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KIST 박사 "머릿속 지우개 '알츠하이머' 평생 연구" 포부
혈액 한 방울로 알츠하이머 진단…경구 치료제 개발 박차

벽 한쪽을 가득채운 가득한 피규어.<사진=김지영 기자>
벽 한쪽을 가득채운 가득한 피규어.<사진=김지영 기자>
어벤저스의 슈퍼히어로, 건담, 비틀즈 캐릭터 인형 등 귀여운 피규어들이 과학기술 관련 책들과 함께 어우러져있는 모습이 낯설지만 재밌다.

예사롭지 않은 이 공간의 주인은 김영수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다.

김 박사는 학창시절부터 피규어를 모으기 시작했다.

"방에 놀러오는 학생들이 피규어 모으는 것을 보고는 선물해 주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선물로 받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웃음)

옆 책장을 보니 빈 샴페인병도 여럿이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마다 기념으로 샴페인을 마시고 그 병에 이름을 적어 보관한다. KIST 연구원으로 또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생물화학 전공 교수로도 활동하는 덕분에 김 박사는 학생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연구자 중 하나다.

피규어를 유독 좋아하고, 학생들과 격없이 대화를 즐기는 김 박사가 최근 세계적 연구성과를 내놨다. 일상적으로 재미있게 연구하고 학생들을 배려하며 격없이 소통한 덕분이다. 김 박사는 학부생 1학년생과 함께 연구를 집중한 결과 피로회복제 등 건강보조식품에 흔하게 들어있는 '타우린'이 알츠하이머 치료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밝혀 냈다. 김 박사는 이 연구성과로 머지않아 부작용 없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의 꿈을 꾸게 됐다.
 

KIST 연구원이자 UST 교수로 활동하는 김영수 박사는 졸업하는 학생들과 함께 샴페인이나 와인 등을 마시고 이름을 적어 보관한다.<사진=김지영 기자>
KIST 연구원이자 UST 교수로 활동하는 김영수 박사는 졸업하는 학생들과 함께 샴페인이나 와인 등을 마시고 이름을 적어 보관한다.<사진=김지영 기자>

◆ 재미난 연구활동에서 세계에 없던 성과 창출

타우린과 알츠하이머 치료의 상관관계를 밝힌 성과는 사실 재미로 시작한 연구 덕분이다. 김 박사는 매년 방학마다 외국에서 건너온 학생들을 지도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짧은 기간 동안 목표하는 성과를 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는 인터뷰를 통해 학생이 관심 갖는 분야에 흥미를 돋아주는 실험을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번 연구성과 역시 방학 시즌마다 외국 대학에서 인턴쉽 사업의 일환으로 KIST를 방문하는 학부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1년 남짓 짧은 시간동안 학부생의 연구성과가 영향력 있는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 하지만 '어떤 연구과제를 학생들에게 주면 재밌게 연구할 수 있을까' 대화하고 고민하다보니 좋은 연구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김 박사는 지난 7월 미국 MIT대학에서 온 학부 1학년 윤진호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이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게됐다. 김 박사는 "아직 학부생이고 의대에 간다고 하니 재밌는 실험이 뭐가 없을까 고민하다 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타우린을 물에 녹여 알츠하이머 쥐에게 매일 먹이는 실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실험을 진행하자 생각치도 못한 성과가 나타났다. 알츠하이머병과 타우린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는 실험결과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타우린에 의한 알츠하이머병 치료 효과 이미지<사진=KIST 제공>
타우린에 의한 알츠하이머병 치료 효과 이미지<사진=KIST 제공>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단백질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와 다양한 신경전달물질 간의 상호 반응을 조사했고, 뇌에 고농도로 존재하는 타우린이 베타아밀로이드를 직접적으로 조절한다는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식수에 매일 30mg의 타우린을 녹여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생쥐에게 6주를 먹인 후 3개월간 뇌기능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미로찾기(Y-maze)와 수동회피 반응(passive avoidance) 시험에서 타우린을 섭취한 알츠하이머 마우스의 인지 기능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됨을 확인했다.

