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정치권 난맥상 보며 조국에 헌신하려던 마음 접었다"
朴대통령 "양보 없다" 강공에도 국정공백 장기화 불가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방송진흥 핵심기능의 미래과학부 이관 문제에 대해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거듭 분명히 했다. 김 장관 내정자는 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내정자는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워졌다"면서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논란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며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을 비판했다.

기대를 모았던 미래과학부 출범이 파행을 빚고 있는 가운데 첫 수장까지 어이없이 낙마하게 되자 과학기술계는 큰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장순흥 KAIST 교수(전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위원)는 "오전에 수업이 있어서 자세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면서 김 내정자 사퇴 소식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어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언론에 생각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지만 이런 때일수록 양보하는 쪽이 진정 이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미래과학부가 제 모습대로 출범해 원래의 의도를 잘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대임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장(표준연 원장) 역시 "회의 중에 속보를 들었다"면서 "미래과학부 출범에 기대가 컸던 만큼 안타까움도 크다. 김 내정자의 사퇴로 미래과학부 출범이 더 지연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국가 미래를 바라보는 대승적 차원에서 하루 속히 매듭을 짓기 바란다"고 밝혔다.

사퇴배경에 관심 "부처 축소·신상털기 실망한듯"

이날 김 내정자의 갑작스런 기자회견은 주변 관계자들은 물론 청와대 역시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실제 사퇴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김 내정자의 사퇴 기자회견이 있은 뒤 "오늘 김종훈 씨가 사퇴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짤막한 유감 표명 외에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청와대의 또다른 관계자는 "아침에 회의할 때도 그런 얘기가 전혀 안나왔고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지난달 17일 미래과학부 장관에 내정된 직후 서울 세종로 동화면세점 15층에 사무실을 꾸리고 통합 예정 부처들로부터 현안보고를 받으며 3·1절 연휴까지 창조경제 실현 방안을 구상하는 데 몰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문위원으로 재직한 전력과 미국 시민권 문제 등의 논란은 계속됐다. 김 내정자가 미국 시민권 포기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국적포기세 부담과 함께 미국이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한국 국적 취득과정의 특혜논란 등 시비가 이어지는 가운데 야당은 연휴 뒤인 4일 속개되는 인사청문회에서 김 내정자에 대한 논란과 의혹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별러 왔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김 내정자의 과거경력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질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감이 사퇴로 이어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김 내정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부동산 보유현황까지 문제가 되는 한국적 정치상황이 그의 사퇴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처럼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김 내정자 가족 역시 그의 한국행을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내정자는 또 미래과학부의 기능이 인수위원회에서 설계한 모습과 크게 달라지는 것에 적잖게 당황스러워했던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인수위는 당초 미래창조과학부를 과학기술과 ICT, 방송통신 융합과 콘텐츠 산업 전반, 개인정보 보호와 정부 정보화 정책을 비롯해 미래 신성장 동력 창출과 관련한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부처로 제시했다. 그러나 관련부처와 여야간 협의로 정부조직 개편안이 손질되는 과정에서 방송융합 핵심기능에 대한 밥그릇 싸움은 물론 게임산업(문화부), 정부 정보화(안전행정부), 소프트웨어 산업(지식경제부)도 결국 이전 부처에 존치되는 것으로 결정되며 미래과학부의 손발이 축소되는 상황에 대해 김 내정자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대통령 미래과학부 강행 재천명…새 인선 시간 걸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대국민담화 직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2013 HelloDD.com
한편 김 내정자의 사퇴 기자회견 1시간 뒤에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미래과학부를 원안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중인 방송진흥 핵심기능의 미래과학부 이관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원안이 수정됐고 이제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만 남겨놓은 상황"이라며 "이것이 빠진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지금은 국민들이 출퇴근하면서 거리에서 휴대폰으로 방송을 보는 세상으로 이미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현실에서 방송정책과 통신정책을 분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방통융합을 기반으로 한 ICT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해 미래과학부의 방통융합 기반 ICT산업 육성 기능을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그것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서비스를 만들고 질 좋은 일자리도 창출하겠다는 새 정부의 국정 운영도 차질을 빚게된다"며 "국민들은 경제 살리기 열망에도 부흥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 경제는 방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김종훈 내정자 사퇴에 대해서는 "미래성장동력과 창조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 온 분인데 우리 정치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공식출범 후 일주일 넘게 국무회의를 열지 못하는 등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새 정부는 김 내정자의 사퇴로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를 핵심부처로 삼아 과학기술 중심의 창조경제를 추진하려 한 박근혜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이 초장부터 난관에 처하며 과학기술계 역시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과학부가 정부조직 개편안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장관 내정자 사퇴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로 '배수진'을 치며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어 여야간 대치 국면은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야는 5일 임시국회 폐회를 앞두고 정부조직법 개편안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방송 기능 배분 문제로 막판 합의 도출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통상 기능의 산업자원부 이관과 원자력안전위원회 독립기구 설치는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된다 해도 박근혜 정부의 핵심부처인 미래과학부의 위상과 중요성을 고려할 때 후임자 인선까지는 다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미래과학부가 제 모습을 갖추고 출범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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