KAIST를 비롯해 고려대, 서강대, 인하대 등 국내 학계에 10여명의 교수들이 배출됐으며, 일부는 미국 내 유수의 기업 연구소 등으로 진출했다.

이 교수는 이번 수상의 영광을 학생들에게 돌렸다. 그는 "학생들을 통해 이번 성과가 나올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주제를 잘 선택하고 시의 적절한 연구 테마를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교수는 연구저변 확대와 후임양성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 정용환 단장 "16년 동안 한 프로젝트만 연구…연구자, 사업화 염두하고 연구해야" 

정용환 원자력연 원자력재료 기술개발단장. <사진=김요셉 기자>
정용환 단장은 올해로 연구원 생활이 31년째다. 원자력 재료, 소재에는 수십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그는 한가지 소재에 대해서만 20년이 넘게 연구를 수행해 왔다. 바로 우라늄을 피복관에 싸서 물 속에 집어 넣기 위한 핵심 소재인 지르코늄이다.

정 단장은 "운이 좋아 한가지 재료만 23년 동안 연구할 수 있었다. 특히, 미래부 11년, 산업부 4년 등 총 16년간 지르코늄 신약품 과제 개발을 계속 수행해 왔다"고 설명했다.

1985년 당시 국내에서는 해외 사례를 답습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밖에 없었고 SCI와 같은 국제 논문은 커녕 국내 논문으로 게재되는 것도 엄청난 일로 간주하는 실정이었다. 그만큼 연구 장비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정 단장의 연구인생은 1991년 IAEA 장학생으로 독일 지멘스 계열사에 파견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정 단장은 "한국은 1세대 소재도 어려워했는데, 당시 독일 기술자들이 2세대 소재 개발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연구에 참가하고 싶어서 계속 요청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정 단장은 절치부심하면서 언젠가 소재개발을 위한 기회가 올 것이고, 이를 위해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귀국 후 소재 개발연구를 연구소에 제안했던 소재관련 연구과제는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다행히 미래부 과제로 일부 예산을 받아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정 단장은 "과제 만료후, 연구가 사장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죽기살기로 매진한 결과 예산이 점차 증액되고 과제 기한도 연장되어 성공적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이후에는 상용화를 위한 제품 개발이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4m 규모의 튜브를 제작하기 위해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찾았지만, 품질을 보증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 단장은 미국, 프랑스 등 업체에 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한국내 시장에 진출해 있던 업체들의 상황에서 한국이 잘되는 것을 봐줄리 없었던 이유에서다.

다행히 일본 업체가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당시 일본 업체들은 국내 시장에 진출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이 높았다. 한 기업이 공동연구를 제안했고, 2년에 걸쳐 수행된 끝에 결실이 나왔다.

제품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실증이 필요했다. 정 단장은 "국내 원전을 찾아 다녔지만 실증하기 어려워 외국에서 6년동안의 검증을 받게 됐다"면서 "이후, 한전 원자력연료, 원자력연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기술이 이전됐다"고 밝혔다.

아직 시험 단계에 있지만, 상용화가 되면 기존 미국 제품의 국산화가 가능해진다. 기술 자체에 대해 부정적 시비도 4년반에 걸친 실험끝에 미국산보다 2배의 우수성을 보이면서 일단락 됐다.

정 단장은 연구개발, 검증 과정 보다 더 힘들었던 순간으로 거대 원전회사인 프랑스 아레바와의 특허 분쟁을 꼽았다.

정 단장은 "그동안 특허 50건을 등록했는데, 조성과 공정 관련을 모두 합친 특허를 한국, 미국, 중국에 이어 유럽에 등록하자, 아레바에서 특허 무효소송을 제기했다"면서 "2005년 피소송 당시 정 단장에게는 대응할 만한 변리사, 변호사도 없었던 반면 프랑스는 법무팀 차원에서 대응할 정도로 암담했다"고 토로했다.

3세대 지르코늄 소재 개발을 위해서 이전에 정 단장이 등록한 특허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응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5년에 걸친 치열한 분쟁 끝에 최종 재판에서 정 단장이 승소했다. 이어진 아레바 측의 항소까지도 이기면서 분쟁은 마무리됐다.

정 단장은 자신의 연구과정을 회고하며 "한국 연구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한 우물을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이라며 "시대적으로 한우물을 파는 전문 연구자의 양성 노력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며, 과학자들 스스로도 장기적 연구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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