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전도 신호 기반 동작 의도 예측 기술' 기반 재활로봇, 수술로봇, 피부 근전도센서 등 개발
"기술사업화, 문제 해결형으로 접근하면 헤매지 않는다"

"기술이전 많이 돼서 좋지 않느냐고요? 실제로 물건이 세상에 나오고, 사람들에게 활용되면 그 때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기술이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죠."

요즘 KIST 로봇연구단 김기훈 박사의 실감교류로보틱스연구센터 의료로봇및햅틱스 연구실은 한창 분주하다. 올 초 기술이전 된 '상지근력강화보조장치'에 이어 추가로 3~4 곳과 기술이전 관련 미팅이 진행 중이고, 다른 기관에서 함께 연구하자는 제안도 부쩍 잦아졌다. 또 연구팀 소속 연구자 한 명이 스핀오프(spin off) 창업을 진행 중이다. 

오랜 연구개발을 통해 얻어진 논문과 특허가 꽃이라면, 기술사업화의 성공은 열매다. 아름다운 꽃만큼이나 달콤한 열매 역시 연구자들에게는 큰 보람인데 김기훈 박사의 연구실 여기저기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김 박사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줄곧 로봇을 연구한 로봇공학자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생각이나 의도를 로봇에게 전달해 행동하게 하는 '휴먼-로봇 인터페이스(human-robot interface)' 분야가 전문이다. 지난해 개봉돼 인기를 얻었던 SF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보면 군인들이 전투 로봇을 몸에 장착하고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사람의 지능에 로봇의 힘을 더한 것이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예다.

김기훈 박사는 얼마 전 책임연구원으로 승진 후, 새로운 방으로 이사하며 벽에 2개의 큰 보드를 설치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회의할 때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김기훈 박사는 얼마 전 책임연구원으로 승진 후, 새로운 방으로 이사하며 벽에 2개의 큰 보드를 설치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회의할 때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김 박사는 특히 상지(上肢:팔)와 손 관련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원격제어가 가능한 수술로봇과 로봇의수, 재활로봇 등을 연구했으며 특히 척수수술로봇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그는 "사람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감각을 느끼고 전달하는데 있어 손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은 분야"라며 "휴먼로봇 인터페이스 분야에서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기술이 핵심인 만큼 상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또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근전도 신호 기반 동작 의도 예측 기술'이다. 

근전도(筋電圖:electromyogram)란 근육이 수축할 때 나오는 전기신호이다. 사람이 어떠한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뇌에서 생각을 하고 이러한 의도를 신경을 통해 신체부위에 전달하는데 이때 근육수축에서 나오는 신호, 즉 근전도를 해석해 동작을 미리 예측하고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김 박사는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뇌의 신호를 바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재의 기술에선 다양한 동작의도를 파악하기에는 현재까지 한계가 있다"며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가능성이 높으며, 수술이 불필요한 동작의도인식 방법으로써 피부 표면에 전극을 붙여 근육신호를 습득, 해석했다"고 말했다.

김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기술은 기존의 영상을 기반으로 한 손의 움직임과 위치를 측정하는 방식보다 장점이 많다. 근전도는 신체 절단환자나 몸의 움직임이 불편한 사람도 동작의도를 전달할 수 있고, 실제 움직임이 발생하기 이전의 신호이므로 시간 격차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연동할 수 있다.

이러한 바이오닉 인터페이스 기반 실시간 동작의도 기술 개발은 국내에서는 거의 진행되지 않아 그의 기술이 독보적인 수준이다. 또 세계적으로는 탈믹연구소(Thalmic Labs)에서 개발한 센서 기반의 동작 인식 장치인 마이오(Myo)와 델시스(Delsys)에서 개발한 근전도 센서 시스템인 트리그노(Trigno)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연구팀의 기술이 통신기능, 센서 수, 동작자유도, 분석력, 초기화시간, 휴대성, 센서확장성 등 다양한 기준에서 더 완성도와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국내서 독보적 휴먼-로봇 인터페이스 기술…원격 활동 환경서 폭발적 인기

때문에 연구팀의 기술이 다양한 기업에서 러브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소형의 근전도 시스템을 착용하는 것만으로 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로봇을 비롯해 장치를 원격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연구팀의 기술을 실험용 동물 수술로봇, 가상방송 시스템, 선수 체형 분석 시스템 등에 활용하기 위해 의료, 미디어, 스포츠, 교육, 게임 분야의 몇몇 기관에서 기술 이전을 타진해오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기술이전이 진행된 곳은 의료기기 개발 및 제조 전문업체 (주)젬텍이다. 1996년 설립된 젬텍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19년 간 재활의료기기를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제작해왔다. 

