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장관 내정자 사퇴소식에 과기·벤처계 우려 한목소리
"수장 사퇴했지만 과학기술 중심 국정 방향·원칙 흔들림 없어야"

4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갑작스러운 사퇴 소식에 과학기술계와 벤처산업계는 안타까움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퇴 배경을 놓고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던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하차한 상황에 당혹감을 표출했다.

오랫만에 과학기술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자리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여야대립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여전히 파행을 겪고 있는데다, 초대 미래과학부 장관 내정자까지 하차하면서 과학기술이 다시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 현장에서는 또 다시 정치 논리로 과학기술 발전이 저해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청와대와 여야 등 정치권의 '정치력 부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동시에 "정치권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는 김종훈 내정자의 사퇴의 변을 접한 과학기술계와 벤처산업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쉽게 포기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보내고 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이렇게 흔들릴 경우 '과학기술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은 차치하고 '과학기술'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며 김종훈 내정자의 사퇴를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 중흥 기회 맞았는데…" 과학기술 현장 당혹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해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에 앞장섰던 장순흥 전 인수위원(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은 "굉장히 안타까운 소식"이라며 "미래과학부가 제대로 출범해 원래의 의도를 잘 살려내야 한다. 이런 때일 수록 양보하는 쪽이 이긴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과학기술 전담 부처 부활과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주력했던 강대임 과학기술출연연구기관장협의회장(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역시 "과학기술인들이 미래과학부에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안타까움도 클 것 같다"며 "김 후보자의 사퇴로 미래과학부 출범이 더 지연될 것 같다.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가 올바른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 부회장(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은 "김 후보자의 자질은 부차적인 문제다. 미래과학부가 바로 흘러가야 하는데 다른 요인에 의해 진수조차 못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의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의해 물러나게 돼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버린 김 후보자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전했다.

이상목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정치권 갈등 때문에 사퇴한다고 하는데, 너무 쉽게 포기한 게 아닌가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며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과학부 장관은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신영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대표도 "김 후보자가 가진 여러 창의적 아이디어가 기업을 통해 효과와 결실을 맺는 등 나라 발전에 기여했으면 했는데 무산돼 아쉽다"며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미래과학부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큼에도 불구하고 출발에서부터 삐걱거려 염려스럽다"며 "빨리 국회가 정부조직안을 처리하고,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를 마무리해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너무 쉽게 포기" 안타까움도…"미래과학부 수장 자질 재검토해야"
 

미래과학부 수장의 자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주동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노조위원장은 "과학기술인으로서 생각했을 때 우려되는 부분이 많았다. 미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걱정됐다"며 "러플린, 서남표 KAIST 전 총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히 우수한 과학자들이었지만 중간에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또 "이론에 가까운 학자보다는 실제로 현장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며 "과학과 ICT의 융합을 진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인재가 총괄 책임자로서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은 지난달 말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과 미래과학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비난하며 정부조직법 처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이미 출범했지만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업무공백으로 과학기술과 ICT가 중심이 된 창조경제의 선순환구조가 첫 출발부터 흔들리고 있다"며 "여야가 원할하게 정부조직법에 합의해 미래창조과학부가 하루빨리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밝혔다.

◆벤처산업계도 "할말이 없다…우리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나"

과학기술계 뿐만 아니라 대덕을 중심으로 한 벤처산업계도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래과학부가 과학기술과 ICT를 근간으로 하는 부처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이를 통해 창업과 벤처생태계를 선진국형으로 전환시키는 것에 모아졌던 만큼 벤처산업계 역시 미래과학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았다.

위성토탈기업인 쎄트렉아이의 박성동 사장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는 말로 입장을 대신했다. 그는 "창피하고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그릇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니 부끄럽다"며 "자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무선통신 종합 솔루션 업체인 '에드모텍'의 전오곤 부사장은 "기대하는 게 많았는데 무척 아쉽다"면서 "벤처기업의 속성을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을 테고, 특히 정보통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의 육성을 기대했는데 통신관련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한편 김 후보자는 4일 오전 국회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저버리려고 한다"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정부조직 개편안 논란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미래성장동력과 창조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 온 분인데 우리 정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해 정말 안타깝다"며 "앞으로 우리가 새 시대를 열어가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적자원이 가장 중요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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