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국회-한림원 과학기술혁신연구회 포럼 개최
이공계 전문가 활용제도 개선방안 논의

메르스 확산 사태로 국회의 행사도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날 국회-한림원 포럼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개회사를 하고 있는 박성현 한림원장. <사진=정윤하 기자>
메르스 확산 사태로 국회의 행사도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날 국회-한림원 포럼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개회사를 하고 있는 박성현 한림원장. <사진=정윤하 기자>

"과학기술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이며, 국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 자격' 혹은 '기술사의 인정 자격'이라는 비상식적인 제도로 이공계 전문가의 영역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과 한림원 석학,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국내 이공계 전문가 활용제도의 개선을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박성현)은 서상기·이상민·박인숙·정호준 의원실과 공동으로 1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제7회 국회-한림원 과학기술혁신연구회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이공계 전문가 활용 및 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을 주제로 최근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변리사와 기술사 제도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지난해말, 변호사 출신 이상민 국회의원이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세무사와 변리사 자격을 없애는 법안을 제출했다. 변호사협회는 즉각 반대성명을 냈고, 이어 대한변협신문은 '변호사 업무영역 침해, 이젠 반격 가할 때'란 제목의 사설을 냈다. 

 

변리사는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해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을 대리하고 그 사항에 관한 감정과 그 밖의 사무를 수행하는 '지식재산 전문가'다. 지식재산 중에서 특허가 가장 비중이 높고, 특허권의 바탕은 기술이다. 변리사는 특허를 다뤄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61년, 당시 이공계 전문가들이 부족한 실정에 맞춰 변호사들에게 변리사 자동자격을 주는 정책을 폈고, 이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자동자격을 주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 뿐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은 처음 협상항목에 변리사 부문을 포함시켜 제출했지만, 협상이 시작되고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준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변리사시장을 협상대상에서 뺐다. 2016년 유럽, 2017년 미국에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우리나라 변리사 시장은 속절없이 열린다.

 

현행 기술자격제도 역시 '대 혼돈' 혹은 '엉킨 실타래'로 비유된다. 역시 40년 전의 실정에 맞춰 만들어진 제도에 각 부처별로 혼재한 관련법 등으로 전문가로서의 업무영역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건설기술진흥법이 개정되며 부활한 '인정기술자 제도'에 따라 기존에는 국가기술자격시험을 통해 합격한 사람만 특급등급을 부여받던 것에서 일정한 학력이나 경력이 있으면 검정 없이 기술사와 동등하게 인정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서는 여전히 기술사 등급은 국가기술자격자만이 취득하게 되어 있다. 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회-한림원 과학기술혁신연구회는 대표적인 이공계 전문직에 해당하는 변리사와 기술사에 대한 제도적 문제 해결이 이공계 기피 현상 해소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판단, 이번 포럼을 마련했다. 토론장에는 서상기 의원, 김춘진 보건복지 상임위원장, 한기호 의원, 류지영 의원, 박인숙 의원, 정호준 의원, 이한성 의원 등이 참석해 과학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고, 몇몇 의원들은 끝까지 남아 의견을 청취, 토론에 참여했다.

 

박성현 원장은 개회사에서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과학기술력은 곧 국가경쟁력이므로 과학기술분야의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라며 "산업현장의 최고 전문가인 '기술사'와 지적재산보호의 최일선에 있는 '변리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치열해지고 있는 국가 간 경쟁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 이건우 서울대 공과대학장, 정영화 전북대로스쿨 교수 주제발표

 

포럼에서는 먼저 이건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과 정영화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이건우 학장은 "학장으로서 대학 운영과 관련해 무엇인가를 정할 때마다 '학생들이 내 아들딸이라면'을 최우선으로 가정한다"며 "기술사, 변리사 제도 개선도 학생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이건우 학장은 "학장으로서 대학 운영과 관련해 무엇인가를 정할 때마다 '학생들이 내 아들딸이라면'을 최우선으로 가정한다"며 "기술사, 변리사 제도 개선도 학생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이건우 학장은 '이공계 자격제도의 개선에 의한 이공계 대학의 발전'을 주제로 먼저 이공계 기피 현상을 나타내는 몇 가지 수치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1985년 기준 60:40이었던 이과와 문과 학생 비율이 2015년 들어 40.2:58.1로 뒤바뀌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및 자연대학의 학업 중도포기자의 20%가 의대에 재입학했으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KAIST 학사 졸업생 중 19.3%는 의학·치의학·법학 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출처 홍의락 의원실).

