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인물] 케이시크 김영렬사장...95년 첫 엔진 개발

다음이나 야후, 엠파스, 네이버 등 검색엔진 전성시대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는 한글 검색엔진의 기원이 대덕밸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7년전 최초 인터넷 한글검색엔진 개발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김영렬(32)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현재 대덕밸리 벤처기업 사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김 사장이 세간의 관심을 끈 한글검색엔진을 개발한 것은 지난 95년. 충남대 화학공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시절이다. “친구야, 왜 인터넷에서 한글로는 정보검색이 안돼니. 영어처럼 한글도 검색엔진을 만들 수는 없는거니” “한글검색엔진?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나 시도해 볼만한 거야.” 당시 김 사장이 컴퓨터공학과 친구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이 질문이 김 사장의 인생을 바뀌게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95년 당시 우리나라 모든 인터넷 홈페이지는 총망라하더라도 5백여개가 채 안됐던 시절이다. 김 사장은 단순히 ‘두고봐라, 내가 최초로 한글검색엔진을 만들어 보겠다’는 오기를 품고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만에 첫 한글검색엔진 '코시크'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개발의 기쁨도 잠시. 그는 후발주자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대기업들이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개발에 나섰고 급기야 기술개발 이후에 상품화 하는 과정에서 경쟁자들에게 추월당하는 우여곡절을 겪게됐다. 대학생 김사장에게 이런 상황에서 '코시크’ 개발은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가장 큰 변화는 ‘키워드 인생’에 빠져든 것. 한글 검색엔진을 개발하다 보니 키워드가 몸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그는 취업을 포기하고 사업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한글검색엔진 코시크가 새로운 인생의 키워드로 작용한 것이다. 김 영렬 사장은 “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표도 짜보고 친구따라 도서관도 따라다녀 봤지만 목표에 대해 한가지 키워드를 정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결실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작한 것이 실험실 창업. 그는 지금 대학교 실험실 준비 창고를 개인방으로 뜯어고쳐 대학교 서무과 직원들 다투기도 하는 등 3년여를 보냈다.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 생활도 경험했다. 이런 험란한 세월을 겪은 끝에 시작한 회사가 케이시크다. 갤러리아 백화점 인근에 사무실도 열었다. 청바지 차림에서 이제는 어엿한 넥타이 차림이다.

‘코시크’와 ‘케이시크’. 이름이 엇비슷해서 ‘케이시크’란 회사가 한글검색엔진관련 회사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이 회사의 정체는 웹 서버와 게시판, 자료실 등의 인트라넷 구성요소를 통합한 웹솔루션(Cobee Web Solution)을 개발·생산하는 IT기업이다.

창업 3년째. 그는 작지만 가치있는 수확 준비가 한창이다. 김 사장은 요즘 자사의 제품을 여기저기 선보이느라 분주하다. 일본, 미국 등의 시장진출을 위해 일본 WPC 엑스포, 미국 컴덱스 등 각종 국·내외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사업을 경영하면서 자아를 발견해 나갈겁니다. 고객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마케팅 노하우을 쌓아가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앞으로 철두철미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성공하는 기업이 되도록 저의 젊음을 불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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