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변화의 원동력,민심...충청권,과학기술 바탕으로 변화 선도

모든 거래에서 기준이 되는 가격이 있다. 이른바 '시장 가격'이다. 기업간 거래나 원재료,혹은 제품에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그 이유는 시장의 많은 참여자들이 갖가지 정보를 갖고 합의한 가격이 시장 가격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이러한 시장 가격이 있다. 이른바 '민심이다. 정치에서의 민심은 여론 조사와 선거에서 표출된다.

그중 여론 조사는 정책이란 소프트웨어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정치틀이란 하드웨어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치틀은 선거란 행사를 통해 변한다. 다수가 참여해 결정을 내린 민심은 한국 정치에 있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며 한국 정치를 발전시켜 왔다. 민심의 선택에 대해 정치인들이 왜 받아들이는지는 지난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민심은 정치인이나 정치부 기자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며 한국 정치를 변화시켜 왔다. 80년대 들어 가장 대표적인 것이 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선거일을 불과 25일 앞두고 해금된 야당 정치인들이 대거 해금된다. 2월의 매운 날씨에 실시된 선거에서 신한민주당은 신당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이 된다. 이후 87년 6.29선언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가 관철된다. 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의 대결속에 노태우 대통령이 탄생한다. 그러나 다음해 4월에 열린 13대 총선에서는 헌정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정국이 나타난다. 집권당에 대한 견제였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민의를 저버린다. 90년 민정당과 민주당,공화당은 3당합당을 한것.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92년 14대총선에서 그대로 뒤집어진다. 다시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한 것. 92년말의 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김대중,정주영 3자 대결끝에 보다 온건한 노선에 영남이란 지역적 배경을 갖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이 선택된다. 96년의 15대 총선에서는 또다시 여소야대 정권이 탄생한다.

IMF금융지원이란 초유의 국난을 겪으며 민심은 또한번 요동친다. 97년에 벌어진 대선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 하지만 민심은 정권에 대해 계속 견제를 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국민회의를 제2당으로 만들었고,한나라당을 제1당으로 도약시켰다. 386세대의 대거 등장을 통한 세대교체를 가져왔다.낙선운동을 통해 피플 파워가 급성장한다. 이때의 가장 큰 특징은 충청권의 정치 바로세우기.영 호남은 특정정당의 싹쓸이가 여전했으나,충청권에서만은 각 당 후보가 고루 당선되는 황금 분할이 나타났다.

이런 민심의 변화 바람은 2002년 대선에서 별볼일 없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당선자로 만드는 선거 혁명을 일으킨다. 특히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과 촛불 시위로 대변되면 2030들이 대거 현실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기득권이란 현실에 안주했던 사람들은 역사속에 묻혔고,사회 변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에 섰다.

이 모든 것들의 변화가 '민심'이란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다. 민심을 제대로 읽으면 살아남아 새로운 일을 부여받고,민심을 못 읽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민심의 향방을 읽으며 21세기 들어 가장 주목해야할 지역이 충청권이다. 선거 혁명은 2000년 충청권에서 시작됐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충청권 맹주로 자타가 자신하던 JP는 충청민들에 의해 퇴출된다.

15대 50석의 의석을 자랑하던 그였으나,16대에서는 15석으로 떨어지며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다. 그나마 지역구에서는 총 24개구 가운데 11개만을 차지한다. 충청권의 선택은 2002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로도 이어진다. 광역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자민련 후보들은 대거 낙선한다. 충청권 아성의 핵이라할 대전시가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16대 대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충청권에서 노무현 당선자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11.26% 포인트. 상대적으로 의식 수준이 높다는 수도권의 6.04%포인트에 비해 훨씬 큰 차이다. 행정수도 이전이란 충청권에 대한 러브 콜도 작용했겠지만 기본적으로 공약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끌림이 컸을 것으로 추론된다. 하지만 충청권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런 표심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총선이나 지방자치선거에서 패착한 것은 둘째치고 이번 대선에서도 JP나 이인제 의원이 한나라당을 선호하다가 뒤늦게 중립을 선언한데서 보듯이,민심의 흐름을 못읽고 있는 것이다. 충청권 민심은 이미 충청도를 자신들의 아성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정치 수준을 저멀리 앞서가고 있는데,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사회 변화에서 대전과 충청도는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IT기술의 산실인 대덕연구단지는 256KDRAM,4MDRAM을 거쳐 TDX 전전자 교환기,CDMA 이동통신,아리랑 인공위성 등 첨단 기술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사회전체의 정보화와 개방화에 기여한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바탕으로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도,미선/효순양을 추모하는 촛불 시위도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대덕연구단지,대덕밸리는 지금까지는 하드웨어의 개발에는 역할을 했지만,컨텐츠를 개발하는데는 취약했다. 앞으로 행정수도 이전과 그에 앞선 R&D특구 개발 등을 통해 지방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과학기술 중심지로 도약할 것이 기대된다. 한국의 흐름을 주도해온 충청도는 한국의 중심을 넘어 동북아의 중심에 놓일 자격이 충분히 있다. 대덕넷 이석봉 factfind@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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