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송곡 최형섭 전 장관 10주기 추도식 개최
과학 기술 발전에 한평생…여전히 연구자의 귀감

29일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최형섭 전 장관의 1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29일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최형섭 전 장관의 1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여름을 앞둔 5월의 막바지. 따가운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발이 성성한 원로과학자들이 대전국립현충원에 모였다. 故 최형섭 장관의 묘역 앞에 선 그들의 얼굴에는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지난 2004년 타계한 최형섭 전 장관은 '한국 과학기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과학 기술에 발전에 한평생을 바친 그에게 이 수식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과학 1세대인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출연연구소인 KIST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을 거쳐 1971년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한국을 과학기술 강국으로 발전시키는 초석을 다졌다.

추도식에는 과학계 원로를 포함한 8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추도식에는 과학계 원로를 포함한 8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노벨상을 타고 싶은 분은 남아 있으시오. 그러나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 분은 나를 따라 귀국해주십시오"

우수 과학 인력이 해외로 나가던 시절 그의 진심어린 노력이 그들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였다. 이후 KIST와 지금의 대덕연구단지가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운 중화학공업의 발전이 이어졌다. 그가 뿌린 씨앗들이 만들어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결과물 들이다.

채영복 과우회 고문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지만 떠나신 빈자리가 너무 커 아직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아쉬움을 느낀다"며 "대한민국 근대 과학의 역사는 최형섭 박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그를 그리워 했다.

박원훈 KIST동문회장도 "지금은 과학계가 제 몫을 하기 위한 혁신을 해야 하는 시기"라며 "과학계의 영원한 스승인 최형섭 박사님의 뜻과 가르침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병권 KIST원장을 대신해 추도사를 낭독한 임태훈 부원장은 "최형섭 박사님이 생존해 계셨다면 세월호 참사로 과학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시점에서 후배 연구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셨을 것"이라며 "후배 과학자들에게 남긴 연구자의 덕목은 지금도 연구자들의 삶의 지표가 되고 있다"고 그를 기렸다.

이날 추도식에는 김시중 과기부 장관 등 과학계 인사와 KIST 동문회 박원훈 회장, KIST 인사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故최형섭 장관의 아들 최재철 박사가 헌화 하고 있다.
故최형섭 장관의 아들 최재철 박사가 헌화 하고 있다.

◆ 채영복 과우회 고문 추도사 전문

송곡 최형섭 박사님!!

박사님이 저희 곁을 떠나신 지도 어언 10성상이 지났습니다. 

오늘 박사님의 10주기를 맞아 박사님과 박사님 생전에 이룩하신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박사님을 모시고 과학기술입국이라는 대업에 참여하여 동분서주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과학기술처 후진들이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떠나신지 10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지만 박사님이 떠나신 빈자리가 너무 커서 아직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아쉬움을 느낍니다. 

봄철이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해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절, 그 시절 박사님은 과학기술 불모지나 다름없던 척박한 이땅에 과학기술입국을 통한 경제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리고 과학입국의 초석을 다지셨습니다. 그 씨앗들이 싹이 트고 자라서 이제 그 풍성한 열매들을 수학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과학기술처,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연구소, 대덕연구단지, 한국과학재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대한민국 과학기술 근대화를 이끈 이들 기관에 최박사님의 땀과 열정과 철학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근대 과학의 역사는 최형섭 박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형섭 박사님이 안계셨다면 KIST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형섭 박사님이 안계셨다면 대덕연구단지가 과연 잘 만들어졌을까? 최형섭 박사님이 안계셨다면 우리나라 성장의 주축이었던 중화학공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최박사님이 가신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박사님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KIST 설립 초창기 국내의 박사학위소지자는 불과 십수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박사님은 연구소의 인재들을 모으기 위해 온 누리를 헤매어 다니며 과학기술인 들의 귀국을 설득하셨습니다."노벨상을 타고 싶은 분은 남아있으시오, 그러나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 분은 나를 따라 귀국해주십시오"라고 하시던 그 확신에 찬 설득력 있는 그 목소리가 아직도 우리들의 귓전에 머물고 있습니다.

당시 구라파에도 브레인드레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던 그 시절에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는  선진국들이 놀란 만한 역 브레인드레인 현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KIST가 설립되고, 설립 초기만 해도 산업 분야 민간연구소들이 전무하던 그 시절에 KIST를 모든 민간산업부문의 연구소 역할을 맡아 할 수 있게 하였고 그 후 중화학공업의 근간이 된 4대 핵심 분야 산업육성을 위한 국가전략을 세우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포항제철이 이렇게 해서 태동하였고 세계적인 산업으로 성장한  조선공업도 이렇게 해서 잉태되었습니다. 성공사례들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이와 같은 일련의 성공사례들이 이제 한국형 성공모델로 자리 잡아 우리 뒤를 이어오는 후발 산업 국가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최형섭 박사님은 과학을 사랑했고, 조국을 사랑했고, 특히 후배 연구자를 아끼셨습니다. 대통령보다 월급이 많다고 관리들이 연구자의 월급을 깎으려 하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 월급이라면 깎더라도 다른 연구자 월급은 안 됩니다. 그 보다 더 많은 대우를 포기하고 오로지 조국을 위해 여기 온 사람들입니다.”라고 대통령을 설득해서 봉급삭감을 막은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는 자율성과 안정성에서 나온다며 후배연구자들에게 안정적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과학기술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최형섭 박사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들 속에서 우리과학기술이 가야할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한 최박사님의 통찰력을 읽을 수 있고 그런 통찰력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한평생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위해 걸어온 외길, 당신이 있어서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송곡 최형섭 박사님의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박사님의 업적과 정신은 늘 우리와 함께 숨 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박원훈 연우회장 추도사 전문

