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넷 화학연 공동기획-화학계 리더에게 듣는다] '교실 밖 화학이야기' 저자 진정일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 중심 '화학', 다양한 분야 접목할 수 있어야”

진정일 교수는 수년간 일간지, 월간잡지 등을 토해 화학이야기를 써왔다.
진정일 교수는 수년간 일간지, 월간잡지 등을 토해 화학이야기를 써왔다.
호흡을 통해 들이마신 산소가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 곡식이 잘 자랄 수 있게 비료를 개발하는 것, 건강한 삶을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 우리가 매일 바르는 화장품까지 '화학'은 우리 일상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화학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고,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기 위해 40여 년간 연구를 병행하며 글을 쓴 과학자가 있다. 진정일 고려대-KIST 융합대학원 석좌교수다. 그는 수년간 일간지, 월간잡지, 학회 소식지, 책 등을 통해 화학이야기를 써왔다.

그는 지난 2012년 시(詩) 속 화학용어를 쉽게 풀어내는 독특한 작업을 시도해 '시에게 과학을 묻다'를 출판했다. 최근에는 과학사 속 숨겨진 이야기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과학 에피소드 등 과학기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과학 쌈지'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일상생활 속 화학이 얼마나 자리 잡고 있는지 쉽게 풀어낸 '교실 밖 화학이야기'는 대중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책이기도 하다. 지난해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어 화학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화학계에 몸을 담은 지 50여년. 화학자인 그는 과학자들의 글쓰기야말로 국민과 과학기술을 가깝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시니어(senior)연구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게 과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피부에 닿게 소통하는 삶이 즐겁다는 진정일 교수를 만나봤다.

◆ "고무신공장 경영한 부친 실험실은 나의 놀이터였다"

진정일 교수가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부친의 영향이 컸다. 부친은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 고무신공장을 경영하면서 고무를 이용한 신발 및 장화를 제조・판매하였으며 반창고 등의 개발을 위한 다양한 화학실험을 했다.

부친의 공장 화학실험실은 그의 놀이터였다.

"실험이 흥미로웠다. 공장실험실 플라스크나 증류기 등을 몰래 가져다가 집에서 가지고 놀았다.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화학과로 진학을 결정하고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사와 석사를 마친 1964년 화학전공자가 갈 만한 일자리가 없었다. 결국 그는 1966년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뉴욕 시립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고분자 화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스타우퍼케미컬사 연구소에서 5년간 생활하며 그동안 배운 화학 지식들이 어떻게 제품과 연결되는지를 배웠다.

미국에서의 삶이 안정되어갈 즈음 그는 모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해외과학자 유치프로그램(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교포 과학자들을 국내 유치해 과학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을 통해서다.

1974년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대학교수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당시 대학보다 출연연구원에 재직하는 것이 훨씬 대우가 좋았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과학도들을 배출시켜야겠다는 꿈을 안고 교수가 되기로 했다.

그는 고려대 교수로 활동하며 액정 고분자의 세계적 개척자로 전도성 고분자, 전계발광 고분자 등의 연구에서 430여 편의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했다. 수 년 전에는 노벨상 추천위원으로 위촉받는 등 학문적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수로 지내면서도 그는 연구뿐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 학회 소식지 등에 틈틈이 글을 써내려갔다. 동아일보에 1년간 쓴 글을 묶어 책을 내자는 권유를 받아 '화학이 들려주는 상식여행-프로야구 왜? 나무방망이 쓰나'를 출판한 것이 시작이었다.

"첫 출판 당시엔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중고등학생들 강연도 꼭 나가고 책도 쓰면서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학부형들을 위한 강연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우수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 "과학기술의 중심 '화학', 타 분야와 융합 중요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진 교수는 '50여년의 과학지식+국내외 자료'를 모아 글의 주제와 구상, 기획을 추진한다. 과학기술이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작성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 최대 관심사다.

그는 "우리가 공기를 들이 마시고 호흡하는 것도 화학반응으로 우리의 삶 자체가 화학이라 할 수 있다"며 "이 외에도 에너지나 유전공학, 특수재료에도 화학지식이 들어가는 등 화학은 우리 생활 속에 깊게 관여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화학은 공기오염, 수질오염 등 오염원 취급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과용은 오염을 유발한다는 것에 진 교수도 동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아이들에게 옳고 바른 교육을 통해 득이 되는 화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이는 화학을 다루는 많은 과학자들이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강연과 집필 활동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 교수는 한국화학연구원이 화학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을 바로잡는데 앞장서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출연연의 역할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국의 연구소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 20시간 정도 외부에서 강연하도록 되어있어요. 세금으로 운영되는 우리 연구소가 어떤 일을 하는지 홍보하는 거죠. 물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앞장서 가치 있는 연구를 한다는 것을 알리고 화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려야 국민들도 과학기술자들을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과학기술,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화학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과학 분야라고 부르는 경계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발전은 예측 불가능합니다. 다양한 분야를 넓게 공부하는 것이 과학자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진정일 교수는 화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분야를 두루 공부할 것을 추천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예측이 불가능한 만큼 과도한 집중과 선택이 때론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처하고 대응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석유가격 인하 경쟁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면서 "화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의 강한 기초지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나 새로 등장할 과학기술에 대비해 인접분야도 넓게 공부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적 의식과 도덕적 양심을 배워야한다고 강조했다.

진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이공계 대학생 1학년을 대상으로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공부하는 과목을 필수로 듣게 한다. 그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지식만 추구하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한 논란도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앞으로 과학기술자들이 새로운 지식을 바로 상업화 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갖춰야한다"고 말하며 "연구개발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경제사회, 기술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자들도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진 교수는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위해 꾸준한 집필활동과 강연활동을 병행하면서 과학문화 활성화를 위한 체험과 토론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나의 연구와 인생 경험과 지식들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꾸준하게 소통하고 글을 쓰며 과학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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