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동아리 '나눔E', 주택에너지진단사 양성하며 재능기부
'따뜻한 도시남자들' 자처…"세계 최고만큼 보편기술 중요"

2005년 한 여중생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잠을 자다 화재로 숨졌다. 여중생의 가족은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던 중 전기료조차 낼 수 없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참극을 맞았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불과 한 달 전인 1월 13일, 전남 순천시에서도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끄고 전기장판에 난방을 의지해 온 80대 할머니가 동사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전체가구 중 약 8%인 130만 가구가 에너지구입비용으로 총 가구소득의 10% 이상을 지출하는 에너지빈곤층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체계적이고 꾸준한 에너지복지지원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추운겨울, 비닐로 겨우 바람만 막은 창문에 수도나 전기시설 사용조차도 변변치 않은 저소득층 가구의 겨울나기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혹독합니다.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공급받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이야말로 복지혜택이 필요합니다."

장철용 녹색건축센터장과 정학근·김종훈 선임연구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도시남자 셋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 직장의 선후배였던 이들은 지난 1년 연구원 지식동아리인 '나눔E(에너지)'를 통해 '주택에너지 진단사 양성사업'을 진행하며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됐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원장 황주호) 직원 25명이 함께하는 '나눔E', 출연연에서 세계 최고기술 개발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던 이들이 지금은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기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을 위해 의기투합한  (왼쪽부터)김종훈 연구원, 장철용 센터장, 정학근 연구원. ⓒ2013 HelloDD.com

◆ 열악한 주거환경…한정된 재원 효율적으로 쓰려면 과학적 진단·처방 필수

"주택진단 실사를 위해 방문한 곳은 서울 은평구, 차는 올라갈 수 없는 골목길을 20분 넘게 걸어 올라갔죠. 지붕에 단열은커녕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어요. 할머니가 구청에서 지원되는 도시락을 드시다가 1/3만 먹고 남기시기에, 속이 안좋냐고 여쭤봤죠. 저녁과 내일 아침으로 먹기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는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처음엔 큰 뜻이 없이 참여했더라도 직접 가보면 돕고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어요."

장철용 센터장을 비롯한 나눔E 회원들은 처음에는 큰 뜻 없이 주택에너지진단 현장조사에 동참했지만 출연연 종사자로서 사회적으로 받은 혜택을 이웃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너지재단과 협력을 모색하던 장 센터장은 제대로 된 에너지복지를 위해서는 주택에 대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 주택에너지진단프로그램을 제공했다. 2007년 설립된 에너지재단은 초기 전기장판과 같은 물품위주의 지원활동을 펼쳤지만, 오히려 난방이 아닌 전기장판에 의존해온 가구들이 전기세를 내지 못해 단전되는 문제에 직면했다. 또 현금으로 지원하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보다 실직적인 에너지절약에 도움을 주기 위해 주택 개보수 작업을 택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을 투입한 개보수 작업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량적 지표가 부재했다. 장 센터장은 에너지연에서 건물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친환경기술을 비롯해 다양한 요소기술을 연구해왔기 때문에 기존에 개발했던 진단프로그램을 일반주택용으로 수정해 재단에 제공할 수 있었다. 또 단순히 프로그램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업체들이 직접 이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과 연계했다.

정학근 연구원은 "진단프로그램을 갖고 개보수 대상인 주택에 방문하면 어느 부분이 에너지 효율이 가장 취약한지, 어디를 개보수해야 같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어디를 얼마만큼 고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진단·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동일한 재원을 투입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

◆ 1차년도 양성사업 수익금 2000만원 에너지재단에 기부 

▲장철용 센터장. ⓒ2013 HelloDD.com

에너지연은 한국에너지재단과 2011년 본격적으로 저소득층 주택의 에너지효율 진단을 위한 MOU를 체결한 뒤 2012년부터 진단프로그램을 활용한 민간자격증인 주택에너지 진단사 양성과정 사업을 시작했다.

돈이 되는 자격증이 아니기에 주로 저소득층주택개선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업자나 자원봉사자들이 응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차 교육과 시험을 거쳐 50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양성과정은 주택에서의 에너지유실과 보존에 관한 이론 및 기밀화 단열, 난방설비, 주택 에너지성능 진단프로그램 등에 대한 내용을 대학교수와 에너지연 연구원 등 전문강사진이 직접 교육한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2박3일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이론과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김종훈 연구원은 "현장에서 제대로 진단하고 시공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과정과 자격시험은 생각보다 타이트하고 엄격하다. 합격률이 50%가 안된다"며 "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던 분들이라 아침 9시부터 저녁6시까지 진행되는 집중교육에 힘들어 하시면서도 열정이 넘친다"고 전했다.

장 센터장은 "자격증 취득으로 우리의 역할이 끝이 아니다"며 "이들이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진단하고 시공하고 있는지 함께 검증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연 직원 중 3명도 지난해 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중 한 명은 지난해 퇴직자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며 교육에 참가하셨다. 사실 3명 모두 해당분야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자격증이 필요 없음에도 좋은 일에 동참하기 위해 마음을 보탰다.

'나눔E' 모임은 1~2차 양성과정 운영에 소요된 2박3일간 교육생 숙박비와 외부강사비 등 실비를 제하고 남은 수익금 2000만원을 에너지재단의 주택효율개선사업에 기부했다.

장 센터장은 "외부강사는 비용을 지급해야 하지만 내부 직원들은 재능기부 형태로 강의를 진행했다. 남은 수익금은 직원들의 인센티브로 사용하는 대신 전액 에너지빈곤층을 위한 일에 쓸 수 있도록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며 "원장님께도 이 사업은 수익금을 전혀 내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승낙해주셨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앞으로 녹색건물뿐 아니라 신재생기술, 기후변화기술 등 연구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구현해 지원시스템을 확장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며 "국회에서 에너지복지법이 입법돼 저소득층에게 제대로 된 복지 구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주택의 에너지효율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기밀성능측정(좌)과 단열성능측정 모습. <사진=나눔E 제공> ⓒ2013 HelloDD.com

▲2012년 6월 진행된 제1회 주택에너지 진단사 교육과정. <사진 =나눔E 제공> ⓒ2013 HelloDD.com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