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연구회, '제1회 국책연구기관 기관장회의' 개최
"오늘 만남은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에서의 첫 날과 비유"

<사진제공=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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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국제협력관에 양복 입은 중장년 인사 5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총기 가득한 눈빛과 의젓한 동작이 한 눈에 봐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인물들이다. 국책연구기관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의 회동. 시간이 흐를수록 집회장은 엄숙함이 아닌 설렘과 벅참으로 가득찼다. 국책연구기관 설립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과학기술계와 경제인문사회계 전체가 손을 맞잡는 역사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사장 이상천, 이하 연구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안세영, 이하 경인연)는 3일 오후 KIST에서 '제1회 융합과 협력을 위한 국책연구기관 기관장회의'를 개최했다.

과학기술 분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과 경제·인문사회 분야 26개 출연연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융합을 통해 성과를 높이고 국가·사회적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인사말하고 있는 이상천 연구회 이사장 <사진제공=연구회>
인사말하고 있는 이상천 연구회 이사장 <사진제공=연구회>
이상천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씽크홀, 전염병, 기후변화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민 안전과 건강, 국가·사회적 이슈를 해결해야 할 임무는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고 밝히고 "단일기술만으로는 이 같은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만큼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가 융합과 협력으로 희망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안세영 이사장도 "연구원의 지방 이전으로 인한 운영의 변화와 인재확보, 정부의 지원 등 두 기관 간에 정보와 노하우를 나눌 부분이 많아졌다"며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전체 국책연구기관 간의 실질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자"고 화답했다.

회의는 연구회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융합연구사업'을 소개하고 경인연의 참여를 모색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융합연구사업은 출연연 개방과 협력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2개 이상의 출연연이 공동으로 관련 기술 분야에 대한 산·학·연을 참여시켜 미래 신산업을 창출하기 위해 설계된 연구사업이다. 

과제에 따라 각 기관의 인력들이 한 공간에서 공동으로 연구하는 형태의 일몰형 연구조직인 '융합연구단'과 개방형 연구기획 체제인 '융합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호철 연구회 융합연구본부 융합연구기획부장은 "지난해 8월 본격적으로 시작돼 총 10개의 융합클러스터가 출범했고 올해 추가로 10개를 선정, 착수할 계획"이라며 "이번에 미래선도형 신규과제 발굴을 위해 중요성 높은 국가사회 현안 선정시 경인연에서 전문가 추천을 받으며 협력의 물꼬를 튼 만큼 앞으로도 많은 참여를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김도연 서울대 초빙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초청강연이 진행됐다. 김 교수는 '개방·혁신을 통한 개혁(change through openovation)'을 주제로 출연연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설립 초창기에는 연구기관이 출연연 밖에 없어서 눈에 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산업계, 학계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출연연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국내외의 연구환경의 변화를 직시하고 위기의식을 가져야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치열한 내부경쟁을 통해 외부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관장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만들며, 국가적 이슈에 대비함과 동시에 국민에게 다가가는 국책연구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도연 교수의 강연이 진행됐다 <사진제공=연구회>
김도연 교수의 강연이 진행됐다 <사진제공=연구회>

강연 후에는 양 연구회 협력방안에 대한 자유토론이 마련됐다.

김흥남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은 "양 연구계가 함께 가는 길을 시작한다는 것에 가슴 벅참을 느낀다"며 "국책연구기관들이 합쳐 국가 현안을 충분히 해결하고 50년 후에 오늘을 역사에 남길 수 있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김준경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우리 연구원에서는 1981년부터 공무원·군인 등을 대상으로 경제교육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중학교 1학년 자율학기제 시행에 맞춰 세종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베이스드 러닝(Project-based learning·PBL)' 방식의 경제교육을 시도하고 그 효과를 검증할 계획"이라며 "과학계가 함께 참여해 과학교육을 맡아주면 지역사회에 기여함과 동시에 과학교육을 통한 창의력 향상을 증명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한선화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은 "경제인문사회계와 과학기술계가 함께 하면 충분히 시너지(synergy)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실제 연구원들, 젊은층들이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보자"고 강조했다.

송종국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은 "과기계와 경제인문사회계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기관의 특성상 양 쪽의 협력 활성화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며 "출연연 기관별로 정책 관련 부서장들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정기적인 모임을 기획해 실무자급의 교류도 추진해보겠다"고 피력했다.

참석자들은 회의 후 뇌과학연구소와 로봇·미디어연구소 등 KIST 연구현장을 둘러보고 만찬장에서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한편 이번 회의는 지난해 말 연구회와 경인연이 세종시에 입주하며 같은 건물을 사용하게돼 추진의 급물살을 탔다. 양 기관의 이사장들이 "과학계와 인문계의 씽크탱크(Think Tank) 기관이 물리적 공생 뿐 아니라 실질적 교류와 융합, 협력을 해보자"고 뜻을 모은 것. 양 기관이 합심해서 국가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만남의 취지인 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KIST가 첫 개최지로 선정됐다. 내년 2월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는 KIST는 우리나라 첫 종합국책연구기관으로서 경제발전을 주도해온 국가R&D의 발상지다.

윤석진 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은 "이번 회의는 과기계와 경제인문사회계의 협력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첫발을 떼는 자리"라며 "앞으로 이런 소통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양 연구회 기관장들의 의미있는 발언모음…"대덕과 세종 앞글자 합치니 우리가 '대세'"

○…"르네상스가 가능했던 조건 중의 하나는 메디치 가문이 각계각층의 전문가들, 예술가들, 과학기술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만남이 결국 융합된 새로운 문화, 창작품을 만들어냈다. 경제사회인문계와 과학기술계의 오늘 만남이 메디치 가문에서 그들이 처음 만나는 그 날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새로운 국책연구기관의 새로운 문화를 창달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함께 힘을 합쳐나가면 좋겠다." (이상천 이사장, 맺음말에서)

○…"절전지훈(折箭之訓)이라는 말이 있다. 가는 화살도 여러 개가 모이면 꺾기가 힘들다는 의미다. 출연연도 뭉쳐야 한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훨씬 더 영향력이 있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연구기관의 미래를 가장 확실히 예측하는 길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힘을 합쳐 국책연구기관의 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김도연 서울대 교수, 강연에서)

○…"대덕에 과학기술계 연구소 대부분이 있고, 세종에 경제인문사회계 연구소 상당수가 자리잡았다. 이 두 지역의 앞글자를 합치니 '대세'가 됐다. 양 기관이 정말 대세가 되서 국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보자."(김흥남 ETRI 원장, 토론에서)
 
○…"핵융합연구소를 방문해서 핵융합 과정을 들어보니 이후로는 '융합'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못 쓰겠다. 보통 어려운게 아니다. 다른 성격을 가진 과학기술과 경제인문사회가 만나서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있는게 아닌가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 숙제를 풀어야 진정한 융합과 창조경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토론에서)

○…"과학기술계는 최근 융합연구가 일반화되었다. 이제는 경제인문사회 뿐 아니라 예술과의 융합까지 해야 한다."(이병권 KIST 원장, 토론에서)

토론에서 이병권 KIST 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연구회>
토론에서 이병권 KIST 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연구회>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중앙으로 나와 참석자들과 눈을 맞추며 의견을 냈다 <사진제공=연구회>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중앙으로 나와 참석자들과 눈을 맞추며 의견을 냈다 <사진제공=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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