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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계 '마스터플랜 실종' 미래 이끌 연구 없다

[업그레이드 - 연구경영 ①]국가 전략 없는 연구, 원천기술 개발 '뒷걸음질'
과학계 94% '마스터플랜에 따른 과학계 내부 역할분담 부족' 응답

한국 과학기술계가 마스터플랜 없이 단기적 연구개발 풍토에 치중되고 있어, 과학계에서의 국가적 비전 제시 역할이 갈수록 실종돼 가고 있다.

새로운 정권, 새로운 장관과 부처가 내놓는 정책에 연구개발 현장의 모습을 끼워 맞추는 구태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장기적인 투자와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원천기술 개발은 그림의 떡이 돼가고 있는 모양새다. 현장 연구자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각개전투 할 뿐이다.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K 박사는 새 정권이 들어선 후 10년 연구 목표로 수행 중이던 소재분야 연구에서 '다른 과제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당혹스러운 경험을 이야기 했다.

그는 당시 새 정권에서 새로운 연구를 추진하는 것처럼 재포장하는 사례를 체험하면서 뭔가 한국의 연구현장이 잘못돼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K 박사는 "한 분야를 꾸준하게 연구해도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마당에 이러한 정책에 연구 집중을 할 수 없음이 아쉽다"며 "R&D에 대한 국가적 비전이 보이지 않고 임기응변식의 정책만 계속 난무한다면 과학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한 이공계대학 교수는 "정권마다 추구하는게 다르다보니 과학기술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며 "국가 마스터플랜을 세울 때 기획자들이 자기 밥상을 차리고 있기도 하더라"고 일갈했다.

현장 과학기술인들은 각 분야별로 장기적인 과학기술 비전을 세우고 전략적으로 연구를 추진하는 중국의 사례를 심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전을 이루기 위해 연구자들이 모여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습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이미 추격당한 과학기술 분야들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 

과거 산업발전 미션이 맞춰져있던 정부출연연구기관 역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지만 매 정권마다 바뀌고 흐지부지되는 과학기술 정책에 희망은 커녕 오히려 더 움츠러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난 정부는 R&D 속도전을, 현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이라며 단기과제만 생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마스터플랜 없는 과학기술정책은 현장 과학기술자들의 사기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 협력 없는 연구 '마스터플랜 부재 부작용'

국가 R&D마스터플랜의 부재는 한마디로 과학계의 역할 실종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저마다 국가의 앞 길을 모르니 자기의 정체성과 역할을 모른채 우왕좌왕하는 꼴이다. 출연연의 정체성 이슈는 해묵은 논의거리가 됐고, 대학의 미션과 역할도 모호해 졌다.

과학계의 평가 잣대를 보면 국가적 연구개발 비전이 없는 현실을 여실히 가늠할 수 있다. MB 정부당시 출연연 평가 잣대는 논문과 특허로 연구자들은 좋은 평가를 위해 매달렸다. 새 정부 들어서면서 중소기업 지원이 화두가 됐고 연구자들은 이제 연구가 아닌 기업지원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정부도 출연연이나 연구 특성에 맞춰 평가지표를 제시한다. 미래부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국가연구개발사업 표준성과지표(4차)에 따르면 ▲과학적 성과▲기술적 성과 ▲경제적 성과 ▲인프라성과 ▲사회적 성과분야의 평가지표는 다 다르다.

'과학적 성과분야'는 논문과 포상, 생명자원·화합물 등록 및 그 내용을 성과지표로 설정해 국가 자원으로 관리체계확립에 기여했는지를 평가하며, '기술적 성과분야'는 특허 등 지식재산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개발, 시제품 제작 및 판매, 기술혁신에 연계된 성과, 신약개발 등이 성과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적 성과분야'는 기술료 계약과 기술이전 효과, 기술사업화, 중소기업지원 효과, 연구개발 서비스이며, '사회적 성과분야'는 일자리 창출, 과학대중화, 인력양성, 공공서비스, 국제협력을 잣대로 한다.

'인프라 성과분야'는 연구시설장비와 연구지원 인프라, 무기체계개발 성공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각 분야별 연구평가 기준이 상이하지만 현장에서는 출연연 역할과 미션에 상관 없이 평가기준이 사업화 등에 무게를 싣고있다고 느낀다.

기초연구를 연구하는 한 과학자는 "사회가 사업화를 요구한다면 출연연이 그 역할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출연연마다 역할이 다른만큼 연구평가 비중 조정의 변화를 줄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연구소 뿐만 아니라 대학의 평가 잣대도 기술이전, 기술개발, 사업화 등에 치중되고 있다. 미래 유능한 인재를 키워야하는 학교가 제품개발을 하려고 드니 교수들은 과제를 수주하러 움직이고 학생들은 실험실에서 제품개발을 하고 있다. 학교인지 기업연구소인지 모호해진 역할에 불만스럽지만 학교 평가가 그렇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시스템에 학연 협업은 꿈도 못 꾼다.

