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화학계 리더에게 듣는다①]한국석유화학협회장 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가격경쟁 공세 제압하려면 기술경쟁력 우위 확보해야"

"중국에서 셰일가스가 개발되면 아마 우리나라는 힘들겁니다."

한국석유화학협회장 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가 말하는 석유화학업계는 위기였다. 그의 말대로 최근 글로벌 화학시장은 유럽발 경제위기로 인한 수요 감소, 중동과 중국의 대규모 설비투자로 인한 경쟁 격화, 고유가 기조 유지로 인한 원료 가격 압박 등의 3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미국 발 '셰일가스 혁명'은 전 세계 에너지 지형에 변화를 몰고 올 정도로 그 파급력이 예상되고 있다. 셰일가스란 오랜 기간 모래와 진흙이 쌓여 단단하게 굳은 암석(셰일)층 사이에 갇혀 있는 가스를 뜻한다. 천연(전통)가스와 화학적 성분이 동일해 난방·연료용, 석유화학 원료 등으로 사용된다.

셰일가스는 미국·중국·러시아·호주 등 전 세계 20여개국에 약 187조5000억㎥(입방미터)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천연가스 확인 매장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방 회장은 "저렴한 원료(셰일가스) 사용으로 미국 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원가 경쟁력은 점차 높아지는 반면 국내 기업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며 "미국 석유화학 업체들의 잇따른 신·증설로 늘어난 공급량은 국내 기업들의 최대 시장인 중국 및 신흥국에 집중돼 치열한 경쟁이 예상 된다"고 분석했다. 셰일가스는 일본의 산업 구조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우선 일본의 대표적인 종합상사들은 적극적인 지분 투자로 셰일가스 물량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는 등 자원 개발 업체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에틸렌 기반의 제품 경쟁을 지양하고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원료로 선택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방 회장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 산업이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며 "철강은 경쟁력이 있지만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은 위기다. 미국 발 셰일가스 혁명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매장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중국에서 개발이 된다면 아마 힘든 상황이 진행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할 때 현재 글로벌 시장의 상황은 단기적으로 극복기 가능한 불황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 대책이 준비되지 않는한 제2, 제3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장기적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 역시 1980년대 우리 화학산업과 유사한 위기에 봉착한 바 있었다. 업체 난립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은 요원했고, 원료와 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경쟁력은 나날이 약화돼 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산·학·연이 함께 전자·자동차 등 자국 내 주력 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제품 고부가화 전략을 추진했다. 중·장기적 R&D 로드맵 수립을 통한 소재개발 기술 투자를 지속했으며, 유기적 협력으로 신소재 분야의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이렇듯 에너지 경쟁력이 곧 국가 경재력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R&D 투자가 절실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방 회장은 "셰일가스로 인한 기회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국내 산업계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집중적인 R&D 투자가 필요하다"며 신에너지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 글로벌 시장 변화에 크게 반응하는 국내 기업, 구조적 변화 꾀해야

▲방 회장은 "1등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방 회장은 "1등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제품가격 약화로 어려움에 겪고 있다. 내수시장 기반이 협소하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고, 원료에 대한 해외 의존도 역시 높은 산업구조 상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크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국내기업들의 어려움은 가동중단, 사업철수 등을 고려해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산업계에서 느끼는 현재의 상황은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생존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되고 있다.

그는 "단기적인 대응책과 지원방안은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변화, 구조적인 산업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화학업계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는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지만 이미 최첨단 분야는 미국이 다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 소득이 높으면 높을수록 1등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1등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경쟁 못한다"며 "석유화학에는 1등 제품이 없다. 우리만의 특화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나마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은 보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방 회장은 "우리나라가 자원이 없다는 것, 희망이다. 없기 때문에 사람이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다"며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히 똑똑한 편이다. 못하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불황도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출연연 역할 중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야 국내 산업이 먹고 산다

"연구소 계신 분들에게 해야 할 이야기는 뻔하다. 열심히 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야 우리 모두가 먹고살 수 있다는 것 밖에. 새로운 기술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만의 돈이 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최근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많이 방문한다는 그는 "회사의 앞날이 연구소에 달려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방 회장은 "과거에는 라이센싱을 통한 제품 판매로 이익을 냈지만, 지금은 그들만의 제품에 대해서는 라이센싱을 허락해주는 업체가 없다"며 "지금은 이익이 나지 않는 부분만 라이센싱을 허락한다. 그만큼 특화된 제품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이 지금 기를 쓰고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솔라와 배터리 부분이다. 더이상은 선진국에 라이센스 비용을 대지 않겠다는 의도다. 방 회장은 "어떻게 보면 우리도 그런 분야를 선점해야 할 때다"며 "소재 산업이 발달해야 새로운 기술 개발도 용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만큼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가이드 라인 제시도 중요한 임무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는 "기업 쪽 입장에서 봤을 때 출연연에 바라는 역할은 가이드 라인 제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정부 과제가 많이 만들어져서 새로운 아이템들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며 "출연연은 장기적인 방향에서 국가 발전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아이템을 개발해 기업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수립한 화학산업 발전전략 'CHEMI 2020'은 화학산업의 신성장동력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일 수 밖에 없다.

방 회장은 "향후에는 'CHEMI 2020'의 전략을 바탕으로한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주력산업과 연계된 R&D 개발과, 우수 인력 확보 등의 장기적인 교육 투자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밖으로는 적극적인 M&A와 해외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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