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럽의 과학협력 방안①]일본 150년전에 유럽통해 '서구화' 눈 떠
"유럽은 지는 해" 인식버리고 과학기술·기업·디자인 세계 최고수준 비결 배워야

 

유럽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는 유럽을 상대적으로 덜 중시한다.4강 외교라 할때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이야기하며 유럽은 제외한다.그러나 역사적 문화적으로 보아 4강 가운데 중국을 제외한 미국과 일본, 러시아 세 나라는 유럽을 선생으로 모시고 배워서 오늘날 강국의 기반을 마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과 '한-EU 과학협력센터' 조인식을 계기로 우리나라와 유럽과의 관계에 새로운 초석이 놓여졌다고 할 수 있다.지난 10월 KIRD(연구개발인력교육원)에서는 유럽 탐방단을 구성해 유럽의 연구소 등을 둘러보았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과 유럽과의 과학협력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기획 기사는 3회에 걸쳐 게재된다.(1.유럽,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2.유럽의 현황-EU 2020을 중심으로. 3.EU와의 관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편집자 주]

2013년 10월의 어느날 파리 에펠탑 밑. 교복을 입은 동양풍 학생들이 모여있다. 수학 여행인가? 아시아에서 유럽에 단기간에 오기는 쉽지 않은데…. 가서 물어본다.

어디서 온 학생들인가? "일본 치바." 유럽 오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시차도 있어 짧은 일정은 쉽지 않을 터인데 얼마나 있니? "한달이요. 9월24일부터 10월24일까지."
한 달을 둘러보아? 그럼 유럽 어디어디를 가는데? "프랑스와 영국이요." 몇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요."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시기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1개월의 유럽 여행.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도 가고 런던의 대영박물관도 가며, 자매결연을 맺은 프랑스 및 영국의 학생들 집에서 홈 스테이를 하는. 이런 수학 여행이 아이들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독일 등 유럽 산업의 역사를 말해주는 뮌헨 독일 박물관의 MAN 역사관. 1758년에 시작해 2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독일 등 유럽 산업의 역사를 말해주는 뮌헨 독일 박물관의 MAN 역사관. 1758년에 시작해 2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871년 11월.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지 불과 3년. 정권이 안정되지 않았음에도 그 주역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 척의 배에 올랐다. 이와쿠라 도모미란 당시 정계 최고 인사를 단장으로 한 이와쿠라 사절단. 이들은 1년 10개월에 걸쳐 미국과 유럽을 방문했다. 처음 일본 전통 복식으로 갔던 이들은 미국 시카고에서 상투를 자르고 칼을 버리고 양복을 입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이후 근대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을 보며 서구화를 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철도와 기선, 대포, 공장 등을 보며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란 위기감을 갖고, 일본에 귀국하자마자 서양식 공장과 군대, 제도 등을 도입한다. 이른바 식산흥업을 통한 부국강병 정책.

정부 고관의 반이 참가했던 이 사절단에서 일본 근대의 초석을 닦은 두 명의 수상이 나왔다. 동방의 비스마르크라고 자임하고 일본 공업화의 주춧돌을 놓은 오쿠보 도시미치와 일본 헌법을 만들고 이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이토 히로부미. 이 두 사람 외에도 사절단에 포함됐던 많은 인사들이 정부 고관으로 일본 근대화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유럽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음에도 유럽을 전략적으로 배운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고, 정부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집단적 학습은 1백 여 년이 지난 오늘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하튼 이와쿠라 사절단의 유럽 학습을 기반으로 일본은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선진국이 되는 기틀을 닦았다.

파리에서 본 수학여행단 여학생들과 140여 년 전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오버랩되며 1백 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일본의 유럽 배우기는 계속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독일 박물관 내 명예의 전당.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모셔져 있으며 근대 문명의 뿌리로서의 유럽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 박물관 내 명예의 전당.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모셔져 있으며 근대 문명의 뿌리로서의 유럽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인들이 끊임없이 유럽의 가치를 알고 유럽 학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유럽을 '지는 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미국에 비해 국력이 뒤지는 유럽이 이류로 느껴진다고 할까.

