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테크홀릭 기자

보통 풍력 발전기라고 하면 직경이 수십m에 달하는 거대한 날개가 회전하는 풍차 날개를 닮은 걸 떠올린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풍력 발전기는 이렇게 생겼다.

하지만 스페인 기업인 보텍스 블라드리스(Vortex Bladless)가 개발 중인 보텍스(Vortex)에는 회전 날개가 없다. 그저 긴 막대 1개가 흔들거리면서 전력을 얻는 새로운 형태의 풍력 발전기인 것.

이 제품을 구상하게 된 건 지난 1940년 미국에서 발생한 타코마 해협 현수교(Tacoma Narrows Bridge) 붕괴 사건이었다고 한다. 이 현수교는 바람에 출렁이다가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렸다. 이 다리는 당시 최고 기술을 투입해 건설한 강철 재질로 만든 현수교였다. 하지만 강풍 탓에 다리 전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개통 후 불과 4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 진동의 원인이 된 건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공기 소용돌이였다고 한다. 다리 바로 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반대편으로 빠지면서 교각 아래쪽에 발생하는 공기 소용돌이가 큰 힘을 얻어 다시 교각을 진동시킨다. 진동은 다시 소용돌이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일으키는 진동 에너지가 계속 높아지게 되면서 결국 다리를 파괴할 만한 진동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다리를 파괴할 만큼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면 반대로 이것만 잘 제어하면 막대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발상의 전환에서 탄생한 게 바로 보텍스다.

보텍스는 막대 모양처럼 생긴 날개에 해당하는 부위가 바람에 의한 소용돌이를 이용해 좌우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면서 이 힘을 발전에 이용한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발전 가능한 형태로 실험을 진행 중이다.

보텍스의 구조는 공기 같은 유체에 의한 에너지를 변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보텍스는 바람을 받으면 좌우로 흔들거린다. 기존 회전 날개를 가진 풍력 발전기보다 구조가 간단하기 때문에 건조비용은 47%까지 절감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보텍스 내부는 얇은 막대로 위아래가 분할되어 있는 구조를 취했다. 아래쪽 통 안에는 자석 2개가 내장되어 있다. 좌우로 흔들리는 상단 날개 움직임을 전기 에너지로 바꿔 발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상단 날개는 경량 탄소섬유와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재질로 만들어 강도와 가벼운 무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날개를 경량화해서 발전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제조사 측은 실험을 바탕으로 4kW짜리 발전 능력을 지닌 제품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정도면 일반 가정용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비슷한 발전력을 지닌 것이다. 4kW 모델은 보텍스 미니(Vortex Mini)이며 그 뿐 아니라 1MW 이상 발전 능력을 지닌 보텍스 그란(Vortex Gran)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보텍스 미니는 일반 가정 등에, 보텍스 그란은 더 높은 발전 능력을 요구하는 전력 공급사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 밖에 3m 높이로 100W 가량을 출력하는 작은 모델도 고려 중인데 이는 개발도상국 활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보텍스는 이론상 제조비용은 53%, 운영비용은 51% 절감할 수 있다. 회전 부분이 없어 베어링이나 기어 마모가 발생하지 않는 등 유지보수비용은 80%까지 절감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발전 효율 자체는 기존 회전날개형보다 30∼40% 수준이라는 게 약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형태보다 설치 면적이 작고 앞서 설명한 비용적 이득이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스페인 내에서 100만 달러 자금을 끌어모았고 미국 진출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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