최형섭 박사님, 박사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신 지도 10년이 되었습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떠나신 후 강산만 변한 것이 아닙니다. KIST는 기초기술연구회로 가야한다고 간곡히 말씀드렸던 출연(연)의 3개 연구회 시스템도 이제는 전부 하나의 연구회로 통합됩니다.

과학기술부는 부총리 부서로 대접을 받다가 교육과학기술부를 거쳐 이제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처로 출발한 소박하나 기능이 중차대했던 것이, 대한민국의 성정과 함께 제 몫을 다음 위한 혁신은 당연지사이나, 성장에 몰입되어 외면에만 치중하고 순수 목적의식을 잃어가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엔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 있으며, 그 여파는 경제성장에도 미치고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첫걸음으로 삼는 민족의 슬기로 앞으로 이를 극복할 것으로 믿습니다만 이에는 "잘살아보세"를 초월한 "바르게살기", 새마을 운동이 승화된 "새마음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최형섭 박사님!

오늘 박사님의 10주기를 맞아, 박사님께서 일찍이 저희 후학들에게 남기신 "연구자의 덕목"이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1. 학문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 2. 시간에 초연한 생활연구인이 되어야 한다. 3.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4.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5.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 과학기술인의 영원한 스승이신 최형섭 박사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국가개조, 민족개조에 과학기술계가 선도역할을 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추도사에 대하고저 합니다.

◆  이병권 KIST 원장 추도사 전문

최형섭 박사님!

국가적 재난인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비통해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인의 한사람으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왔고, 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며 지금 이 순간 최형섭 박사님이 살아계신다면 후배 연구자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 궁금합니다. 최박사님의 통찰력과 과학기술행정가로서의 지도력이 2014년 5월 이 시점에서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박사님의 과학기술 입국 구현을 위한 넘치는 열정, 과감한 추진력, 불타는 애국심, 그리고 특유의 승부사 기질 등 평소의 면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연구에 관한한 호랑이로 불릴 정도로 집념이 강하셨고, 연구실 천정이 날아갈 정도로 불호령을 치기도 하셨지만, 마음속 깊이깊이 연구자들을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또 완벽주의자라 할 만큼 치밀한 분이셨지만 자기 과시욕이나 겉치레에는 무관심한 소탈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멋쟁이 외교관이요, 자신있고 권위있는 공학자이셨습니다.

박사님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미친 크나큰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KIST를 설립하시어 처음으로 과학기술자가 국가와 사회에서 최고로 대접받는 지위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또, 세계 수준에 오른 해외 유수 과학기술엘리트를 유치하여,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R&D를 추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최박사님께서는 확고한 비전과 리더십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남다른 카리스마와 전문지식으로 KIST를 세계적인 연구소로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최장수 과학기술처장관으로 많은 출연연구소를 설립하셨고, 대덕연구단지를 만드시고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여 개도국 한국을 기술 선진 한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마련하셨습니다. 또한 최박사님은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발전모형을 제시하고,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신 과학기술정책이론가였습니다.

학자로서도 최박사님은 계면현상과 부선이론, 습식야금 등 금속공학 분야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부유선광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가신지 10년이 지났지만 최박사님이 후배들에게 남긴 ‘부귀영화와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시간에 초연하여 연구에 몰입하고,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반성하라’라는 연구자의 덕목은 지금도 연구자들의 삶의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평생을 조국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신 최형섭 박사님! 박사님의 조국사랑, 과학사랑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세계를 선도하는 First Pioneer가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연구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석자 명단(무순)

윤창국 민영수 정형진 김재관 임태훈 백희기 신경호 김동진 김인수 한호규

조원일 임  환 남동우 주영철 유희준 안성진 황호석 김태민 김남균 정지원

채영복 금동화 한영성 곽용석 이승구 김영식 권태완 민석기 서정욱 김흥철

황경호 이봉진 이영일 강일구 김경원 윤용황 송진원 강상백 김학년 이강일

이세용 이광우 윤상우 김전식 양은경 엄태윤 신희섭 최창옥 최재철 남광수 

김원민 박원훈 문길주 전원장 김시중 강대임 문동규 이재도 김준경 최연상

이창근 Hirasawa 전성득 오현숙 홍유진 양경현 손영승 변종홍 윤여경 이상덕

변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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