젬텍은 연구팀의 기술을 흔히 'CPM(Continuous Passive Movement:지속적 수동운동) 장비'라고 하는 '상지근력강화 보조장치'에 활용한다. 재활 치료 기기 중 아주 많이 쓰이는 장비로 환자의 반응에 대해 운동보조 치료사만큼의 유연성을 갖기 위해선 사람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을 감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김 박사는 "경력 많은 치료사가 근육의 강직정도를 측정해 운동 강도를 조절해 주는 것처럼 해당 기술을 활용한 보조장치는 환자의 동작 의도와 근육 강직도를 바탕으로 치료사처럼 운동패턴을 조절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홍식 젬텍 대표 역시 "김기훈 박사팀의 연구가 아니었다면 기업 자체적으로 이를 개발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며 "상지 및 어깨치료 로봇사업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술은 식약청 승인 바로 전 단계에 있는 상태로, 젬텍은 식약청 허가 후 바로 현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해외 전시회 참가를 준비 중이다.  

젬텍 기술연구실에서 재활치료기기를 시험하고 있다. <사진제공=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
젬텍 기술연구실에서 재활치료기기를 시험하고 있다. <사진제공=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

또 연구팀의 고현규 연구원은 근전도 센서와 동작분석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용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관련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경쟁 제품에 비해 기술적 우수성이 확보되며 연구팀 내에서 스핀오프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는데, 고 연구원이 해보겠다고 패기있게 나섰다. 창업을 검토하며 연구에 대한 열정이 더 컸던 김 박사는 연구원에 남아 추후 필요한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김 박사는 "다양한 신체 특성을 갖는 사용자가 별도의 조절 없이 손쉽게 부착해서 동작 의도 예측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소형의 착용형 근전도 센서 시스템 제품"이라며 "지속적인 기술 지원으로 제품이 폭넓게 쓰일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기훈 박사는 휴먼-로봇 인터페이스 연구의 일환으로 '능동 촉감 복원기술'도 개발 중이다. '능동 촉감'이란 움직임과 동시에 느끼는 촉감으로, 무게, 감촉, 압력, 진동 등은 동적인 상태여야 보다 정확히 느낄 수 있는 정보들이다. 동작 의도를 전달하는 것은 로봇에게 일방향의 명령이지만, 아바타 로봇이 움직임을 통해 얻은 촉감 정보를 다시 사용자에게 전달하면 이후의 행동에 중요한 기초 정보로 활용할 수 있고, 쌍방향 조작이 된다.  

김기훈 박사는 "현실세계에서는 숫자보다 '느낌'이 더 정확한 정보일 수 있는데 착용형 촉감 디스플레이 기술은 기계가 측정한 것을 사람에게 수치가 아니라 '느낌'으로도 전해줄 수 있다"며 "해당 기술이 발전되면 원격지나 가상현실의 아바타를 이용하여 물건을 직접 만지고, 사람들과 신체적 접촉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술 '착용형 촉감 디스플레이'는 소형화를 위한 연구개발이 완료되면 원격진료와 가상과학실험, 박물관 등의 분야에 기술이전 가능성이 높다.   

◆ 글로벌프론티어사업 통해 '기술의 실현 및 실용화 본격화'…"현장 중심 기술 배우는 계기"

김기훈 박사는 "글로벌프론티어 사업 중 하나인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의 과제를 진행하면서 현장 중심의 기술을 배우게 되는 것이 좋은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학자이기 때문에 기초원리보다는 응용분야에 더 집중하고 있었지만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기술사업화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개발기술의 실용화를 통한 기술의 실현에 가치를 두고 있는 글로벌프론티어사업 과제를 통해 책에서는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는 연구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김 박사가 처음 해당 기술을 갖고 병원 관계자와 미팅을 했을 때는 '훌륭하지만 쓸모없는 제품'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높은 기술력이 집약된 제품을 가져갔지만 현장과는 괴리감이 있었던 것. 

그는 "응용분야 연구에서는 초기의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문제해결형'으로 접근 한다"며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무슨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데 많은 시간을 고민해야하고, 그 다음부터는 연구개발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피력했다.

또 김 박사는 국내 연구 환경에 기술사업화 전문조직이 자리 잡히고 있는 것에도 큰 감사를 표했다.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의 지원과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의 연구관리팀, KIST 기술사업화팀이 기술이전과 관련해서 매우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

그는 "연구자는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기술사업화 전문조직이 기술 가치 평가와 기술마케팅 사업 등을 통해 기업들을 발굴해 연결해주고 기술 적용과 추가개발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어서 보다 완벽한 기술이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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