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사이언스 코리아-재교육上]출연연 재교육 프로그램 전무...과학계 존립 위협

"재교육요? 출연연 27년 동안 거의 받은 적 없습니다. 연구원들 사이에는 들어올 땐 '금덩이', 나갈때는 '돌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국내 유명 대학, 외국 석박사를 거치고 정부 출연연에서 근무하다 퇴직을 앞둔 대덕연구단지 한 책임연구원의 '돌멩이 연구원론'이다. 대덕연구단지는 '과학 동네','박사 동네' 등 각종 수식어가 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깜짝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각한 것 중 하나가 종사자들의 재교육 문제다. 대덕연구단지 출연연 종사자들의 학력 수준은 누가뭐래도 국내 최고 수준. 명문 대학을 졸업한뒤 국내외 유명대학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연구원'이 주류다.천재,수재 소리 듣던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출연연에 들어오면 천재도 '깡통'이 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출연연의 재교육 시스템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경쟁력이다'는 민간의 마인드는 찾아 볼수가 없다. 물론 모든 출연연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일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 춘 곳도 있다(업그레이드 부속 기사 참고). 하지만 극소수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S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한 책임연구원의 사례를 보자. 그는 지난 70년대 이른바 '박통(박정희대통령)시절' 유치 과학자의 일원으로 대덕연구단지 모 연구원(院)에 발을 들여놓았다.

정신없이 연구활동을 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크고작은 업적으로 조직 내에서는 꽤 인정을 받은 연구원이었다. 그러기를 20여년. 연구원 생활에 회의가 들며 다른 일을 하려고 했으나 절망해야 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0년 전에 획득한 기술과 경영 마인드로는 벤처창업도, 전직도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는 "대부분 출연연은 고 3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면 공부하지 않는 국내 교육 시스템과 비슷합니다"라면서 "포닥(Post Doc)을 한 다음 연구소에 들어왔는데 컨퍼런스나 세미나 등을 제외하고는 직무교육을 전혀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연구원의 체감 재교육 욕구는 이러한 고민들을 반영한다. 대덕넷이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을 해 본 결과 무려 92%의 응답자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이중에서 42%는 '매우 필요하다'고 답해 과학기술자들의 재교육 요구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현재 연구원내 재교육 프로그램의 존재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을 훌쩍 넘는 63%가 '없다'나 '거의 없다'라고 답변했다. 연구원들을 '돌멩이'로 내모는 요인이다. 대덕연구단지 과학자 K 박사는 "주변에서 많은 과학자 동료들이 재교육의 필요성을 동감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하지는 않고 있다"면서 "아마 당장은 그렇게 절실하지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분야의 재교육과 함께 문제되는 것은 보직자 교육. 출연연에서 선임-책임급 연구원은 대개 팀장이나 그룹장, 부장, 단장 등의 '직책'을 맡게 된다. 소규모 혹은 중규모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뜻이다.기업의 소사장이라할 이들 중간급 리더들의 경쟁력이 전체의 경쟁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게 사실이다.이들이 후에 한국 과학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들에도 해당된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조직운영 교육은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한국 과학계의 장래를 우려할 정도로 열악하다. 연구조직은 성과에 따라 규모가 확대된다. 2-3명으로 시작한 연구조직이 20-30명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당연히 20-30명을 운영할 때는 그에 걸맞는 관리방식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단계별로 재교육을 받아야 하나 그런 프로그램은 전무한게 과학계의 현주소이다. 한 고참 연구원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출연연의 문제점은 프로젝트 리더가 되면 연구와 행정을 동시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지나면 오히려 행정 일이 더 많아지게 되지요.이른 바 관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이공계 석박사를 마친 리더가 3-4명이야 괜찮지만 보조원까지 10여명이 넘어가면 사실은 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미리 조직 관리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리더가 된 이후에 하루나 이틀짜리 교육이 실시됩니다. 프로젝트 진행도 해야 하는데 행정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연구도 안되고 관리도 안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연구도 죽고 행정도 죽는 시스템입니다."

출연연 연구원들에게 주어지는 '연구연가제도' 역시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 출연연에서는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1년에 1-2명이다. 10년 동안 고작 10-20명이다. 하늘의 별따기다. 5백명 규모의 출연연에서 연구원이 연구연가를 활용하려면 정상적으로는 죽을때까지도 갈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21세기 프론티어 사업단의 한 책임연구원은 "연구연가제도를 한번 이용하려고 하면 거의 투쟁을 해야합니다"라면서 "출연연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던 지난 90년을 기점으로 이 제도가 거의 사장됐습니다"라고 밝혔다.

연구기관 차원의 재교육 뿐만 아니라 개개인들의 재교육 의지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 불고 있는 '경쟁력 높이기' 는 다른 세계 이야기다.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재교육은 당연히 기관에서 시켜주는 것 쯤으로 생각한다.

연구원들의 급여 항목에는 연구 활동비(이름은 다소 다를수 있음)가 있다. 연구활동비는 글자 그대로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비용이다. 연구활동 능력을 각자가 향상시키라는 항목의 비용이다. 때문에 세금조차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이것을 생활비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일반 샐러리맨도 연봉의 10%정도는 재충전,재교육에 활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관련 모 출연연의 C모 연구원은 "급변하는 과학기술 시대에 연구원만큼 자기 교육이 필요한 직종도 없을 것"이라면서 "PBS제도 등에 따른 사기 저하로 의욕이 상실된 탓도 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한국 과학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조직과 개인이 제각각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진지한 반성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대덕넷 업그레이즈 사이언스 코리아 특별취재팀] webmaster@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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