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원자력 기술자립 후배들 참석한 가운데 故 한필순 박사 영결식 진행
국가사회공헌자묘역 故 최순달 전 장관과 나란히 영면

수많은 후배 연구자들이 궂은날씨에도 고인의 마지막길을 함께하며 명복을 빌었다.<사진=대덕넷>
수많은 후배 연구자들이 궂은날씨에도 고인의 마지막길을 함께하며 명복을 빌었다.<사진=대덕넷>

"살아있는 전설과 함께 한 영광의 나날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故 한필순 박사의 운구행렬이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들어서자 미리 나와있던 후배 연구자들이 머리를 숙이며 고마움과 존경을 표시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눈시울이 붉히며 눈물을 훔쳤다.

지난 25일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타계한 원자력 대부 故 한필순 박사의 영결식이 29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발인에 이어 한국원자력연구원, 오후 3시 30분 대전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서 진행됐다.

고인의 유해가 원자력연에 들어서자 많은 후배연구원들이 슬픔속에서도 존경과 고마움을 표시하며 인사를 했다.<사진=대덕넷>
고인의 유해가 원자력연에 들어서자 많은 후배연구원들이 슬픔속에서도 존경과 고마움을 표시하며 인사를 했다.<사진=대덕넷>

고인의 유해는 오전 10시 고인이 원자력기술자립을 위해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불태우며 연구자들과 함께 해 왔던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도착했다.

원자력은 본관동 현관 앞에 영결식을 겸한 노제의식을 마련하고 빈소를 찾지 못한 연구원들이 마지막으로 헌화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별도로 마련된 추도사는 고인과 함께 원자력 기술자립 역사를 정리해온 김연종 연구원이 낭독했다. 김 연구원은 추도사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목이 메이는지 여러번 울먹였다. 함께 자리한 원로연구자들도 원자력 대부를 추억하며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후배들의 헌화를 받은 고인의 유해는 원자력 기술자립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역사관과 타계 전날까지 원자력 기술자립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집필작업에 몰두했던 집무실을 지나 에너토피아 공원, 원전연료 등 기술자립의 땀과 노력이 깃든 곳들을 천천이 지났다.

고인의 집무실 책상에는 살아생전 보던 신문, 사전 등 책자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장에는 고인의 철저한 성격을 그대 닮은 자료들이 이름표를 달고 낯선 방문객을 맞았다. 유족과 후배 연구자들은 고인의 손때묻은 유품을 보며 울컥 쏟아지는 눈물에 한동안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고인이 타계 전날까지 머물며 집필에 집중했던 집무실. 그의 꼼꼼한 성격을 그대로 닮은 책자, 자료들이 주인없는 빈 자리를 지키고 있다.<사진=대덕넷>
고인이 타계 전날까지 머물며 집필에 집중했던 집무실. 그의 꼼꼼한 성격을 그대로 닮은 책자, 자료들이 주인없는 빈 자리를 지키고 있다.<사진=대덕넷>

이후 군복, 방탄헬멧, 수류탄을 직접 개발하면 국방과학기술 자립에도 기여했던 ADD(국방과학연구소)를 차량으로 이동한 후 대전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으로 향했다. 묘역에는 이미 많은 연구원 후배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다.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약력 소개, 유가족과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고인과 동창이며 원자력 기술자립에 참여했던 김원영 박사가 조객 대표로 나서서 헌화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이후 하관과 허토, 3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으로 故한필순 박사는 영원한 영면에 들었다.

영정사진 속 고인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다.<사진=대덕넷>
영정사진 속 고인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다.<사진=대덕넷>

고인과 함께 한 연구자들은 안장식이 끝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고인에게 마지막 헌화를 올리며 고인의 원자력 기술자립에 대한 열정과 의지, 뜨거운 애국심을 기억하고 추억했다.

이번 故한필순 박사의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안장은 선후배 연구자들과 원자력연구원, 미래부의 발빠른 움직임으로 가능했다. 고인은 공군 대령출신으로 당초 한국전참전 장교 묘역 안장이 예정돼 있었다. 선후배연구자들이 발벗고 나서서 고인은 원자력 기술자립과 국방과학기술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로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안장이 당연함에 한 목소리를 냈다. 

이에 정부는 고인이 2010년에 받은 1급 창조장 수상 등 자격 요건과 서류심사를 통해 단시일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안장을 승인했다.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32번째로 안장된 故한필순 박사의 묘소는 지난해 10월 안장된 故최순달 박사의 바로 옆자리다. 살아 생전에도 이웃으로 지냈던 두 고인은 이제 하늘에서도 영원한 연구 동료로 함께 하게 됐다.

고인의 유해가 안장식을 위해 대전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들어서고 있다.<사진=대덕넷>
고인의 유해가 안장식을 위해 대전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들어서고 있다.<사진=대덕넷>

추도사 전문

故人께서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정정한 모습으로 출근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존경하는 한필순 소장님을 떠나보내게 됐습니다.

故人께서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셨습니다. 또한 한 개인이기 전에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계의 대부이셨습니다.

'기술이 없으면 노예가 된다'는 확고한 철학으로 원전 기술 자립을 추진한 故人은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한국형 표준형 원자로, 연구용 원자로 개발을 추진하시어 대한민국의 원자력 기술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자립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과학자들을 보내며 "실패하면 돌아오지 말고 태평양에 빠져죽자“며 만세삼창을 외치게 하던 일화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불굴의 추진력과 리더십을 가진 고인을 필두로 한 원자력과학자들은 원자력 기술 자립이 곧 국가에너지 기술 자립이라는 일념으로 똘똘 뭉쳐 혼신을 다하신 결과 불과 10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원자력 발전 기술 자립을 이룩하실 수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대한민국 원자력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는 원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며 연구원의 든든한 큰 어른이 되어주셨습니다.
 
故人께서는 특히 원자력 연구기록화 사업과 원자력 기술자립 회고 작업에 열정을 보이셨으며 떠나시는 바로 전 날까지도 연구원 집무실에 나와 저녁까지 회고록 작성 하시다 귀가하시어 우리의 마음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故人은 후배 과학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시며 후배들이 원자력 과학자로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故人께서는 언제 어디에 있든 자신의 존재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셨습니다. '살아있는 전설'과 함께한 영광의 나날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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