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 연구관계②]연구현장 위기가 주는 교훈은 '소통'연구자들, 경쟁에서 돕는 우정의 관계로…"과학 공동체 의식 갖고 적극 소통 해야"

그동안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모습은 어떠했나.
빙하기가 따로 없다. 과제수주 경쟁으로 R&D핵심 연구주체들인 이공계 대학 교수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연구자들의 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다. 과제를 뺏길까봐 대화도 잘 하지 못했던 경쟁관계가 지속되온 터라 서로 비꼬기 바쁜 뒷담화들이 줄을 이어 왔다.

비단 대학 교수와 출연연 사이 관계 뿐만 아니라 출연연과 대학 내부에서도, 과학계 전반의 과제경쟁 문화가 팽배해 서로 보완하고 돕기 보다는 정보를 빼앗고 과제를 위해 싸우는 적으로 서로를 상대했다. '투서 많은 과학계'라는 꼬리표도 괜히 따라 붙은 게 아니다. 연구현장에서 '과학자들의 우정'이란 표현을 듣기가 참으로 힘든 토양이 돼버렸다.

이공계대학의 P 교수는 얼마 전 황당한 사실을 알았다. 같은 건물, 다른 랩 연구자가 동일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 조율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지만 현재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굳이 이야기해서 긁어 부스럼만드는 꼴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P 교수와 같은 체험담을 갖고 있는 과학자들이 현장에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종종 회자되곤 하는 사례다.

과제수주 경쟁문화가 연구자들의 협업과 소통을 막는 주원인이 되고 있지만 다른 요인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과제수주 뿐만 아니라 기관도 모두 경쟁개념이다. 연구기관 차원에서는 연구비에 대한 안정적 확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정부에서는 기관 간의 기관평가를 통한 경쟁을 시키며 소통이 활성화되길 바란다. 1·2·3등을 결정하는 달리기 시합에서 선수들간 소통하고 융합하라고 하는 격이다.

과학계 평가잣대도 연구자들의 관계 증진을 가로막는 장벽이 돼 왔다.
K 국책연구단장은 대학 교수들과의 협업을 위해 중요한 연구를 함께해 보자고 제안했지만, 교수들은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하면서도 일단 논문을 쓰는데 바쁘다 보니 중요한 연구를 동참하기 보다는 매번 새로운 논문을 내야 하는 일상생활의 덫에 걸려 포기한다. 대학에서 완전히 평가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극소수의 교수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결국 과학계 연구협력 활성화의 지속성을 담보하지 않는게 문제다. 전반적인 평가시스템 개선과 교수들의 자연스러운 동참이 이뤄질 때 중요한 연구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K 단장은 말한다.

출연연의 한 미래전략실장은 "진정한 연구자들간 소통이 되려면 줄을 세우는 경쟁문화를 멈춰야 한다"며 "우리 과학계의 소통 패러다임을 경쟁관계에서 보완관계, 시너지창조 관계로 모든 제도와 가이드라인,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정부의 겉치레 소통 '이제 그만'…"현장 의견을 제대로 담는 과정 만들어야"

국가경제의 적신호들이 곳곳에 켜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하나둘씩 꺼져가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현장과 진정으로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의 소통을 방해하는 장벽은 위계질서에 종류도 많고 복잡하게 얽혔다.

여전히 정부는 과학계와의 소통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정부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시성이 짙다. 실질적인 이야기를 담기 위해 어떠한 것들이 마련돼 있는지 현장에서는 잘 느끼지 못한다.

과학기술자들은 전화, 정부게시판, 관료들의 현장방문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알리지만, 의견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없다. 피드백이 없고, 정부는"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고만 한다.

담당 주무관들을 상대해 한참 이야기를 하면 이들은 "권한이 없으므로, 내가 의견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보고를 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소신있는 일부 주무관은 부처로 돌아가 과학자들이 이야기 한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핵심이 사라지기 일쑤다.

