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앞둔 송헌식·학사출신 장영래·30대 박문수 위원 만나보니
"긍정마인드로 연구에 집중…구성원과 소통하며 아이디어 얻어"

"제가 57년생이니 만 나이로 해도 정년(민간기업 연구원의 평균 정년 58세 기준)이 2년정도 밖에 남지않았는데 올해 연구위원에 선정됐습니다. 앞으로 최소한 3년동안 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된거지요. 이런 기회를 준 회사도 고맙지만 후배 연구원들이 저를 보면서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정년 앞두고 발탁된 송헌식 연구위원)

"1989년 8월 KAIST에서 학부를 마치고 바로 LG화학에 입사했습니다. 처음 입사해서 담당 과제 박사님들의 교육프로그램이 무척 타이트하게 진행됐죠. 그 당시 3년간 배운 학문이 연구의 모티브가 되고 바탕이 됐습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 학습은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고요."(학사 출신 장영래 연구위원)

"스마트한 실패를 반복하며 새로운 기술방향으로 가는 것이 연구개발(R&D)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모르는 걸 인정하고 질문하다보면 구성원간 소통도 잘 이뤄지고 서로 교류하면서 연구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습니다."(30대에 선임된 박문수 연구위원)

LG화학기술원(원장 유진녕)에서는 지난달 말 6명의 연구위원이 탄생했다. 정년을 앞둔 50대 후반의 연구위원부터 학사출신의 여성 연구위원, 30대의 연구위원까지 파격적인 인사로 연구개발 분야의 혁신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가운데 그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봤다.

이들이 연구위원에 선정될 수 있었던 비결로 든 공통의 키워드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연구에 집중 ▲지속적인 학습 ▲구성원과의 소통과 논의 등 세가지로 압축된다. LG화학기술원의 연구위원 제도는 R&D 분야의 핵심기술 인재 육성을 위해 2008년부터 도입됐다. 현재 25명의 연구위원과 2명의 전문위원이 있다. 연구위원에 선임되면 임원급 대우를 받게 되며, 역량이 뛰어나면 정년을 보장받고 사장급까지 승진할 수 있다. 이들은 연구성과를 통해 선임되며 3년 단위로 성과평가를 받게된다. ◆책상앞에 적어 놓은 연구자의 자세 지켜온 '송헌식 연구위원'
 


 
▲퇴임을 앞두고 선임된 송헌식 연구위원. 그는 이번 발탁이유로 21세기 연구자의 자세를 적어놓고(사진위 왼쪽) 연구에 매진한 결과라고 들며, 후배들에게 연구 의욕을 북돋아 주는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13 HelloDD.com

정년퇴임을 앞두고 연구위원에 선임된 송헌식 연구위원. 그의 방에 들어서면 많은 연구노트와 자료들 가운데 책상의 정중앙에 붙은 낡은 메모지 한장이 눈에 띈다. 그동안 그가 실천해온 21세기 연구자의 자세를 적은 종이다. 메모지의 빛깔은 누렇게 변색되고, 글씨를 쓴 잉크도 날아가 희미해 졌지만 10년의 세월을 송 연구위원과 함께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다.

"석사 과정 중 현장경험이 필요하다는 지도교수님의 조언으로 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LG에서는 16년전부터 리튬2차전지용 분리막 연구를 해 왔는데 2000년 초에 갑자기 분리막 과제가 홀딩됐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에 들어가는 연성회로기판 관련을 연구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다른 분야라 힘들었죠." 송 연구위원은 자신이 하던 과제가 중단되고 전혀 다른 분야를 연구하면서 힘 들기도 했지만 이런 과정이 자신을 진정한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회고한다.

"처음에는 제 자신이 무척 오만했습니다. 잘났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과제가 중단되면서 진정한 연구자의 길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그 당시 메모해 놓은 21세기 연구자의 자세를 항상 실천하며 연구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랬더니 성과도 나고 이렇게 늦은 나이에 연구위원에 선정되는 행운이 따라왔습니다."

그가 말하는 연구자의 자세는 세가지다. 자신이 하는 연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할 것과 사회 변혁을 선도할 수 있는 연구, 자원빈곤국가 한국이 해외 무역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가진 성과를 창출하는 것. 송 연구위원은 10년전 이렇게 자신만의 연구자세를 세우고 매일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휴대폰의 2층 연성회로기판과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습식과 건식 분리막 제조기술을 확보하면서 장영실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늦은나이(기존에 선임된 연구위원은 4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다)에 연구위원에도 선정됐다.

한국 나이로 50대 후반에 들어섰지만 그의 연구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연구 아이템이 생각날때마다 적어놓은 연구노트는 그의 자산목록 1호들이다. 앞으로 그는 사회와 회사에 꼭 필요한 연구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송 연구위원은 후배 연구원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최근에는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수명이 짧다는 인식이 지배적인데 그런 생각보다는 연구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럼 인류에 유익한 성과도 내고 더 연구할 수 있는 기회도 저절로 주어진다"고 조언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연구에 집중해주길 당부했다.

