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연 주최, 화학연 주관 '국민안전기술포럼' 개최
'화학 안전기술의 현황 및 전망' 주제…화학사고 원인 분석과 과기계 대응방안

"화학안전사고의 무서움만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화학분야 과학기술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미지의 위험을 앎의 영역으로 극복해나갈 수 있다. 인류사적인 문제는 화학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공기정 화학연 화학안전연구·평가센터장)

"중대 화학사고는 사고의 발생빈도는 낮지만 사고의 크기가 일반적인 상상을 넘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 또 소규모 일반사고는 안전규제 및 관리 절차로 예방이 가능하지만, 대형 화학사고는 반드시 재질선정과 안전설계 등 과학기술 기반으로 접근해야 재해예방이 가능하다."(권혁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영국에서 석유화학공장 폭발사고로 유럽 전체가 40여일간 시커먼 연기 속에서 살았다. 울산 석유화학공장에서 원유탱크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했지만, 초기에 거품 뿌리는 방식으로 방제작업을 벌여 유증기 폭발 위험을 막았다. 방재시스템이 그만큼 중요하다. 과학기술계에서 서로 협업하면 현장에서 필요한 방재 장비를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과학기술계가 해야할 일에 대한 진지한 토론의 자리가 마련됐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사장 이상천)는 2일 오전, 한국언론진흥재단 국제회의장에서 '제3차 국민안전기술 포럼-화학안전기술 현황 및 전망'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화학사고 제로를 향한 과학기술의 역할'을 주제로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화학물질사고에 대한 과학적 진단과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추진됐으며,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위험물학회가 공동 주관했다.

포럼에서는 주제발표와 패널토의로 나뉘어 총 7명의 각계 전문가가 의견을 발표했으며, 과기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안전 관련 기술 개발 및 시스템도 소개됐다.

이상천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화학물질 사고로 인한 연간 피해액만 18조원에 달한다"며 "이번 포럼을 통해 화학물질 누출사고의 원인을 진단하고 실질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출연연이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규호 한국화학연구원장는 환영사에서 "화학연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역량을 바탕으로 관련 출연연들과 협력해 화학사고 예방을 통한 국민안전 사회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공기정 센터장 주제발표 "안전기술 개발로 영웅이 필요 없는 안전사회 만들겠다"

포럼에서는 먼저 공기정 화학연 화학안전연구·평가센터장의 '화학사고 제로를 향한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한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공 센터장에 따르면 수출입품목 분류체계를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무역규모는 1454억 달러로 전체 무역의 13%를 차지하고 있으며, 화학산업 전체 종사자수는 2014년 기준 32만2791명으로 10대 주력산업 중 2위다.

그만큼 화학산업은 우리나라 기반산업이지만 잠재적인 위험이 많다. 1960년대 정유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조성된 화학산업은 지하매설화학관의 절반 이상이 1990년 이전에 매설됐을만큼 시설의 노후화가 진행된 상태며, 화학물질 유통량이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또한 울산의 경우 인구의 13%가 석유화학공단으로부터 5km 이내에 거주할 만큼 전반적으로 국내 화학산업단지는 주거지역과의 근접성이 높지만, OECD 34개국 중 산재사고 사망율이 가장 높은 실정으로 국내의 산업안전 의식은 산업 성장속도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공 센터장은 "화학산업은 다종의 유해물질을 다루고 있고, 그 중의 상당수는 고온, 고압 등의 극한조건에서 취급되고 있어 화재, 폭발, 독성 등의 잠재적인 위협요소가 많다"며 "화학산업의 보이지 않는 위험은 과학기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출연연 융합연구시범사업을 통해 진행 중인 '화학물질사고 예방·감시·대응 기술개발 및 방재시스템 구축' 과제를 소개했다. 14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지난해 화학연을 중심으로 해당 과제를 추진해왔으며, △화학사고 예방기술(원자력연) △화학사고 대응기술(화학연) △센싱 모니터링기술(KIST) △안전운송기술(철도연) 등 4개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및 예방·감시·대응시스템 구축이 진행 중이다. 해당 과제에서는 각종 유해물질에 대한 감지·모니터링 기술개발은 물론이고, 화학사고 피해 예측 및 대응기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공 센터장은 "화학사고 안전 선진국이 되려면 법 제도 변화, 기업의 안전 인식 변화, 국가 기관의 협력 등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밑바탕은 화학 안전 기술이 되어야 한다"며 "국민의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피력했다.

한편 화학연은 2013년 6월 국가 화학산업 사고 대응 및 예방을 위해 원내에 화학안전 연구·평가센터를 설립하고 화학안전 분야 연구개발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화학사고 시뮬레이션 모델링 등을 통해 사고원인으로부터 근본적인 예방대책을 도출하고, 통합 연구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등을 진행 중이다.