J 박사는 "과거에는 연구소가 큰 과제를 가져오면 과제 중 학구적인 연구 분야 일부를 대학에 요청해 공동연구가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과제 입찰에는 연구원 뿐 아니라 대학 교수 모습도 부쩍 늘었다"며 "어느 순간부터 대학과 연구소가 공동연구보다는 경쟁상대가 됐다"고 말했다.

연구현장의 한 과학자는 "연구소가 큰 과제를 움직이고, 대학은 기초적이고 학구적인 연구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등 미션을 달리해야 한다"며 "각자의 역할에 대한 미션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지금은 연구 과제를 따기 위해 교수와 연구자들이 연구할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역할 개편이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 "'과학기술기본계획' 존재하지만 현장과 괴리"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 비전 및 추진전략안.<출처=미래부>

우리나라에 과학기술 중장기 발전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매 5년마다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수립된다. 이 계획은 법으로 정하는 국가의 중장기 계획이자 과학기술분야 최상위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수립된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창조적 과학기술로 여는 희망의 새시대'를 비전으로 ▲R&D 경제성장 기여도 40% ▲일자리 64만개 창출 ▲과학기술혁신역량 세계 TOP 7 달성을 성과목표로 하고있다.

다만 문제는 매 정부마다 과학기술 로드맵의 변화가 있어 연구현장에서 장기적 연구개발이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많은 과학기술인이 참여해 의견을 내긴 하지만 반영이 미비해 아쉽다는 평이 많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정부에 현장 목소리를 전달한 P 과학자는 "현장 과학자들과 정부가 함께 로드맵을 작성하는데 도출된 과제들을 보면 현장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경향이 강하다"며 "현장 연구원 등 전문가집단의 의견이 실제 정부 정책화되어야 하는데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게 짜여있어 우리나라 과학기술 미래가 어떻게 될 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정부 관료들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한 전문성 부재는 꾸준한 정책실현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부정부패 척결을 이유로 1~2년에 한 번 꼴로 자리를 옮기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과 긴밀한 신뢰, 협력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 마다 연구개발이 필요한 이유를 또 다시 설명하거나 진행하고 있던 연구과제가 엎어지는 것은 더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출연연 L 박사는 "임기 내에 성과를 내야하는 압박때문인지 장기적인 연구는 점점 더 찾아볼 수 없어지는 상황"이라며 "특히 이번 정부는 성과위주 R&D를 하다보니 장기적인 투자를 통한 원천기술 보유 연구가 많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아쉬워했다.
 
C 박사는 "이러한 정책이 단기적 성과를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계획을 갖고 추진해야할 연구들은 어떻게 될 지부터가 걱정"이라며 "정책하는 사람들만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 과학기술 정책에만 따르면 제대로 된 과학기술 역할분담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대덕넷의 업그레이드 설문조사(4월 20~25일)에서 '현재 국가 과학기술 비전과 전략적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질문에 과학기술자들은 '존재하지만 현장과 괴리돼있다'(135명, 58.7%)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내놨으며, 없다 65명(28.3%), 있다 28명(12.2%), 기타 2명(0.9%)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특히 '국가 과학기술 마스터플랜에 따른 과학계 내부의 역할분담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에는 164명이 '부족하다'(71.3%)고 답했으며, '매우 부족하다' 53명(23%)이 답하는 등  94.3%에 이르는 비율이 부정적인 답변이었다. 우수하다가 5.2%(12명), 매우 우수하다가 0.4%(1명) 수준이었다.

'국가의 과학기술(R&D) 비전과 전략적 방향을 수립하는데 나설 주체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에서는 과학자가 77.7%(178명)로 가장 높았으며, 연구기관 행정조직(21명, 9.2%), 기타(9명, 9%), 대통령(4.8%), 공무원 (8명 3.5%), 정치인(2명, 0.9%)순으로 집계됐다.

'국가 연구경쟁력의 잠재력'에 대해 묻는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우리나라가 선진 강대국에 비해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잠재력이 크다에(107명 46.7%) 가장 많이 응답했으며, 잠재력이 약하다 87명(38%), 매우 잠재력이 크다 23명(10%), 잠재력이 없다 12명(5.2%)순으로 답했다.

과학계 한 원로는 "예전보다는 현장을 많이 보고 정책을 세우려고 하는 것 같지만 아직 부족하다. 정책을 세울 때 현장 연구자들이 참여해 의견을 반영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학연의 미션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과학기술 마스터플랜의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과학계 원로는 "현장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과학기술 비전을 확실히 세워나가고, 그 비전을 토대로 전략적인 과학계의 역할분담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라며 "지금 우리가 모든 분야를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방향을 선택하고 그 방향으로 국가 R&D자원들을 집중시켜 나가는 국가 R&D경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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