 

이 학장은 "학생들이 의사와 변호사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배타적인 업무 권한을 갖고 있는 전문자격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공계 전문가 자격제도인 기술사와 변리사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한다면 이공계 대학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하는 기술사제도의 문제점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주무부처가 분산되어 있는 것. 미래창조과학부가 기술사 제도를 총괄하고는 있으나 기술사 선발은 고용노동부가 하고 있고, 13개 부처에서 4개 검정기관을 두고 기술사 검정을 시행 중이다. 또한 부처 간 협업 매커니즘의 부재로 인해 수급계획 수립에 한계가 발생하고 있으며, 자격종목 역시 84종목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두번째는 체계적인 육성체계가 없다는 것. 미국의 경우 ▲공학교육 인증과정 이수 ▲예비시험 합격(FE) ▲현직 기술사의 지도 하에 4년 동안 실무수련 이수(EIT) ▲본 자격 시험 합격 ▲자격 등록 등의 잘 짜여진 PE(Professional Engineer) 육성체계를 갖고 있지만 국내에는 학력-자격-교육-훈련-경력 간 연계가 미흡하다.

 

세번째는 인정기술자제도 부활로 인한 자격 실효성 훼손이다. 기술능력을 경력, 자격, 학력으로 평가하여 역량지수화한 인정기술사제도의 부활로 특급 기술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으나 이 때문에 기술자격을 취득하고 유지하는 원칙과 기준이 무너져 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은 전문가로서 권한과 책임이 없다는 것. 미국의 경우, 국민의 건강, 생명, 재산보호를 위해 설계도서 등 성과품에 대한 서명날인 권한을 기술사 면허자만 보유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설계보고서, 감리보고서 등 각종 기술용역의 성과품의 책임기술자를 폭넓게 인정한다. 때문에 고유한 업무 영역이 존재하는 변호사, 건축사, 공인회계사에 비해 기술사는 권한이나 책임근거를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학장은 "고도의 기술업무는 기술사 자격자가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미래창조과학부가 기술사 선발 시험을 주관하며, 기술사법을 개정하고, 인정기술자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기술사 제도 개선을 통해 이공계에서 우수한 학생을 확보해서 우리나라 산업이 여기서 주저앉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영화 교수는 20년 이상 법학 교수로 재직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러한 철학을 담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정영화 교수는 20년 이상 법학 교수로 재직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러한 철학을 담은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정윤하 기자>
정영화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과학기술 인적 자원과 국가자격제도 개혁방안'에 대해 주제발표했다. 

 

정영화 교수는 법학을 전공하고 20년 이상을 법조인으로 있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정 교수는 "산업혁명 이전에 과학혁명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21세기 국가의 미래는 고급 과학기술인재의 처우와 양성방안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사법의 문제와 향후 개정방향과 관련해 정 교수는 앞서 발표한 이건우 학장과 유사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먼저 기술사에 대한 기술사법과 국가기술자격법을 통합, 미래창조과학부가 13개 부처의 다원적 운영을 통할해야 한다"며 "기업의 기술혁신 주체로서 기술사의 글로벌 경쟁우위와 공학교육인증을 의무화하고 응용기술대학의 교원 활용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변리사와 관련해서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경우 변리사시험을 위해서 이공계 학위가 필수"라며 "우리나라 역시 선진국처럼 이공계 학사를 변리사의 자격요건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그는 "변호사 자격자가 변리사시험에 합격한 경우에는 특허변호사로 하고, 기존의 변리사 역시 변호사 자동자격을 폐지해 민사법 실무 교육과 소정시험을 거쳐 소송대리 업무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고기석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등 전문가 5인 지정토론…"특허소송 전문성 강화에 국가도 총력 기울이는 중"

 

지정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진=정윤하 기자>
지정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진=정윤하 기자>

 

최항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는 보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됐다.

