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임기·연구현장 자율성 보장' 공식천명하는 정부 이제 대답해야…정문·식당 개방 같은 다른 접근법부터

"대덕단지 기관장들의 임기를 보장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율성을 주었다. 이제는 기관장들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연구현장에서 대답할 때이다."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으로 대덕을 찾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기관장들과의 대화 시간을 매듭지으며 한 말입니다.

창조경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가운데 공감을 얻는 하나의 주장은 '같은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예로 들면 대덕단지를 활성화시키는 한 방법으로 '정부 출연연 공통 출입증 제도'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ETRI 사람이 표준연을 들어갈 수 있고, 에너지연 사람이 기계연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출입증 제도가 존재하는 것은 보안 문제가 가장 클 것입니다. 신분확인이 안 되면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출연연 연구원'이란 신분은 공인된 것인 만큼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봅니다. 보안이 필요한 일부 연구소는 지금도 특정인만 들어갈 수 있으니 문제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단순한 출입만 허용해도 연구자들끼리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이는 융합 연구 등의 시너지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하나는 연구단지 식당 개방입니다. 각 연구소는 각기 식당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곳도 있지만 나름의 메뉴를 자랑하는 곳도 있습니다. 가령 ETRI는 김치찜이 맛나고 표준연은 정식이 맛깔납니다. 각 연구소별로 돌아가면서 하루만이라도 개방하는 것입니다. 가령 지질자원연구원이 5월에, 항공우주연구원이 6월에, 화학연구원이 7월에 개방하는 것입니다. 그날은 식사 공짜. 다만 오셔서 우리 연구소가 하고 있는 연구활동을 알릴 터이니 협력 방안을 찾아봅시다 하는 것입니다.

출입증 문제나 식당 개방은 큰 돈이 드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접근법이 달라지는 것이죠. 현장과 떨어진 수도권에 있는 부처의 일방 지시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찾아가는. 출입증 부분은 ICT 기술의 본산인 만큼 간단한 시스템 통합으로 되리라고 보고, 식당 개방은 마음만 열면 된다고 봅니다. 출연연 사이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대덕단지 내에 있는 기업연구소와도 부분적 개방이 가능하다고도 봅니다. 

창조경제의 특징은 이처럼 현장에서의 바텀업이라고 봅니다. 인생을 살아가고, 연구하는데 있어서의 재미와 의미를 주어진 과제를 통해 찾는 것이 아니라 수행 주체인 우리가 주인이 되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까요.
 

한마디로 올해 40주년을 맞이하는 대덕은 전혀 새로운 환경 속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타율에 의해 자율이 꺾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는데, 이제는 스스로에게 만들어갈 기회와 여건이 주어지는.

 

자기 인생의 결정권과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이 하나 있습니다. 신입생 환영식에서 술을 마시는 가운데 선배가 권한 술을 마다하지 못하고 다 받아 마셨다가 쇼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가 종종 있죠. 어느 부모님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손해 배상 소송을 걸었습니다. 술을 마시게 한 선배를 상대로. 결과는 승소였습니다. 손해 배상을 하라고. 그런데 청구액의 100%가 아니었습니다. 60%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재판부의 의견은 이랬습니다. 40%는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것이다, 거부권이 있었고, 행사해야 했다. 그것을 못한 것은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우리의 삶에도 시사점을 주는 판결이라고 봅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현장에서도 40%의 권한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안된 이유를 찾으면서 위를 탓했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도 자문해볼 여건이 된 듯합니다.

 

대덕에 자율이 주어졌습니다. 장관이 그렇게 말하고, 그보다 더 위의 대통령이 더 강하게 이야기하십니다. 비록 실무에 있는 관료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놓기 싫고 책임 때문에 변화가 좀 더딜 수도 있겠지만 전체 분위기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그런 만큼 외부 여건을 이유로 대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조금씩이라도 도전하며 새로운 상황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대덕이 연구현장 중심으로 움직이고, 과학자분들이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국내 여건이 그렇게 주어지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최근 또 하나의 계기가 생겼습니다. 바로 일본 아베 총리의 침략이 아니다, 보기에 따라 다르다며 진출이란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이 그것입니다.

 

이 발언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침략'은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되풀이하면 안되는 것이지만 '진출'이란 개척과 비슷한 것으로 상황을 좋게 만드는 긍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이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표출된 것인데, 이런 의지를 갖고 있으면 행동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발언을, 상황을 간과하는 것은 그 행위를 용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흥분할 때는 흥분해야 하는데 이는 흥분할 대상이라고 봅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우리는 안방을 내주고, 온갖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위안부나 징용 등은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고, 생활 속에서도 간난신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재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 조직을 예로 들어보죠. 1914년 전국의 헌병과 경찰이 모두 1만6915명입니다. 이중 간부인 경무부장 13명, 경무관 3명, 경시 36명 가운데 한국인은 가장 낮은 경시에 1명뿐입니다. 반면 순사보와 헌병 보조원, 정탐 등 최하위직은 모두 한국인이었습니다.(근대를 말한다, 이덕일, 197p). 

 

과학과 관련해 본다면 해방을 맞이한 1945년의 한국인 이공계 박사 수는 10명이었습니다. 60여 년이 지난 2010년에는 10만명이었습니다.