사실 정부와 과학자간 소통의 출발점이 엇박자로 틀어진 상태다. 왜곡돼있다. 과학기술인들은 자율적 환경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가시적 성과를 요구한다.

과학자들은 현장 목소리 그대로 연구자들의 견해와 의견을 흑백논리 없이 청취할 수 있는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 정부에서 현장을 믿어주고, 긴 시간을 가지고 큰 그림을 제시해 주는 소통을 원하지만, 그저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고 대화에 나서면 '간섭'으로밖에 현장에 전달되지 않는다.

과학계 한 인사는 "거의 매년 부서가 바뀌는 정부 공무원들은 결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다"며 "연구 실무자들과의 토론회 등 전시성이 아닌 현장의 의견을 담을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한 과학자는 "소수의 연구계 리더에게 정보와 과제 아젠다를 의존하는 것보다는 폭넓은 연구 아젠다 발굴과 연구계 의견교환의 플랫폼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며 "정보통신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과학기술정책 관련 씽크탱크를 활용해 연구계의 세세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가 되는 포인트들을 찾아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정부의 소통이 전문성이 없고 진정성이 없어도 그렇다고 과학계가 소통을 게을리 하거나 머뭇거려선 안된다고 현장에서는 이야기 한다. 불통은 또 다른 위기를 부르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계가 소통에 더 나서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인식이 현장에 퍼지고 있다.

◆ 과학계 스스로 소통 위한 성찰 필요…"과학공동체 발전 의식 갖고 소통에 임해야"

소통 활성화를 위해 과학계에서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소통의 싹이 트고 있다. 과학기술자 소통을 위해 각 연구소나 대학의 기관 차원에서 소통의 장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과 지속 가능함에 대한 의문이 간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소통과 융합 중요성이 대두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소통 부재에 대한 지적은 줄지 않고 있다. 연구소 내부에는 아직 변화의 징후가 전반적으로 확산되진 않았고, 정부와 외부 사회에서는 빠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되고 과학기술자와 기관들이 다양한 시너지를 통해 세계적 성과를 창출하자고 주장했으나 여전히 불통의 벽이 높다. 이러한 양상을 그대로 놔두는 한,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평가다. 아직도 40년 역사가 넘은 대덕연구단지의 연구기관 과학자들은 이웃 연구소에 회의하러 갈때도 매번 번거로운 출입 절차를 받으며 방문한다. 반면 대전정부청사 공무원들은 같은 출입증으로 세종청사 출입이 자유롭다. 이렇듯 연구기관 방문시 신분증으로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 제도를 도입해 교류를 촉진시키는 것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덕에서 다양하게 소통문화로 변화할 수 있는 여건만 충족된다면 한국 과학기술은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연구자는 과학계 변화를 위해 연구자들 스스로 성찰의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L 과학자는 "연구자는 자기가 더 인정받아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연구계가 작동하는 거대 구조를 그저 악의 축으로만 보고 있다"며 "현대적 연구지원 제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또한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연구자의 포지션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다.

L 연구자는 "폴리페서나 폴리서처로 불리우는 연구자들이 기획에 몰두하면서 초기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지만 실제 시장에서 혁신에 대한 보상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획한 자보다는 그 아이디어를 확산시킨 자에게 대부분 돌아간다"라며 "연구기획자가 대부분의 몫을 가져가는 구조를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불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연구계 리더들이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교수들 사이에서도 소통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사례도 적지 않다. 프랑스 유학 출신 L 박사는 '교수 한 명당 한 연구실을 쓰는' 한국의 대학교를 보고 매우 놀랐다"라며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여러 전공 교수가 한 연구실을 쓴다. 폐쇄적인 소통 문화는 선진국가의 융합력을 결코 이길 수 없는 한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한편 본지가 실시한 '과학기술자간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절대적 공감 의사를 밝혔다. 100% 가깝게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 65.7%가 '매우 필요하다'(159명), 28.9%가 '필요하다'(70명)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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