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창조경제, '인재'가 답이다…민철구 STEPI 위원 "'T자형 인재' 키워야"
반복되는 지식에 함몰되고 있는 과기 인재들… 교육 정책 새판 짜기 시작돼야

"저는 과학자가 돼서 많은 사람들을 살릴 거에요."

요즘 아빠와 아이가 함께 여행을 가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가 자신의 장래 희망은 '과학자'라며, 과학자가 돼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고 부푼 꿈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초등학생 대상으로 장래 희망 직업을 조사해보면 절반 이상이 과학자가 되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이들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미래 과학 꿈나무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게 되는 이유는 이상과는 다른 현실 때문이다. 공부하기 까다로운 것뿐만 아니라 미래도 불확실하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은 커녕 보상도 다른 분야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한 사명감이 아니고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영입되기 힘들다. 지난 20년 간 계속돼 온 이공계 기피가 장기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농후한 시점이다.

민철구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학기술 인력 정책을 새로 구축하는 것과 동시에 우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도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분야가 창의성을 요구하는 시대라 하지만 이공계 분야만큼 창조적 인재가 필요한 분야도 없다"며 "이공계야 말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혁신성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영역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과학기술인 구인난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악화됐으며, 고급 인력을 영입하는 것조차 힘든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창조경제로의 전환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키워드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이를 위한 핵심이 과학기술력과 국민 개개인의 창조력의 결합임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앞장서서 실행시킬 과학기술 인력은 부족한 상황. 더욱이 우수한 고급 인력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딜레마다.

이공계 기피 이유는 간단하다. 초 단위마다 변하는 과학기술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고, 또 그 이상을 선점할 수 있는 통찰력도 갖춰야 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 체계는 다른 분야보다 미흡하다. 대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민 위원은 "미국의 경우 공과대학을 나오면 초봉으로 7만 5000불 정도를 받는다. 인문‧사회 쪽은 4만 불 정도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평생 소득이 이공계가 100이면 상경계가 110, 의료계가 140 정도이다.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이유는 딱히 찾지 않더라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인 보상 체계와 더불어 지켜져야 할 것이 과학기술 인재 양성 부분이다. 민 위원은 "본질은 이공계 진입하는 학생 수의 급감보다 우수한 학생들을 미래의 과학기술자로 확보하지 못하는 '질적 문제'가 더 크다"며 "R&D 인력 부족은 차츰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의 제약 요인으로 등장할 우려가 크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급 불일치가 나타날 때다"고 강조했다.

◆ 반복되는 지식에 함몰되고 있는 과기 인재들, "학점 따기 위해 공부한다"

논문과 특허 등 정량적 지표에 매달리는 과학자들. 그들이 여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평가 시스템에 있다. 많이 괜찮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질보다는 양이 먼저인 과학기술계다. 문제는 미래 과학기술계를 이끌어갈 꿈나무들도 질보다 양인 정량적 지표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것. 학점을 따기 위해 공부한다는 이공계 대학생들에게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민 위원은 "너무 반복되는 지식에 인재들이 함몰돼 있다.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로 많이 흘러가 있다"며 "교육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객관화된 지식을 암기하는 쪽으로 치우치다보니 창의력이 떨어진다. 우려가 되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추진 중인 정부의 이공계 인력 양성 제도는 시대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민 위원은 "전체 커리큘럼에 특정 주제를 부여하되 세부적인 것은 토론하고 추론해서 결론을 얻는 창의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주어진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학생들을 수월성 인재로 키우기 위해 교수들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R&D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평범한 인재는 갈수록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짜낼 수 있는 결론은 이공계 교육이 수월성 위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수월성에는 2가지가 있다. 깊게 파고드는 'I' 형과 옆으로 퍼진 통섭형이 그것이다. 이 둘을 합쳐 'T' 형 인재를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며 "우선순위는 'I' 형이다. 깊은 학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교육 시스템 측면에서는 통섭형 교육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영역인 만큼 이공계 기본 학문은 확실히 배워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는 게 민 위원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적분학도 모르는 이공계인들이 허다하다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민 위원은 "최소한 기초 소양은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한탄하며 "10년 전에는 약간만 공부해도 새로운 것을 찾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웬만한 지식 가지고는 연구 진행도 힘들다. 높은 수준의 학식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바람직한 과학기술 인재상, 산·학·연 협력해야 나온다

"출연연과 대학, 산업계가 협력을 많이 해야 한다. 공통 주제로 협력의 장을 키워야 의미있는 인재가 많이 나올 수 있다. 학교에서 이론 습득하고, 연구소에서 분위기 파악하고, 기업에서 실제 응용되는 것을 배우는 등의 다채로운 경험이 중요하다. 물론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민 위원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잘하는 나라로 독일과 핀란드를 꼽으며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고급 과학기술인들이 연구소, 대학, 산업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놨다는 것"이라며 "인력 유연성이 좋다는 말이다. 좋은 연구 주제가 있으면 대학에서도, 연구소에서도 할 수 있다. 일을 중심으로 사람이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인력 유연성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일 위주로 사람들이 모여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는 '0(zero)'에 가깝다. 우선 보상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협력한다는 것 자체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협동하는 컨소시엄 지원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민 위원은 "출연연 단독 연구보다는 같이 협동할 수 있도록 해야 우수 인재를 키울 수 있다"며 "출연연도 인재 양성소다. 인력 양성은 더 이상 대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급 과학기술 인력 양성은 출연연이 담당해야 한다. 지금의 석·박사 연구원들이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씨앗이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KIRD(연구개발인력교육원)는 출연연이 활용하기에 좋은 교육 기관으로 평가된다. 현재 KIRD는 연구 기획 단계부터 수행, 관리, 평가, 성과 확산까지 전 주기에 걸친 R&D 역량을 지원할 뿐 아니라 연구수행에 필요한 다양한 기본 역량을 제공하고 있다.

민 위원은 "KIRD를 포함해 연구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교육 기관들이 많다. 미래의 주역이 될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 등 국가적 차원의 R&D 인력 교육 제공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하고, 앞으로 KIRD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월성 인재의 근본은 기초 과학에서 나온다. 그는 "일자리 창출과 벤처 창업 모두 중요하지만 수월성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기초 과학 지원이 먼저 돼야 한다. 정부가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며 "수월성 인재와 기초‧원천 기술 개발은 곧 산업 경쟁력 확보에 기여한다는 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한편 미래 과학기술을 이끌어갈 인재들에게 그는 "평범한 것을 거부하라"고 강조했다.

"이젠 평범해선 살기 힘들다. 평범한 지식도 새로운 발상 전환을 통해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3C(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코퍼레이션)를 명심해야 한다. 콘텐츠 없으면 대화나 협력도 불가능하다. 의미 있게 튀기 위해 자신만의 콘텐츠로 무장해라. 나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평범한 것을 거부해라!"

미래 사회 주역들이 명심해야 할 한마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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