 

한국이 공업화하는데 일본이 역할을 했다고 하죠. 그 공업화는 일본을 위한 공업화였고, 주요 보직자는 다 일본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회사령이란 것이 있어 회사를 만듦에도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회사란 조직을 식민지 사람들한테는 활용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이유는 회사는 망하는 것도 있지만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커지게 돼 있는데 그렇게 되면 식민통치에 부담이 될 터이니까요. 철도란 것도 수탈을 위한 수단이었지 한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밖에도 우리가 고통을 당한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부족한 자원을 가진 한국의 것을 그나마 뼈골까지 다 빼가고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 것이 식민지 시대입니다. 정말 범죄행위인 것이죠. 이를 부인하고, 보기에 따라 다르다며 진출이라고 하는 것은 궤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싸움에서 이긴 사람을 욕하는 것은 진 사람 입장에서는 한풀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다 냉정한 싸움꾼은 왜 졌는지를 분석합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지지 않도록 방법을 찾습니다. 일본은 분명 1백년 전의 싸움에서는 우리한테 이겼습니다. 진 우리는 이긴 일본을 비난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진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를 찾아 다시는 싸움에서지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일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의 힘의 공백은 늘 동북아시아에서의 분쟁으로 연결됐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 주권을 가진 세력이 확실히 있으면 동북아가 평화를 맞이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야 일본에도 좋은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일본에 왜 졌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분제 사회로,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피지배 계층에 있으며 국가 공동체에 충성할 이유가 크게 없었습니다. 한줌의 무리라 볼 수 있는 왕족과 양반의 나라이니 나머지 사람들한테는 주인이 바뀌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다른 하나는 주지의 사실이지만 서양 문명, 곧 과학기술이 절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가 상당 부분 보강이 됐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는 민주주의. 일본한테 당한 조선 및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의 주인이 왕과 양반에서, 일반 국민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의 대통령이나 관료가 아니라 국민입니다.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처럼 철저하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많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자신들 것이라고 확실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토에 대한,국가에 대한 애정이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 대덕이 40주년을 맞이하는데서 보듯이 우리는 1966년 국민당 소득 100달러 수준에서 KIST를 세웠고, 300달러 수준에서 보다 큰 대덕단지란 연구집적시설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세계 15위 수준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동안의 큰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배고픕니다. 일본에 비해서는 과학기술 투자의 절대액수와 노벨상 수상자수에서 보듯이 절대 실력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대덕에 과학자분들이 분발할 곳입니다. 과학기술이 강해야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국토가 아무리 박토라 해도 과학기술이 있으면 옥토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수한 과학기술이 있으면 사람 숫자가 적고, 열악한 환경이어도 SF에서 나오는 식물 공장 등을 만들고 하늘을 나는 차를 타고 다니며, 아이언 돔 같은 것으로 국토를 보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과학자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대덕은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자율성을 주고, 연구비를 제공하며,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신뢰가 아직 확실하게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한 번 믿고 움직일 만한 여건들은 주어졌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이웃나라에서는 최근 엔저와 우리보다 나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우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놓여진 여건도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상품들이 일본과 경쟁상품인데 엔저 효과로 불이익을 보며 시장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경제전망이 불투명한 것을 넘어 위기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족이라면서도 늘 칼을 들이대는 북한의 위협은 말할 것도 없구요.

 

국민들의 마음이 힘들고 지쳤을 때 과학기술자들이 이제는 우리가 해결사가 되겠다고 나서며 경쟁력 있는 기술을 만들고,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과학에 도전을 하며 인류의 난제를 풀었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낭보를 전해줄 때 국민들은 시름에서 벗어나 기운을 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건국 중인 나라입니다. 1인당 국민 소득 1만 달러는 돼야 세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 나라는 1995년에 처음 세계에 명함을 내민 신생국입니다. 국민소득 4만 달러는 돼야 국민 개개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고, 그러면서 우리가 속한 지구 공동체에도 기여하고, 인류로부터 인정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5년부터 치면 이제 20살도 안된 청년입니다. 한창 자라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죠.

 

2048년이 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뒤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은 동북아에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과학기술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어 주권을 확실하게 지키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과학자들의 역할이, 대덕단지에 있는 분들의 활약이 가장 중요합니다.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맹자가 말한 혁신이 일어나기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입니다. 대덕은 그 세 가지를 지금 다 갖췄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들이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며 과학기술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4대강이 이야기되며 과학기술은 후순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하늘의 때를 만났다고 하겠습니다. 

 

대덕단지가 올해로 40주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쌓인 인력과 시설, 경험 등을 바탕으로 변화의 길목에 있으며 어느 곳보다 내공이 강한 지역입니다. 대덕의 구성원들이 이제는 서로 교류하며 하나가 되려는 생각들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뭉쳐야 살고, 연구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천시 지리 인화란 세 가지가 대덕에 뭉쳐 있고, 움틀거리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일본의 역사 왜곡과 관련해 한 발언이 있습니다. "영토는 몸이고, 역사는 혼이다." 역사 인식과 역사의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일본의 재침 야욕이라고도 볼수 있는 역사 왜곡에 대해 우리가 대응한 것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 실력은 한마디로 과학기술입니다. 대덕에 계신 과학기술자분들이, 지원요원들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후손들에 훌륭한 나라를 남겨주기 위해서 지금은 대덕의 과학기술자들이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박토 속에서 옥토를 만든 이스라엘을 보기 위해 출장을 떠나며. 

 

대덕넷 이석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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