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종합기술원, 'SOI기반 CMOS 반도체 양산기술' 개발
대기업 기술이전돼 양산 눈앞…5000억원 수입대체 기대

또 실패다. 알 수 없는 오류가 다시 발생했다. 설계부터 똑같은 조건으로 테스트했는데 결과는 제각각 이었다. 처음부터 200단계를 반복해야 한다. 몇 시간이 걸리지 모르는 작업과 원인도 모른채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오류로 연구진은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 그만 포기하자. 우리 기술로는 무리야." 그러나 연구진 누구도 아무말이 없었다. 말없이 200단계 테스트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한번 시작하면 주말은커녕 끼니도 제대로 챙기기 어렵다. 지난 1년간 이런 시간이 반복됐다. 그리고 마침내 오류의 원인을 찾아냈다.

이들은 오류발생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 개발로 스마트폰 부품 시장의 판도를 바꿀 'SOI RF CMOS 반도체 양산기술'에 성공한다.

나노종합기술원(원장 이귀로)이 국내 최초로 휴대폰의 FEM(Front End Module)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0.18um SOI RF CMOS 반도체 양산 기술' 개발에 성공,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 매그나칩(대표 박상호)에 이전한다. 지난 29일 양 기관은 기술이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16년 관련 시장의 규모가 7억 달러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수입대체 효과만 해도 5000억원에 이른다는 게 나노종합기술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스마트폰의 안테나 바로 다음에 위치하는 FEM에 들어가는 핵심부품 중 RF스위치에 관한 것으로 이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통산환경에서도 특별한 조작없이 통신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에는 화합물 반도체 기반의 RF스위치 공정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2~3년전부터 화합물 반도체보다 오류 발생이 적은 실리콘 웨이퍼인 소이(SOI·Silicon On Insulator) 기반으로 급속하게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IBM과 Tower-Jazz가 이 공정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의 퀄컴이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과 3년간의 연구끝에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 휴대폰 관련 기업은 고가의 외국 파운드리 기업의 제품을 이용해 왔다. 국내에서는 나노종합기술원이 KAIST와 2년여의 연구끝에 처음으로 기술개발에 성공하고 테스트까지 마쳤다. 기존 기술보다 공정단계를 30%이상 줄여 제조단가와 공정시간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말이다. 또 나노종합기술원의 소이플랫폼 기술 개발로 관련 설계지원 기반을 준비중인 국내 연구진이나 학생, 벤처에서 이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매그나칩은 이전받은 0.18um SOI RF CMOS 반도체 양산 기술과 그동안 축적해 온 공정 기술 노하우를 통해 하반기에 양산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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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종합기술원이 양산기술을 개발하고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SOI RF 모듈(왼쪽)과 칩 웨이퍼. ⓒ2013 HelloDD.com
◆1년 이상의 사투끝에 기술 개발에 성공…밤샘과 주말 반납 일상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설계는 완벽하게 했는데 테스트 결과는 제각각이었죠. 오류의 원인은 물론 이에 접근할 수 있는 경험치가 전혀 없어 막막했습니다. 결국 오류가 난 기판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설계해 다시 200단계를 거치는 테스트가 반복됐습니다." 이번 기술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주요 역할을 한 오재섭 팀장을 비롯해 윤석오 선임연구원, 강민호 선임 연구원, 배희경 선임연구원 등 나노종합기술원의 전사(?)들.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이들이 개발한 기술은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세계 각국 어디에 가든 따로 로밍하지 않고 자유롭게 각국의 사용환경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연결과 해제를 담당하는 스위치 기술이다. 기존에는 화합물 반도체 기반 기술이었으나 화합물 특성상 예민하고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있어 글로벌 기업에서는 2~3년전부터 실리콘 웨이퍼 기반 기술을 개발하고 부품을 대체하고 있었던 것. 핵심 기술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기술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 외국 기업의 제품을 이용해 왔다.

