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과학의 거인' 참배하며 지혜 배우자
어려울수록 기본 다지고 공동체 위한 목표 세워야

폐색(閉塞)상황.사방이 꽉 막혀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말한다. 메르스로, 경기침체로, 정치싸움으로 얼룩진 지금 대한민국이 바로 그렇다. 활기를 찾기 어렵고 답답함만이 커져간다.

그런 가운데 과학이, 과학자가 할 일은 무엇일까?

얼마 전 카이스트 학생들 몇명과 현충원을 다녀왔다. 최형섭 전 장관 묘를 참배하고 손기정, 최순달, 한필순, 이종욱 선생 등등의 묘역도 둘러보았다.

다녀온 학생들의 소감.

"처음 가 보았다. 그 시대 역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고, 내가 현실에서 대충하던 일들, 나의 삶의 태도 등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되었다.그들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배우는 것이 분명히 많았다...우리나라 교육이 수학, 과학에만 너무 치중하였고 나라를 위한 애국심을 키워주는 교육은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김00)

"서양에 비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초라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현충원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으며 '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이토록 위대한 인물들이 많았구나,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바쳤던 분들이 이토록 많구나'하고 다시금 생각됐다...뉴턴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었기에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가 딱 그런 모습이다. 최형섭 손기정 선생 등등 여기 잠든 수많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기에 이렇게 편안하고 발전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내 후손들이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거인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수 있기를."(안00)

"최형섭 장관의 묘를 보며,그 분의 회고록을 생각하며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대단한 분이라는 마음과 카이스트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최 장관의 묘비에는 그가 살아생전에 중시했던 연구자의 덕목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글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묵념의 시간을 가지니 그 문장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꽂혀왔다...내가 과연 연구자의 덕목을 잘 갖고 있는 것일까? 연구자 보다는 정책이나 엔지니어의 길을 택하려 하는데 연구자의 입장에서 연구의 길이 순탄하도록 일조해야겠다는 각오를 한다."(조00)

"현충원에서 훌륭한 분들의 묘를 보며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었고, 나도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현충원은 국가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국가가 필요로 해서, 단순히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본받을 만한 우리의 조상을 모신다는 의미로 현충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00)

지금의 폐색 상황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쌓이고 쌓여 드디어 폭발 직전의 상황에 이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은 사례의 하나가 파탄에 빠졌던 일본 항공(JAL)의 회생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쓴 책이 최근 번역됐다. 무기력과 비효율에 쩔어 빈사상태에 빠진 일본항공(JAL)을 회생시킨 기록이다. 책 제목은 '어떻게 의욕을 불태우는가'.

이나모리 회장은 JAL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부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겠지'하는 안일함과 본사와 현장의 유리를 꼽았다.

마치 한국 과학계를 보는 듯 하다. PBS니, 경쟁체제니 무슨 말을 해도 결국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출연연과 대학 교수들의 99%는 국민 세금을 갖고 연구한다. 펀딩에서 국내 경쟁만 하면 되니 실력보다는 네트워크가 더 경쟁력을 갖는다. 어떻게든 정부가 먹여 살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망하거나 문을 닫은 연구소는 하나도 없다.

게다가 돈을 쥔 관료와 연구 현장의 거리는 과천과 대덕의 물리적 거리 이상이다.  관료는 현장을 둘러보는 것을 선심이라도 쓰는 듯 여기는지 거의 발길을 옮기지 않는다.

JAL에 대한 이나모리 회장의 처방은 현장 직원들의 자발적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경영자와 같은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직원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장을 찾았고, 일의 의미 등을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는 말한다.직원들의 자발적 의욕을 위해 마음에 호소하고, 더 나아가 일의 의미를 설명하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도록 해야한다고.

한국 과학계를 이에 비춰볼 때 이나모리 회장과 같은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것인가? 각자가 이 부분에서 자기 동기부여를 하고 목표를 높이 잡을 수는 없을까?

우리의 연구 환경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좋아졌다. 복지로 인해 예산이 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와 비슷한 규모에서 이렇게 과학기술 분야에 예산을 쓰는 나라는 없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로 알려진 서울대 김빛내리 교수는 과거 자신은 연구비 걱정으로 연구 몰입이 어려웠으나 지금은 젊은 과학자들이 연구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어 이제는 우리도 과학으로 인류에 기여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높은 이상을 밝힌다. 학생들과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최근 국내 언론에는 구글의 인사담당자 인터뷰가 두루 실렸다. 구글형 인재를 한마디로 말하면 '복도 휴지를 치울 줄 아는 사람'이란다.

근무 환경은 남이 마련해 주는게 아니다. 내 일이 아니라며 남에게 미루는 피동적인 자세로는 비용만 들고 성과는 안 나온단다. 자신과 회사가 일체감을 갖고 비전을 같이하며 궂은 일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복도의 휴지 줍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기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과학계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과학하는 이유를 학생들이 스스로 묻고 답을 찾도록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과학계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과학이 자신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를 되묻고 자존감과 자부심을 갖는 방안에 대해 함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라를 생각하는 6월에 폐색 상황에 놓인 한국 과학계와 한국 사회를 보는 심정은 안타깝고 아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일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본을 다지고 각오를 새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충원을 찾아 선배 과학자의 묘소도 참배해보고, 과학사 관련 책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다소 엉뚱하게도 여겨질수도 있겠지만...

정부 관료들도 현충원을 찾아 올바른 과학행정을 하기 위한 기본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취임식을 하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과학의 선배들을 찾아 지혜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그래도 가끔 현충원을 찾지만 정작 관료들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 듯하다. 바쁘게 왔다갔다는 하지만 영혼이 함께 가도록 때로는 서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

호국의 달 6월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현충원에 가 애국지사 묘역을 둘러보며 나라를 잃고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하던 정신을 되새기고, 과학계의 어른들을 찾아 80달러의 열악한 나라를 2만달러 국가로 풍요롭게 만드셨던 그 열정과 자세, 책임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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