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DNA를 키우자③]선순환고리 잇는 선배창업가들
창업경험 살린 맞춤형지원·스마트투자로 동반성장 모색

선배 벤처인들의 창업경험에 바탕을 둔 전문적인 엔젤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은 모교인 KAIST를 찾아 창업과 투자 경험을 전하고 있는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선배 벤처인들의 창업경험에 바탕을 둔 전문적인 엔젤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은 모교인 KAIST를 찾아 창업과 투자 경험을 전하고 있는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2000년 벤처거품 붕괴와 함께 사라졌던 엔젤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특히 청년창업가들의 수호천사로 변신한 선배 벤처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연어의 귀환과 흡사하다.

창업경험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이들은 한때 번성했던 '묻지마 투자자'처럼 단순히 사업자금을 대는 데 머물지 않는다. 초기 인큐베이팅부터 기업공개까지 창업 전과정을 밀착마크하는 맞춤형 지원과 스마트한 투자로 우리나라의 척박한 창업생태계에 물을 대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라 불리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엔젤투자자 그룹이 모델이 되고 있다. 2002년 이베이에 회사를 메각한 페이팔 출신 경영진들은 막대한 자금과 창업경험, 전문성으로 구글과 유튜브 등의 후배 기업을 글로벌 스타로 조련했다.

한국의 대표적 성공 벤처인인 김범수 카카오톡 의장은 최근 중기청과 함께 300억원 규모의 '카카오청년창업펀드'를 조성하자는 약정을 맺었다. 이미 케이큐브 벤처스라는 스타트업 전문 투자회사를 설립해 애니팡, 헬로히어로 등으로 '대박'을 터뜨린 김 의장은 새로 조성되는 카카오펀드를 통해 또 다른 성공창업스토리를 발굴할 계획이다.   

이석우 카카오톡 대표는 "투자만 하던 펀드와 달리 카카오펀드는 선배 창업가들이 출자자로 직접 참여해 후배들에게 성공적인 창업경험과 경영 노하우까지 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5일 열린 카카오펀드 출자약정식.
지난 25일 열린 카카오펀드 출자약정식.
벤처붐 당시 3만여명을 헤아린 엔젤투자자는 10여년 사이 94%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창조경제로 대표되는 벤처 육성바람을 타고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엔젤투자지원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엔젤투자자로 새로 이름을 올린 이가 작년과 올해 3000명을 넘어섰다. 엔젤클럽도 작년말 9개에 불과하던 것이 70개 가량으로 크게 늘었다.

엔젤투자자의 증가는 창업이 활성화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엔젤투자자의 숫자가 성공적인 창업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지난 2000년의 벤처거품으로 학인된 바 있다.

창업가들을 성공적으로 육성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역시 선배 창업가들의 멘토링이라 할 수 있다.

고생스러웠던 창업경험을 통해 기업운영 노하우를 익힌 이들은 철저한 검증과 성장모델 제시로 후진을 양성하고 동시에 계획적인 자금회수로 투자 수익률도 높인다. 이른바 '동반성장' 개념의 엔젤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니시스를 창업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610억원에 회사를 매각하고 10여개 기업의 창업을 이끌었다.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도 315억원에 회사를 매각한 뒤 엔젤투자자로 변신했다. 온오프믹스, 미투데이, 엔써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회사들이 이들의 투자로 성공한 스타트업기업들이다.

최근 KAIST를 찾아 후배들의 창업을 독려한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도 마찬가지다. 해커계의 전설로 불리는 노 대표는 테터앤컴퍼니를 창업했고 우리나라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구글 매각 신화를 만들어냈다. 벤처 인큐베이터로 역할을 바꾼 그는 티켓몬스터와 다이아로이드 같은 기업을 탄생시켰다.   

작년 12월 설립된 카이트창업가재단의 창립이사회 모습.
작년 12월 설립된 카이트창업가재단의 창립이사회 모습.
이같은 창업펀드의 수는 최근 들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중기청에 따르면 2005년 2개로 쪼그라들었던 창업펀드의 수는 작년말 48개로 늘어났다. 펀드금액 역시 350억원에서 6046억원으로 스무 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은 "성공을 거둔 벤처기업인들이 안목을 가지고 제대로 된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게 요즘의 추세"라며 "기업인뿐만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속속 창업펀드에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점도 예전과 다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고 회장은 "투자라는 게 기술만 보고 이뤄지지 않는다"며 "특히 엔젤투자는 가능성만 보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업가와 투자자 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배 벤처인들의 참여는 소통과 협력의 창업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과 성장, 회수와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고리는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에서 창조경제의 전진기지로 거듭나고 있는 대덕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김철환 대표.
김철환 대표.
2006년 이미지앤머터리얼스를 설립한 김철환 대표는 창업 초기 R&D자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벤처캐피털들은 신생회사에 모험적인 투자를 하기를 꺼렸다. 김 대표는 갖은 어려움 끝에 전자종이 개발에 성공했고 2011년 LG디스플레이에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말 순수 민간 투자재단인 '카이트창업가재단'을 설립하고 M&A로 번 돈 100억원을 아낌없이 내놨다. 자신처럼 자금과 경험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을 후배 창업가들을 돕기 위해서다.        

카이트창업가재단은 김철환 대표를 비롯해 대덕의 벤처기업인들과 언론 및 기관, 학계 인사와 회계사·펀드매니저 등 전문가 그룹이 이사로 참여해 엔젤투자와 인큐베이팅 등 창업 전후에 필요한 과정을 성장단계별로 포괄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재단의 지원으로 성공하는 창업자들이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에 재참여해 후진 양성에 나서는 자생적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자 한다. 김 대표는 이같은 재단의 정신을 '앙트러그라운드(창업놀이터)'로 표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엔젤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라며 "정책과 제도, 기술과 경영환경 등 창업을 둘러싼 조건과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후배 창업가들이 그같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선배 창업가들의 엔젤투자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활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최근의 엔젤투자가 보여주는 분야별 전문화와 다양한 방향성이 변화에 대처하는 청년 창업가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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