 

고영희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60년 전 제도로 21세기 지적재산 시장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부끄럽다"며 "우리 국가의 경쟁력과 미래 세대의 장래문제이므로 작은 이익에 매달려서 큰 틀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불행한 문제"라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고 회장은 "변리사회에는 '변호사의 자동자격'과 '침해소송 대리문제' 등 두 가지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며 "국회는 나라 이익을 우선해서 일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명함 뒷면에 잘못된 법 조항을 새겨서 주변에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관련 법안의 국회 속기록을 열람할 정도로 법 개정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문행규 한국기술사회 부회장은 "워싱톤 어코드 등 국제협약을 따라 국제통용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술자격제도를 개선하고, 특히 인정기술자제도를 폐지해야 공학도도 법조인, 의료인처럼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기술사에게 독점적 엔지니어링업무 영역을 보장해 국민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 부회장은 "대학의 공학인증과 연계해 공학도의 사회적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며 "모든 기술자격관련법에 일몰법을 적용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은정 KBS 보도국 과학재난부 팀장은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입법과정도 중요하지만 국민에 대한 홍보와 설득이 필요하다"며 "변리사와 기술사와 관련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제와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변리사법과 관련해서는 국민들의 이해와 동조를 얻기 쉬울 것으로 보이나 기술사는 더욱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오해가 쌓인 분야인만큼 기술사를 육성하는 것은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법을 세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고기석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지식재산전략기획단 단장은 객관적인 정부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먼저 "삼성과 애플이 전세계 10개국에서 특허소송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과 외국기업들의 특허소송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며 "스마트폰에 관련된 특허는 7만개, 스마트카에는 20만개 등 사물인터넷으로 오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어 국가에서도 전문성이 이루어진 특허소송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를 위해 법원과 소송대리인의 전문성 강화가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고, 소송관할 개선안을 마련해 현재 민사소송법 및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며 "소송대리 전문성과 관련해서는 법무부, 특허청 등 관계부처와 함께 10여차례 실무협의를 긴밀하게 이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특허 침해와 손해배상을 다루는 민사소송에 변리사가 실질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변협은 막지 말아야 하며, 변리사는 '소송대리인'이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말고 '침해소송참가 변리사' 등으로 제도의 명칭에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인숙 의원은 "기술사의 고유업무영역을 시급히 설정해야 하고 또한 기술사의 선발과 활용 등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해야 한다"며 "변리사와 관련해서는 변리사 관리 감독권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의견을 냈다.

 

이어 박 의원은 "전문가 집단의 문제를 들어 올바른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항상 과학인재가 나라를 살린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이공계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포럼을 주최한 국회-한림원 과학기술혁신연구회는 과학기술 석학들의 전문지식과 국회의원들의 의정비전을 상호 공유함으로써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난 2010년 창설되었으며, 현재 국회의원 33인과 한림원 회원 144인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기술혁신연구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서상기 의원은 포럼에서 "제도개선을 위해 10년간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법안을 발의하는 핵심단계까지 가지 못했다"며 "이공계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자아 실현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유능한 젊은이들이 이공계에 오도록 관련 분야 입법을 위해 끝까지 해보겠다"고 피력했다. 

 

이번 포럼을 공동주관한 정호준 의원 역시 "애플과 아이폰의 사례를 보면 리더가 지식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며 "오래 전에 제정되어 현실과 괴리감 있는 변리사, 기술사 관련 법안의 개정 타협점을 찾아 산업현장과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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