이에 이귀로 원장과 연구진은 워크숍을 열고 기술 수요 조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수요가 있다는 확신에 기술개발에 돌입했다. "처음 1년간은 리서치에 주력했습니다. 외국기업에서는 절대 기술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선행자료가 없어 관련기술을 결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KAIST 관련 랩과 1년간의 연구 끝에 소이기반 기술 설계에 성공한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가 문제였다. 200단계의 공정까지 똑같이 거쳤지만 들쑥날쑥한 결과는 연구진을 난감하게 했다. 이 문제를 핸들링해줄 사람이 누구도 없었다. "막막했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고요. 소이기판의 가격도 부담이었습니다. 워낙 고가라 무한정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조건을 달리해보기로 했습니다. 한번에 6장의 기판에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넣어 테스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참담했다. 더 이상 해볼 방법이 없었다. 다들 "안될 것 같다"며 기술 개발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번 테스트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작업에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잤던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의 시간들, 가족과 언제 주말을 보냈는지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쏟아부었던 열정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들 전사들은 마지막으로 의기투합을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류 발생 원인을 찾게 됐죠.(원인은 기술의 핵심이므로 함구해야 한단다)" 원인을 찾은 연구진의 다음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오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을 접목하면서 마침내 국내에서는 최초로 소이기반 반도체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기술 개발 성공 소식에 글로벌 기업에서 협력 제안

▲나노종합기술원은 지난 29일 매그나칩과 기술이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이귀로 원장, 다섯번째 이태종 매그나칩 부사장)  ⓒ2013 HelloDD.com
"기술개발 소식이 알려지자 글로벌 기업에서 여러가지 조건으로 협력하자고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 가운데 나노종합기술원의 설립 취지에 맞고 이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파운드리 기업인 매그나칩에 기술을 이전하기로 했습니다."

나노종합기술원은 이번 업무협약으로 매그나칩의 양산화까지 업무를 지원하게 된다. 하반기 양산에 들어가면 나노종합기술원은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소이기반 기술은 앞으로 시장이 점점 커질 전망으로 이번 성과는 나노종합기술원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제품에 접목돼 양산까지 되기는 쉽지 않다. 평생 한번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들 연구진은 이번 성과가 논문으로 발표되지는 않지만 전세계인이 사용하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핵심기술을 개발했다는 뿌듯함으로 그동안의 고생은 단번에 잊었단다. 그리고 이번 성과가 있기까지 구성원 모두의 역할이 컸다며 공을 돌렸다. 오재섭 팀장은 "국내에서 기술설계부터 공정평가까지 모든 특성을 다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동료들이 같이 했기에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었다"며 구성원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테스트를 전담했던 강민호 선임연구원은 "테스트마다 200스텝을 긴장하면서 보고 실수없게 해야 해 새벽, 밤, 주말을 반납했었다"며 가족과 동료들의 응원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나노종합기술원의 기술 개발로 스마트폰 부품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이들의 예측이다. 기존기술과 같은 성능을 내면서 공정과 시간을 크게 단축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성과로 글로벌 기업만 가지고 있던 소이기반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게 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다양한 부품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다른 스마트폰 부품에도 이 기술을 접목할 예정이다. 이들의 다음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 용어설명  SOI : Silicon On Insulator의 약자로서, 고성능 논리 회로, RF 회로, 센서 등의 틈새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는 실리콘 웨이퍼의 일종이다. RF Switch : 이동통신 단말기에 적용되는 RF Switch는 송수신 신호를 Switching 하거나, 서로 다른 여러 통신 대역을 Switching 할 때 사용하는 부품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통신환경에서도 동일한 단말기로 특별한 조작 없이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부품이다.  FEM : 휴대폰 안테나 바로 다음에 위치하는 모듈로서, RF 스위치, 여파기, 전력 증폭기 그리고 이들을 제어하는 제어 회로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각 부품을 따로 만들어 모듈로 제작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여파기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들은 SOI CMOS 웨이퍼 상에서 단일 칩으로 집적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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