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EP, 정부 R&D혁신 방안 대토론회 열기 후끈
정부 주도 아닌 연구 현장 주도 변화 공감대
"출연연 연구중심대학 정책기관,울타리 넘어 뭉치자"

주최 측이 예상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진=정윤하 기자>
주최 측이 예상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진=정윤하 기자>

"연구자들은 '자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산이 아니라 경비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 출연연이 만들어질 때 정부조직으로 하지 않고 출연연구기관 형태로 한 것은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뀐 시대흐름과 과학기술 환경에서 독창성 있는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도 자율성입니다. 또한 출연연 뿐 아니라 연구중심대학과 KISTEP 등 평가기관도 모두 과기계라는 한 리그에서 움직여야 하며, 논의의 장에 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문길주 KIST 전 원장)

"결국 지속적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대학과 출연연 내부의 사람들이므로 외부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민경찬 교수) 

"최형섭 장관은 KIST 원장 시절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갖고 막걸리를 사먹든 떡을 사먹든 결과만 내놓아라'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처럼 목표지향적 총괄평가를 해야지 관리 중심의 과정평가를 하니 오히려 투자 대비 낮은 성과가 나오게 되죠. 미국의 정부지원 연구개발혁신 성공률은 10% 안팎인데, 우리나라의 2011년 국가연구개발과제의 성공률은 98%입니다. 연구결과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평가에 따른 성공여부로 과제 지속이 결정되니 손쉬운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적인 연구 수행을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

2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토론회장에 300명이 넘는 과기계 관련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3시간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이 서서 참여했다. 각자의 세부 의견과 생각은 달랐으나 방향은 같았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R&D혁신방안에 과기계도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였다.

'4만불 시대를 준비하는 정부 R&D 혁신방안 심층토론회'가 2일 오후 서울 더팔래스호텔에서 개최됐다. '정부 R&D 혁신방안의 현장 착근을 위한 성공요인'을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는 연구관리혁신협의회가 주최하고,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원장 박영아),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정민근)이 공동 주관했다.

정민근 연구관리혁신협의회장(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토론회를 통해 지난 5월 13일 국가재정전략 회의에서 발표된 '정부R&D혁신방안'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정부 R&D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논의해보자"고 말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축사를 통해 "출연연, 대학 등 다양한 혁신주체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한 논의와 구체화 과정을 거쳐 R&D혁신방안을 만들고 전방위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회와 새누리당 차원에서도 국가과학기술혁신방안의 안착을 위해 세밀한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 염재호 총장 기조발표, "목표는 거시적인데 관리는 미시적…과학기술정책 철학부터 세워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염재호 총장의 발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사진=정윤하 기자>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염재호 총장의 발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사진=정윤하 기자>
염재호 고려대학교 총장은 '정부 R&D혁신체계의 재설계와 성공요인'을 주제로 기조발표했다.

염 총장은 '우리는 왜 정부 R&D 혁신체계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설계하는 것을 반복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시대와 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R&D시스템이 바뀌는 것은 맞지만 새정부에서 의례적으로 재설계하려는 것은 사회적 비용 뿐 아니라 R&D의 정치화라는 면에서도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혁신방안에 대해 적합하게 바뀌었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설계 반복주의'의 근본원인으로 ▲과학기술의 특성과 과학기술정책의 비정합성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의 괴리 ▲기초과학연구와 응용기술개발 정책의 혼재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과학기술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성과창출시까지 장기간 소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과학기술정책은 단기적인 효과와 효율성 위주로 되어있어서 서로 맞지 않다"며 "또한 과학기술혁신의 목표는 과학기술인의 자율성과 창의성 존중을 바탕으로 매우 거시적으로 잡고 있는데 정책수단은 규정으로 점철된 미시적 관리이기 때문에 역시 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염 총장은 기초과학연구와 응용기술개발 정책이 혼재되어 있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독일 등 외국의 경우 공과대학의 교수들 절반 이상이 산업체와 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공대 교수는 99%가 정부에서 사업비를 받고 있어 이에 대한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논문을 쓰고 있다"며 "기초와 응용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총장의 주장에 따르면 성공적인 R&D 혁신체계 재설계의 조건은 ▲과학기술정책 철학의 정립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과학기술 특성 기반 정책설계 ▲정책의 정치화, 관료제화 극복 등 네 가지다. 그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정책철학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정책패러다임도 변화해야 한다"며 "이제 삼성전자가 웬만한 대학이나 출연연보다 많은 이공계박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출연연이 산업기술 개발에 몰입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 각 지역마다 있어야 한다면서 신규 설립에 2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기술이 정치화되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이 중 1/10을 기존대학에 투자하면 이공계생 전부에게 장학금 주며 우수한 학생들을 양성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염 총장은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변화의 의도와 달리 계속해서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믿고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안 믿고 하나 하나 감시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통합했다 분리했다 형식만 계속 바뀌는 것"이라며 "과학기술 정책철학이 정립되면 기관을 그대로 두고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최형섭 장관이 KIST 원장 시절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갖고 막걸리를 사먹든 떡을 사먹든 결과만 내놓아라'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처럼 목표지향적 총괄평가를 해야지 관리 중심의 과정평가를 하니 오히려 투자 대비 낮은 성과가 나오게 된다"고 덧붙였다.