하지만 들었던 유럽과 가서 본 유럽은 많이 달랐다. 현장을 가보고, 유럽 역사를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날수록 우리의 인식틀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유럽은 '지는 해'가 아니라 아직도 중천에 떠 있는 해이고, 근대 문명의 출발점으로서 뿐 아니라 여전히 과학기술과 예술,사상 등에 있어 세계의 주류 중의 하나임을 새롭게 알게된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경제 성장률 등 유럽이 활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보도를 많이 접하나 아직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고, 히든 챔피언 등이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고, 디자인과 설계 등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금융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임을 알게되면 우리의 유럽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왜곡됐나를 알게 된다. 마치 곁방에 사는 사람이 안방에 사는 사람을 걱정해주는 셈이라고나 할까?

50년전 독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공부하고 독일의 출연연 가운데 하나의 연구소 소장도 역임한 김재일 박사는 "독일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은 현대 인류 문명의 중추를 이루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흔히 노벨상 숫자로 그 나라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 기술이 갖고 있는 중요성이란 질적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기초과학 수준은 현대 문명의 초석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한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 유럽을 순방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와 유럽 과학계의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근대 과학의 기초이면서 현대 과학에서도 리더십을 발휘는 유럽 과학계와 교류 협력하며 윈윈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유럽과의 과학교류를 위해 1996년에 하나의 거점을 만들어 놓았다. 독일 잘란트주의 주도 자브뤼켄에 있는 'KIST-유럽 연구소'가 그것. 처음 몇명의 연구원으로 시작해 17년이 지난 지금 60여명의 연구원이 일하며 한국과 유럽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공모로 첫 선발돼 6대 소장으로 2012년부터 근무하고 있는 표준연 출신의 이호성 박사는 "유럽은 시장으로서뿐 아니라 미국과 함께 기초과학분야의 선두주자"라며 "유럽을 한국 과학 활성화의 한 활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유럽의 강점은 근대 학문의 출발지로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없이 종합적,융합적 연구가 가능하다. 학문의 뿌리에 해당하는 기초가 탄탄하다. 게다가 학문의 발달 과정을 한 눈에 보기 때문에 전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거기에 가지에 해당하는 각 학문들도 다양한 전문  연구기관들이 있어 경쟁력이 높다.

독일 뮌헨의 막스 플랑크 소속 바이오케미스트리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박세훈 박사는 "지도교수가 노벨상 화학 분야에서 항상 1순위로 거론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라며 "연구를 하며 행정적인 부분은 모두 연구소에서 지원되고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면 되니 자연 성과가 높다"고 설명한다.

유럽은 14세기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15세기 대항해시대를 통한 신대륙 발견과 신항로 개척, 16세기 과학혁명, 17세기 종교개혁, 18세기 계몽사상을 통한 시민 혁명, 19세기 산업혁명 등 격변의 시대를 지내왔다. 그 과학 종교 사상 산업 등의 축적된 역량이 유럽의 세계의 패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독일 박물관 기계관에는 사람 키의 몇배를 넘는 대형기계들이 실물로 전시돼 있고 가동도 된다.
독일 박물관 기계관에는 사람 키의 몇배를 넘는 대형기계들이 실물로 전시돼 있고 가동도 된다.
그러나 20세기 양차 대전으로 서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유럽의 복제판인 미국에 패자로서의 지위를 양보한다.그러다가 20세기말 베를린 장벽 붕괴 등을 거치며 국경을 초월한 연합체로서 EU를 만들고 다시 미국과 함께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다른듯 하지만 사실은 혈연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비슷한 문화와 가치관을 지닌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수 있다.

복잡다단해 보이는 현대를 이해하려면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유럽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으로부터 배워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룬 우리로서는 그 뿌리에 해당하는 유럽을 이해함으로써 보다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본질을 알게 되면 다양한 응용이 가능해진다. 모방을 통해 어느 정도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고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한국으로서 유럽은 새로운 보물창고가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일본을 통해,이어 미국을 통해 한 번 둘러서 서양 문명을 접한 우리는 이제 바로 본고장인 유럽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가능해지는 시대에 들어섰다.

쇠락하는 존재란 유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고 서양 문명의 뿌리로서 그 역사성과 전통을 이해할 때 유럽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보물 창고로 작동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앞날을 가져다 줄 것이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