또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면 나타나는 증상인 대뇌의 피질 염증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뇌의 해마부위에서 나오는 베타아밀로이드 양도 줄어들어 기억력과 연관이 높은 신경교세포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우린의 또 다른 장점은 알츠하이머병에 선택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타우린은 뇌의 혈관장벽으로 투과되기 쉬워 경구로 섭취해도 뇌에서 흡수가 잘 되는 물질이다. 이런 이유로 별도의 복잡한 투약 절차없이 식수 등 음식으로 타우린을 섭취해도 효과가 높다. 

김 박사에 따르면 지금의 치매치료약은 치매환자가 먹었을 때 개선되긴 하나 정상인이 먹었을 때도 뇌에 변화가 있다. 뇌를 과부화시켜 일시적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런 약들은 치매 원인을 치료한다고 보기 어렵고, 부작용이 심해 오래 복용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개발된 약이 제한돼 있다 보니 치매치료를 위해 한계가 있는 약을 섭취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 박사는 "타우린은 건강보조식품이나 낙지 등 음식에서 섭취할 수 있어 안전하다"며 "이번에 발견한 타우린의 알츠하이머병 치료 효능을 신약 개발에 적용하면 인체 친화적이고 부작용이 없으며 효능이 우수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알츠하이머병의 병리학적 원인 규명 및 근원적 치료제 개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진단과 치료 동시 가능토록 연구…"알츠하이머 평생 연구하고 싶다"

김영수 박사는 알츠하이머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혈액으로부터 알츠하이머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진단법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김영수 박사는 알츠하이머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혈액으로부터 알츠하이머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진단법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다.<사진=김지영 기자>

생화학을 전공한 김 박사는 대학원에서 암표적 치료와 생화학무기 중화제 연구, 알츠하이머연구 등을 연구했다. 알츠하이머를 본격적으로 관심갖게 된 계기는 예방과 진단법이 제대로 없는 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다.

"현대인의 10대 질환에 치매, 당뇨, 암 등이 있는데 다른 병에 비해 알츠하이머는 예방과 진단, 치료법이 없고, 21세기 넘어 유병률이 늘었던 질환이기도 하죠. 치매는 뇌 손상이 진행되면서 최근 기억부터 없어지기 시작해 운동기능이 망가지고 잠을 못자는 등 10여 년간 병으로 고통 받아요.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연구를 평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가장 적합했던 연구소를 찾다가 김 박사는 KIST를 선택했다. 미국 박사 후 전문 연구요원으로 KIST에 입사한 그는 병역특례를 마친 후에도 KIST에 남았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고 종합연구소로 BT, IT, NT 연구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연구개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2050년 미국 1년 예산을 치매에 써야할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치매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치매를 발벗고 나서서 해결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알츠하이머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연구현장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에 앞서 그는 피 한 방울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는 방법도 개발한 바 있다. 이 연구성과는 10월 27일 발행된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됐다.

이 기술은 알츠하이머병 원인 물질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농도 변화를 측정하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연구팀은 베타아밀로이드가 'LRP1'이라는 단백질을 통해 뇌에서 혈액으로 이동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혈액 내 베타아밀로이드의 존재는 국제적으로 여러 차례 보고됐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을 만큼 혈액 내 농도 변화 측정이 가능한지 논란이 있었다.

김 박사팀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킨 쥐의 혈액을 뽑아 분석한 결과 뇌 안의 베타아밀로이드 농도가 올라가면 혈액 속의 베타아밀로이드도 비례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김 박사는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베타아밀로이드 신경을 없애는 KMSB 600 물질을 개발해 알츠하이머 혈액진단이 임상허가를 받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이와 동시에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나올 수 있도록 연구해 진단과 치료를 같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궁극적으로 김 박사는 고통 속에서 10여년을 보내다 목숨을 잃게 되는 머릿속 지우개 '알츠하이머'를 조기 진단하고, 이를 치료할 수 있도록 치료제를 연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연구를 많이 하고 싶은 꿈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재미나게 왕성한 소통을 펼치며 연구중이다.

김 박사 연구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김 박사 연구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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