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출연연, 일률적 적용 '부당' 반응
연구원 대체로 반대 분위기…"출연연만의 독립적 임금피크제 도입 필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정년 연장이 논의되는 가운데 정부의 일방적인 임금피크제 도입이 예고되고 있어 연구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의 권고안을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은 만큼 노조를 중심으로 반발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기관들은 다른 기관들의 분위기를 살피는 등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출연연에 제출을 요구한 '2016년 임금피크제 관련 별도정원 요청서' 내용 일부 발췌.
출연연에 제출을 요구한 '2016년 임금피크제 관련 별도정원 요청서' 내용 일부 발췌.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 설명회를 열고, 지난 2일까지 연구기관에 '2016년 임금피크제 관련 별도정원 요청서'를 제출토록 했지만 극소수의 연구기관만이 요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노사합의를 끌어내지 못해 논의만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금피크제 관련 별도 정원 요청서에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임금조정기간 ▲임금지급율 ▲임금피크 대상자 및 임금피크제 관련 신규채용 규모 ▲임금피크 절감직원 및 임금피크제 관련 신규채용 인건비 소요 ▲임금피크 대상자 정원관리 및 직무 등의 항목으로 구성, 자세히 기술토록 했다. 

기재부가 밝힌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되, 정년 연장의 줄어드는 퇴직자 수만큼 공공기관들이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토록 했다.

정년이 60세를 넘는 경우에는 정년을 1년 앞둔 재직자 수에 맞춰 새로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하는 방안을 권고토록 했다.

하지만 출연연 연구원의 정년은 65세에서 IMF 이후 61세로 감축된 후 정년 환원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여타 공공기관과 같이 일률적인 잣대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고용 활성화를 추진토록 하고 있지만 출연연의 경우 중장기 연구를 통한 연구결과가 나오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생산성 증가와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당장 내년에 도입한다는 임금피크제에 대해 미래부는 허수아비와 같다. 기재부에서 직접 연락이 와 의견을 내놓긴 했지만 두루뭉술하게 했다"며 "정년을 늘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임금만을 깎으려고 하는 처사로 부당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이미 IMF 때 정년을 감축한 상태에서 연장도 해주지 않고 임금부터 깎는다는 것은 파탄으로 가는 길"이라며 "수십년 연구를 통해 결과를 내놓는 연구원들에게 제조업 노동자들과 같은 잣대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미래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기재부와 협의 중으로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며 "출연연 별로 합의 요청서를 준비하고 있지만 기본 방향이 정해져있지 않아 제출된 안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기재부가 제시한 기준대로 하면 출연연이 어려움이 있기에 계속 의견을 수렴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민병주 국회의원도 임금피크제 정부 출연연 적용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민 의원은 최근 국회 상임위에서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계획에 따라 공공기관에 적용하는 기재부의 임금피크제 권고안은 정부 출연연에는 해당되지 않을 뿐더러,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기재부의 출연연에 대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노동법상의 정년연장과 임금체제 개편의 근본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출연연의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며 "미래부 장관은 이에 대한 부당함을 기재부에 설명하고 이 부분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 출연연 정년연장이 우선…"출연연에 적합한 임금피크제 도입 필요"

기재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연구현장은 대체로 반대하는 분위기다. 정년연장이 먼저 선행되고, 출연연에 적합한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계연 A 박사는 "출연연 일부에서 61세 정년 이후 도입하고 있는 우수연구원 제도도 10% 비율만 전환되고 있으며, 그나마 정년에 다가갈 수록 임금이 50% 수준으로 하락하는 구조"라면서 "정년 환원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단순 임금피크제 도입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생명연 B 박사는 "임금피크제 자체는 사회적 고통분담 차원에서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기재부가 경제적 논리로만 계속 접근하는 것이 잘못됐다"면서 "원내에서 도입하기로 결정된 우수연구원 제도의 세부방안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생명연 C 박사는 "임금 피크제로 7천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는데, 그런 취지라면 현장의 포스닥 등 비정규직 연구보조원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일자리창출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현장에서 이들을 관리하는 조직조차 없는데, 인재들을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옳바른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ETRI D 박사는 "임금피크제의 본래 취지가 임금이 삭감된 부분 만큼 젊은 직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인데, 지금의 요구사항은 임금 삭감만 강요하는 구조"라면서 "출연연은 이미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구원 마다 정년도 다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출연연에 적합한 임금피크제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하며, 조직, 직원, 정부가 상생할 수 있도록 의견이 수렴돼야 한다"면서 "이러한 고민 없이 추진된다면 근로조건 하락과 연구원 사기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발협 관계자는 "기재부의 요구사항은 현장을 무시한 무분별한 처사"라며 "대다수 출연연의 의견은 이미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출연연은 정부 권고사항에 따라 65세에서 61세로 정년을 감축했으며, 일부 기관에서 극 소수의 인원만 우수 연구원제를 통한 선별적 연장을 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없는 기관도 많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정년 환원을 통해 현장 사기를 진작시키기는 커녕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면서 "연구회 등과 논의를 통해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관계자는 "연구기관은 연령이 많을 수록 숙련도가 높아 생산성이 증가한다. 생산성 하락을 일반화해 일률적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생산성 저하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출연연 연구원의 정년이 아직 환원도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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