◆ 패널토론, 각계 전문가들 '과학기술 중심의 종합 안전대책 필요' 강조

각계 화학 안전 사고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패널토론에서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의견이 제기됐다. 

권혁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은 '화학사고예방과 기술'에 대한 의견을 냈다. 권 원장은 "사고발생 원인의 4%는 '불안전한 상태', 즉 기술적 문제이고, 96%가 '불안전한 행동', 즉 관리적인 문제"라며 "평소에 절차를 잘 지키다가 단 1번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시간,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들에는 태생적으로 위험요인들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며 "사고재발방지에 있어서 단 하나의 마술같은 해결책은 없으므로 위험요소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가장 궁극적인 재해 예방 관리방법은 기술적인 방법과 관리적 방법의 병행 접근"이라며 "안전 리더십과 깊은 이해와 경험, 효과적인 관리 시스템, 기술요소 등이 조화되어 화학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발언을 갈무리했다.

정제억 김앤장 법률사무소 안전환경전문위원은 '화학사고방지를 위한 과학기술을 법 체계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제언했다.

정 위원은 "현재 관련 법체계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며 "하나는 법제화 과정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최신의 과학기술이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장비에 대해서도 여러 기관에서 각자의 규정을 두고 있어 해석이 다양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화학안전사고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법으로 하려고 하기 보다는 민관산학 협동으로 가이드라인을 정립,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민관위원회가 만든 가이드라인을 의무조항으로 하는 것은 당장 어려울 수 있으나 최신 과학기술이 빠르고 쉽게 산업계에 적용되는 것은 효과적일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안전 문화와 기술의 변천'을 주제로 현장 중심 기술개발과 과학기술 정책의 효율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문 교수는 "안전 분야는 정책과 문화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하며, 그 중심에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특히 실제 방재 현장을 중심으로 한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세월호 이후로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며, 안전 분야가 R&D 체계의 소분류에서 중분류로 상향되고 관련 프로젝트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제대로 준비 없이 부처별로 중복되는 사업이 많아 우려도 크다"며 "종합사업인 안전은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각 주체별로 해야할 일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우 안전성평가연구소 미래환경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환경호르몬'의 예를 들어 대체물질의 적용에 대한 위험을 경고했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800여종의 내분비계 장애물질, 즉 환경호르몬이 플라스틱 용기, 음료캔, 합성세제 등에 함유돼 일상생활에서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환경호르몬과 관련된 인체질환에 소요되는 의료비용만 일 년에 180억 유로로 추정할 만큼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

박 연구원은 "일부 환경호르몬에 대해서 대체물질이 개발, 제안되고 있지만 이들은 화학적 기능성의 복제에만 집중해 오히려 위해성에 대한 정보는 간과되고 있다"며 "대체물질보다 오랜 기간 위해성이 검증된 환경호르몬이 인체노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사용된다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위해성 검증과 유해 영향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소통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원종운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물류시스템연구팀 박사는 '위험물 안전운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현재 개발중인 ICT기반의 위험물 안전운송 기술을 소개했다.

원 박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는 위험물 운송의 90%가 차량을 통해 진행되고 있으며, 관련 사고의 절반 이상이 졸음운전에 기인할 만큼 위험물 운송 차량에 대한 관리가 미비하다.

원 박사는 "속도제한 장치와 위험물 적재 차량의 통행제한 구역 설정 등의 관리제도는 있었지만 운송자 개인의 선택에 따라 적용되어 효과가 없었다"며 "위험물 운송 차량의 실시간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한 위험물 안전운송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시스템은 위험도와 통행시간을 고려해 운송 경로를 관리하고, 차량 및 화물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며, 사고발생시 자동으로 인지해 관제센터로 실시간 전송한다. 또한 경로이탈이나 과속, 장기운전 등을 통제하는 여정관리시스템을 통해 사고율을 낮춘다.

박진수 화학물질안전원 사고대응총괄과 상황팀장은 패널토론에서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박 팀장은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안전처 주관으로 '국가안전 대진단'을 실시 중이라며 그 중 환경부는 유해물질 취급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진행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13년에 발생한 화학안전사고를 분석해보니 작업자 부주의, 시설노후화, 운송사고가 대부분이었다"며 "이에 따라 원인별 맞춤형 화학사고 예방 전략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박 팀장은 "중소업체 및 취약 분야에 대한 정부지원을 확대하고, 촘촘한 안전망 마련과 엄정한 법 집행으로 5년 안에 화학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는 관련 분야 산학연 전문가 25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국민안전기술포럼은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 과학기술을 통한 해법을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지난해 9월 '싱크홀', 11월 '국가 감염병' 문제를 다룬 데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수요조사를 통해 가장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선정, 분기별로 한 차례씩 국민안전기술포럼을 개최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