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사정 잘 모른다" 우려에 대덕관계자·동문들 "기우"
"능숙한 한국말만큼 과학기술 현안·장단점 꿰뚫고 있어"

미국의 자존심이라는 벨연구소(Alcatel-Lucent/Bell Labs). 미국 뉴저지 중앙연구소와 인도, 한국, 아일랜드 등 8개국 지역연구소에서 1만여 명의 엘리트 과학기술인을 포함 모두 2만60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거대 연구기관이다.

남은수 ETRI 부품소재연구부문 소장은 2008년부터 벨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과의 인연도 올해로 6년째다. 남 소장은 세계 최고라는 벨연구소 역사상 최연소·첫 외국인 수장으로 발탁된 김종훈 사장이 최장수기록을 세우며 롱런하고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남 소장의 질문에 김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아마 아이디어나 경영, 조직관리까지 모든 면에서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모습을 벨랩을 소유한 알카텔-루슨트 최고경영진이 좋게 보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혁신 추구, 상대 가리지 않는 소탈함이 큰 매력"

정관인선 발표 직후의 김 내정자
정관인선 발표 직후의 김 내정자
벨연구소는 1925년 설립 때부터 기초과학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여기서 얻어진 연구결과를 상업화하는 전통에 힘입어 순수과학 분야에서만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벨연구소의 이같은 분위기는 고 최형섭 과기처장관의 책에도 소상히 기록돼 있다. 최 장관은 KIST 설립을 준비중이던 1965년 미국 정부로부터 과학기술고문단 파견 제의를 받았다.

당초 미국 정부는 당대 최고의 연구소로 손꼽히는 벨연구소의 전문가들을 보내 한국의 연구소 설립을 도우려고 했지만 최장관은 생각이 달랐다.

최 장관은 "벨연구소가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연구소지만 큰 돈을 들여 기초부터 연구하는 귀족적인 연구소는 우리 실정에 안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벨연구소보다 기업에 즉시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바텔처럼 장사꾼같은 연구소가 더욱 필요했다"고 적고 있다.

2005년 45세의 한국인이 미국 최고의 연구소인 벨연구소 사장에 취임했다는 소식은 전세계 IT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벨연구소는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상품화 성과를 내지 못하며 좌초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2001년 처음 벨연구소의 영입 제안을 고사하고 매릴랜드대 교수로 갔던 김 사장은 2005년 거듭된 요청에 결국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알카텔-루슨트는 김 사장을 위해 벨연구소 사장 자리를 3개월이나 공석인 채로 비워둔 상태였다. 사장으로 부임한 김 내정자는 큰 몸집을 가누지 못하던 공룡 연구소의 개혁에 나섰다. 그가 벨연구소에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수익을 창출하는 살아있는 조직으로 연구소를 변화시킨 것이다.

'연구를 위한 연구'를 떠나 '활용할 수 있는 연구'를 목표로 삼아 연관성 없이 연구되던 기술을 통합하는 팀과 결과물을 즉시 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벤처팀을 신설했다. 엔지니어 출신 벤처사업가인 김 내정자는 연구원들과 기술적으로도 말이 잘 통했다. 연구원들에게 부족한 실용화 방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잠자고 있던 수많은 연구실적을 상품화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지시를 내리기보다 늘 직접 찾아가 토론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남 소장은 김 내정자에 대해 "벨연구소에 갈 때마다 전형적인 엔지니어답게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원들과 활발하게 토론하던 모습이 늘 인상깊었다"고 전했다.

남 소장은 또 김 내정자의 큰 장점으로 특유의 소탈함을 꼽고 있다. 그는 "김 사장은 벨연구소 수장이라는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지위고하를 떠나 직원들 모두에게 격의없이 친구처럼 대한다"며 "내가 몇 년째 봐온 그런 일관된 모습에 주변 사람들 누구나 신뢰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과학기술계 현안 잘 알아…대덕 미래도 관심"
 

▲김 내정자의 유년과 학창시절 및 해군복무 당시 모습. 오른쪽 밑은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와 같이한 김 내정자 부부. <사진=Academy of achievement>   ⓒ2013 HelloDD.com

장순흥 인수위 교육분과 위원은 김 내정자의 인선배경에 대해 "자신이 새 통신기술을 개발해 직접 창업을 했으며, 세계적인 기업연구소인 벨연구소에서 기초연구부터 실용화까지 이끌어온 경험을 갖고 있다"며 "기초연구에서 기술창업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담당하는 미래과학부 장관 후보로는 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문기 KAIST 경영과학과 교수는 ETRI 원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벨연구소와 공동기술개발 협약을 맺으며 김 내정자와 인연이 닿았다. 그 역시 김 내정자에 대해 큰 기대감을 표현했다.

최 교수는 "벤처기업을 키우고 세계적인 연구소도 이끈 만큼 기술을 잘 알고 또 이를 사업화로 연결하는 데도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창조경제가 과학기술을 통해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니 매우 적절한 인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에 대한 후한 평가는 1980년대초 존스홉킨스대에서 함께 수학했던 동문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존스홉킨스대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주진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김 내정자에 대해 "아이디어가 아주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 전 원장은 특히 김 내정자가 벤처기업 유리시스템을 루슨트 테크놀로지에 매각하며 거둔 막대한 재산을 40% 넘게 직원들과 나누고 또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큰딸의 이름을 따서 회사명을 만든 김 내정자는 둘째딸의 이름을 따 사회공헌재단(주리재단)을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도 "대학원생 시절 학부생이던 김 내정자를 알게 됐다"며 "넉넉치 않은 형편과 고학으로 사귀는 교우의 폭이 넓지는 않았지만 알면 알수록 참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김 총장은 또 "공부벌레들만 모인 학교에서 일을 해가며 3년만에 졸업장을 따냈다면 얼마나 명석하고 근면했는지 알 만한 일"이라며 "개인적으로 천재라는 소리가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김 내정자가 장기적 연구개발보다 단기성과에 익숙한 벤처기업가 출신이란 점 때문에 우려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한국 과학기술계 사정에 어두운 역외인이란 점 역시 염려의 대상이다.

김 내정자를 아는 지인들은 이런 비판적 시선에 대해 "편견일뿐"이라며 단호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남은수 소장은 "그를 외국인으로 보는 시선은 잘못된 것"이라며 "일단 한국말에 능숙할 뿐만 아니라 서울 벨연구소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과기계 리더들과 교류도 많아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안과 장단점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남 소장은 공동연구를 위해 벨연구소를 찾을 때마다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로 어떻게든 유무형의 도움을 주고 싶어했던 김 내정자에 대한 기억 역시 높이 평가했다. 남 소장은 또 "3번 넘게 이곳을 방문해 연구기관장들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 김 내정자는 대덕연구단지의 미래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다"며 "양적생산 개념의 시대가 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감성이 실린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는 게 그가 얘기하는 대덕의 미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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