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민철 표준연 박사의 연구개발 뒷이야기

추민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가 물과 기름이 제대로 섞인 결과물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추민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가 물과 기름이 제대로 섞인 결과물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상상으로 시작해 생각으로 그려보고 구체화하니 장치가 실제 만들어지는 거에요. 그리고 장치를 활용해 실험했는데 성과가 나오는 거에요. 감동이었죠. 제대로 사고하나 쳤구나 싶었지요.(웃음)"

영원히 공존할 수 없는 물질로 알려진 물과 기름을 완전하게 섞는 기술과 장치를 개발한 추민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산업측정표준본부 신기능재료표준센터장. 그는 첫발견 당시 감동이 여전히 생생하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흰눈이 펑펑 내리던날 그의 실험실을 찾았다. 지하에 위치한 그의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실험장비와 연구 열기가 계절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후끈하다. 책상위에는 성공적으로 섞여진(물과 기름) 오래전 결과물들이 변함없이 나란히 놓여있다.

◆ '물과 기름을 섞을 수 있을까' 상상으로 시작해 장치개발

'물과 기름을 섞을수 있을까.'

물과 기름은 화학적으로 물은 극성, 기름은 비극성인 반대의 성격으로 섞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추민철 박사는 상식을 뛰어 넘어 상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날마다 실험 과정을 그려보고 연구를 진행했다.

"기름의 크기를 나노사이즈로 줄이면 가능하겠다 싶었어요. 기름을 물속에 나노크기로 분산시킬 수 있는가가 연구의 핵심이었어요. 또 나노사이즈의 물질을 엉키지 않게하는 것도 넘어야할 산이었고요."

그가 처음부터 물과 기름을 섞는 연구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표준연 산업측정표준본부의 본연의 임무인 기업의 측정업무를 지원하면서 제조기업들의 애로 기술이었던 분산문제를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분산연구에 집중했다.

분산은 고체 또는 액체가 액체안에 고루 퍼져 있는 상태. 분산 안정성은 입자가 용액안에 얼마나 고루 퍼져 있는가가 관건이다. 이 수치가 높을 수록 입자끼리 응집 돼 분리 될 확률이 줄어든다.

특히 나노기술이 개발되면서 분산기술은 더욱 중요해졌다. 더 잘게 부서진 입자들이 엉키지 않게 골고루 섞였을때 제품이 가치를 발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 박사에 의하면 나노기술이 개발됐음에도 쉽게 사업화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분산이 이뤄지지 못해서다. 그는 "기존 비접촉식 초음파 기술에서는 세라믹볼을 같이 넣어 물질의 분산을 시도했다. 그러다보니 분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추 박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음파 방식에 염두를 뒀다. 초음파를 용액중에 발생시키면 파장에서 감압과 증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그동안 미세한 기포한 발생하게 된다. 이를 공동현상(Cavitation)이라고 하는데 일정 압력이상이 되면 기포가 폭발하면서 큰 에너지가 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기존 초음파 방식은 물속에 기름을 마이크로 크기로 분산시켜 시간이 지나면 분리되고 말았다. 또 소음과 장치에 열이 발생하면서 대량생산은 불가능했다.

추 박사 연구팀은  공동현상에 집중했다. 원통형 초음파 센서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운데로 집속되도록 하면 어떨까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은 결실로 이어졌다.

추 박사는 "원통형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운데로 집속시켜 공동현상을 최대로 높여 물안에 기름 입자를 작게분해할 수 있었다"면서 "또 용액을 순환시켜 균질하게 분산이 가능하며 대량생산과 자동화 연속 공정으로도 구현이 가능했다"고 초음파집속장치 개발 과정을 설명했다.

◆ 상상이 현실로…나노에멀전 안정된 분산 성공

추민철 박사가 개발을 기술을 화장품, 세제,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추민철 박사가 개발을 기술을 화장품, 세제,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길애경 기자>

나노기술은 100만 분의 1을 뜻하는 마이크로를 넘어서는 미세한 기술이다.  미국·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2002년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을 제정해 기술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추 박사에 의하면 기업에서도 나노기술을 접목한 제품개발이 활발하다. 하지만 나노물질이 제품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분산이 관건이다. 

그는 "나노기술을 개발했더라도 분산이 안되면 측정을 할수 없고 다음 공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표준연에서는 본연의 임무인 측정을 해야하는데 서로 엉킨 나노물질로는 측정이 어렵다. 초음파 집속 장치는 그런 문제를 해결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썬크림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분말 물질을 실험해 보았다. 2년간 반복해서 해보니 되더라"며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2년간 실험해보고 또 해보고 하며 밤 12시 이전에 퇴근해 본적이 거의 없었어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기업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생각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분말 분산에 성공하니 궁극으로 물과 기름의 분산에 생각이 닿았어요. 가능할까 고민이 됐지만 식용유로 실험을 해 보았죠. 그런데 기름이 물속에 섞이며 분산이 가능했어요."

추 박사는 연구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 특허박람회에서 개발한 분산기술을 발표했다. 결과는 관심 폭발로 이어졌다. 특히 국내 굴지의 화장품 기업에서 당장 문의를 해왔다.

화장품의 에멀전 상태는 물에 기름이 분산된 것을 이른다. 이때 계면활성제가 필수로 포함된다. 기름이 물에 제대로 분산되려면 그에 맞는 계면활성제가 필요한데 기름에 맞는 계면활성제를 찾는 것이 화장품 회사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는 것.

추 박사가 개발한 장치로 실험을 하니 화장품 재료인 기름이 제대로 섞이며 계면활성제 없이 에멀전 상태로 만들어졌다. 이 기술은 반도체, 화장품, 페인트, 잉크, 의·제약, 음료 및 약물전달물질(DDS: Drug Delivery System) 등 다양한 분야의 분산 공정에 활용이 가능하다. 상용화 시 대박행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 국제 특허 출원 완료…소재강국 위한 분산기술 기반 다지고 싶어

추 박사가 개발한 연구결과는 올해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일본, 독일, 중국 4개국에 국제출원을 마친 상태다.

"기술개발 소식이 기사로 나간 후 새벽 5시반부터 연구소앞에 와서 기다리는 분이 있었어요. 기업을 운영하는데 분산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기술원리를 설명해 드리니 정말 기뻐하시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 하시는데 보람이 컸습니다."

추 박사의 요즘 일정은 거미줄처럼 빼곡하다. 연말 일정에 기술개발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기업, 중소기업 등이 기술문의를 해오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는 "분산 문제는 제조업에서 꼭 필요한 기술인데 연구하는 과학자가 거의 없었다. 리스크가 커 연구과제로 진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이 기술은 소재 강국으로 가기위해서는 꼭 넘어야할 산이다. 현재 인력양성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분산 분야 기술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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