염 총장은 성공요인에서도 과학기술 육성 및 지원의 철학이 정립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 대학들은 영국 중심의 세계대학평가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데, 세계 100위의 대학에 독일대학은 단 한 곳 밖에 없다"며 "그것은 독일대학들의 철학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가 R&D에 대한 분명한 비전, 전략 및 목표가 수립된 후 R&D 컨트롤타워의 전문성, 출연연의 경쟁력 확보, 예산배분 구조 개선, 연구개발 평가결과의 환류, 연구자의 자율성 보장 강화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패널토론, "출연연 형태는 '자율성' 위해 만들어진 것…초심 환기해야"

패널토론에 참석한 토론자들. <사진=정윤하 기자>
패널토론에 참석한 토론자들. <사진=정윤하 기자>

패널토론은 박영아 원장이 직접 좌장을 맡았으며, 기조발표자인 염재호 고려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문길주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민경찬 연세대학교 교수, 신미남 (주)두산퓨얼셀 대표, 안현실 한국경제 논설위원, 양봉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장, 신준호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책과장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먼저 신준호 과장은 지난 5월 발표된 정부R&D 혁신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신 과장은 "이번 혁신방안은 중소기업 지원, 행정부담 축소, R&D 기획·관리체계 혁신 등 3가지를 핵심키워드로 꼽을 수 있다"며 "특히 R&D 예산 혁신에 초점을 맞춰 중점적으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학기술계로서는 여러가지로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부서 차원에선 국가예산의 5% 이상을 연구개발에 쓰고 있으니 R&D 효율화에 대한 부분에 천착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며 "제도 혁신을 위해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고 규제 철폐를 위한 방안에 방점을 두고 계획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문길주 전 원장은 "얼마 전 미래부에서 발표한 한국을 변화시킨 '과학기술 70선'을 보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출연연이 좋은 기술을 많이 개발해 주력산업 발전에 기여했지만 2000년대에는 출연연이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며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한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문 원장은 "그러나 정부 위주로 변화와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과기계와 같이 해볼 때라고 생각한다"며 "과학기술은 미래를 대비하는 학문이므로 특히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처음 출연연을 만들때 정부조직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며 "이러한 처음 설립의도를 다시금 생각해보고, 출연연 연구원들을 경비가 아니라 자산으로 보는 과기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미남 대표는 본인의 벤처창업 경험을 토대로 정부R&D정책의 방향을 제안했다. 신 대표는 "벤처를 창업하고 가장 크게 국가R&D정책의 수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정부에서 연구개발의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라며 "10년간 로드맵에 따라 부품과 시스템 개발, 부품공영화, 실증프로그램 등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니 우리 뿐 아니라 연료전지 업계 자체가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갖고 있으니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도 창투사와 해외투자사에서 투자금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며 "정부에서는 출연연, 벤처기업, 대기업, 학교 등이 역할을 달리해 참여하고 하나의 업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R&D정책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국내 10위권 대기업도 여전히 연구개발 부분에서는 출연연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기업에서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므로 빠르게 상용화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구원 개인들에게 직무보상과 스톡옵션에 해당하는 기술이전료 인센티브가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경찬 교수는 "아인슈타인은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가장 바보같은 일'이라고 말했다"며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경고하는 곳이 많은데 모두 버리고 새로 세우는 수준의 혁신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감사원, 기재부, 국회를 정점에 두는 혼란스러운 R&D 생태계에서 연구자들은 자주 바뀌는 기준에 맞추느라 제대로 연구할 정신이 없지만 결국 지속적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대학과 출연연 내부의 사람들이므로 외부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봉환 원장은 "연구의 3단계인 기초연구, 원천연구, 상용화연구의 명확성 없이 혼재하여 R&D를 추진하고 연구결과에 대한 성과 및 평가시스템이 부재한 것이 문제"라며 "특히 연구 결과물에 대한 수요자를 외면한 공급자 중심의 R&D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결과의 사회 기여에 대해서 강조하는 R&D가 필요하고 특히 중소기업의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현실 논설위원은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나오는 가정과 결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한 비판을 과학기술계가 왜 매번 무력하게 수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330년의 유럽, 200년의 미국, 100년의 일본과 이제 20~30년의 R&D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를 R&D 효율성으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진정한 혁신을 하려면 함부로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하고, 콘트롤타워라는 용어와 개념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