◆학사출신 여성 '장영래 연구위원' 지속적인 학습과 소통으로 성과

▲장영래 연구위원(사진 왼쪽)은 오늘의 성과가 있기까지 입사초기 깐깐한 교육과 팀원들과의 소통이 많은 영향을 주었 다고 말했다.  ⓒ2013 HelloDD.com

"대학 졸업 후 곧장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말고 역동적인 일은 해보고 싶었거든요. 당시에는 연구위원 제도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연구위원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임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재미있게 일했는데 이렇게 좋은 일로 이어졌습니다." 장영래 연구위원은 1989년 8월 KAIST를 조기졸업하고 곧장 기업연구소을 선택했다. 공부보다 역동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입사 할 당시 LG화학기술원의 연구분야는 석유화학과 고분자 소재 사업이 중심을 이뤘다. 해당 과제에 참여하면서 장 연구위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습이다. 그런 학습덕분에 학사 출신이었지만 연구에서 애로를 겪지는 않았단다.

"과제 담당 박사님들이 직접 교육을 하셨는데 처음 3년간의 교육으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무척 타이트하게 진행돼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기업에서 필요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또 엔지니어와 생산, 사업분야 담당자들과 많이 대화하고 논의하면서 아이디어도 얻고 사업화에도 성공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지금도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죠." 장 연구위원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남편 등 가족의 도움뿐만 아니라 팀원, 각 분야 담당자와의 원활한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직장인 여성들이 가장 애로점으로 꼽는 출산과 육아는 그에게도 부담이었지만 모두들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분위기였기에 잘 극복할 수 있었단다. 그렇다고 그의 직장 생활이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양산을 앞두고 발생한 문제로 눈앞이 캄캄했던 기억도 있다. 연구하던 과제가 중단돼 허탈함을 경험하기도 했다.

"2009년 양산 몇개월을 앞두고 개발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정말 당황했지요. 사업부 파트너와 집중해서 문제점을 찾고 2개월만에 해결했습니다. 사업부, 생산라인 등 각 부서의 담당자들과 평소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논의하는 분위기가 일상화 돼 있었는데 그 분들의 조언이 한 몫을 했지요." 그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다시 떠오르느지 다시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에게 대학원 진학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학위는 받지 않았지만 항상 공부하고 연구에 집중한다"면서 "어느 분야에 있던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안될거야'라고 생각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긍정 마인드와 진취적인 자세로 연구에 매진하면 성공이라는 결과는 저절로 따라온다"며 앞으로도 대학원 진학계획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구는 혼자 할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즐겁게 일하다보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성과도 내게 된다"며 후배 연구원들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현재의 연구에 즐겁게 임해주길 기대했다. 장 연구위원은 학사출신 여성 인재로 광학용 코팅 필름 제조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보유 특허출원 건수만 해도 80건이며, 1995년과 2004년 두 번에 걸쳐 장영실상을 수상하는 등 대내외에서 연구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최연소 발탁  '박문수 연구위원' 실패에서 배우고 모르는 부분 인정하고

▲30대에 연구위원으로 발탁된 박문수 연구위원. 그의 책상은 각종 자료들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그는 실패와 모르는  부분을 인정할때 소통기회도 많아지고 그를 통해 연구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3 HelloDD.com

박문수 연구위원은 1973년생 늦은 생일로 만39세다. 이전에 선임된 연구위원을 포함해도 가장 어린 나이에 연구위원에 발탁됐다. 그는 과학고등학교에서 KAIST에 조기 입학,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곧장 기업을 선택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연구소나 대학의 아카데믹한 연구보다 자신의 연구에 대해 좀더 빨리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그는 "기업의 연구성과는 시장에서 팔리느냐 팔리지 않느냐로 바로 평가가 된다. 일의 결과를 좀더 빨리 평가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성과가 매출로 이어지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크다"면서 "이처럼 기업 연구는 동전의 양면처럼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항상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활력소가 된다"며 기업 연구의 매력을 들었다. 박 연구위원은 LG가 주도하고 있는 3D TV용 광학필름(FPR) 개발 주역이다. 그는 2001년 초기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기술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편광판 연구를 시작했다.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며  개발에 성공, 지금은 세계에서도 어깨를 나란이 하는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 기술 개발로 그는 2007년과 2010년 장영실상을 받았다.

그는 많은 실패와 긍정마인드를 기술 개발의 성공비결로 꼽았다. "2007년과 2010년 편광판 액정필름과 FPR 기술 개발로 장영실상을 받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연구에서 실패 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술개발 중 연구에 실패했다고 모두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개발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있죠. 그런 기술들이 모여 또 다른 연구아이템이 되기도하고 기술을 높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항상 잘될거라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11년간 연구하면서 팀원간 쌓은 신뢰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소로 들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으로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적극 질문하고 한단계 높은 관점으로 보라고 말했다. "잘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먼저 질문하면 직장생활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고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 그렇게 팀원간 또 다른 부서의 구성원과 대화를 하면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고요. 또 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관점을 높여야 합니다. 기존보다 한단계 높은 관점으로 볼 때 기술을 보는 안목도 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조용조용 말하던 그의 어조에 힘이 들어갔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박 연구위원은 "그동안 편광판 연구를 하면서 모든 실패를 다해본것 같다. 이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세계 최고 기술로 기술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송헌식 연구위원, 장영래 연구위원, 박문수 연구위원을 포함해 김종걸 연구위원, 최용진 연구위원, 고동현 연구위원등 6명을 새롭게 연구위원에 임명했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비와 임원급 대우를 받으며 3년간 연구에 집중하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연구개발에 주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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