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과기정책 자문 떠나는 최영락 전 공공기술연구회 이사장
"여기보다 그곳이 할일 더 많아…미래창조과학부 핵심은 기술혁신"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4만달러 국가로 올라서려면 그 원천은 과학기술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국가 미래 전략과 과학기술을 동시에 전담하는 부총리급 슈퍼부처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책임지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제안하는 부처의 기능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실질적 권한이 애매모호해질 우려가 있다. 산업원천기술 개발도 이 부처가 맡고, 나머지 산업기술 관련 기능은 민간에 맡겨야 한다." 1년 전, 최영락 전 공공기술연구회 이사장의 제언이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의 새정부 조직개편안에서 그대로 실현됐다.

뿐만 아니라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 2012년 5월 '국민의 행복을 창조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공학한림원 정책총서에는 다음 정부의 도전과제와 발전비전, 정책과제 등을 담고 있는데, 새 정부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뿐 아니라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의 개념과 역할까지 해당 정책총서의 내용과 굉장히 흡사하다.

딱 들어맞는 제언, 혹은 예언을 한 최영락 전 이사장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하나다. 최초의 과학기술정책기관이었던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경제분석실 연구원을 시작으로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 공공기술연구회 이사장,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등을 지내며, 30년 동안을 '한국의 과학기술은 어디로 가야 하나'에 대한 명제에 파고들었다. 거기에 대한 현재의 답을 담아놓은 것이 해당 정책총서다.

그런데 모두가 궁금해 하는 박근혜 당선인의 미래부에 대한 의중을 꿰뚫는 답을 갖고 있는 그는 정작 이달 초 홀연히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교수직을 포함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2년 이상을 거주할 각오로 현재 지구상 최빈국 중 하나로 간 것. '에티오피아 과학기술부 자문관'이라는 명분이 아니라 "여기서보다 그곳에서 할 일이 많다"는 소명의식이 그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에티오피아 대사관이 위치한 서울 용산구의 오래된 일식집에서 출국 전 최영락 전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출국을 코앞에 두고 발행된 따끈따끈한 비자를 받아 나온 참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있던 우리나라의 1960년대 환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을 텐데, 무엇이 신이 나는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떠나기 전 그를 붙들고 미래부의 방향성과 과기계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 "미래부의 핵심?…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지를 생각하라"

"미래부 신설이 발표된 이후 과기계 주요 단체에서 하는 토론회를 참석했는데 과학기술인들의 리더십 부재가 정말 아쉽습니다. 참여자들이 미래부의 본래의 모습에 대한 고민이나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기관의 입장과 이익만 이야기하더라고요.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관장쯤 되면 국가발전을 이야기해야 되는데 최대로 보는 것이 과학기술계더군요." 쓴 소리부터 나왔다.

그는 "부분의 해(解)가 절대 전체의 해는 될 수 없다"며 "큰 그림과 방향성을 먼저 이야기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과학기술계 리더들이 개인, 그룹, 기관의 이해관계 이상의 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제안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대적인 반성을 통해 과학기술계 전체의 발전은 물론이고 국가발전 전체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거듭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미래과학부라는 슈퍼부처의 동전 뒷면에 적힌 핵심은 '기술혁신(technological innovation)'이다. 미래과학부를 만드는 목적은 기술혁신을 통해 경제와 복지 등 국가발전, 나아가 국민 행복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지 과학이나 연구개발(R&D)을 잘하라는 것이 아니란 의미. 이제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진 'R&D'라는 용어와 달리 '기술혁신'은 다소 생소한 편. 기술혁신은 발명(invention)과 활용(exploitation)이 결합된 용어로 공정, 시장, 재료, 조직 등 생산수단의 새로운 결합을 통해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 마케팅, 판매하는 일련의 현상을 말한다. 방적기, 증기기관,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이 기술혁신의 예로, 실제 추격형R&D로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뤄낸 우리나라로서는 익숙지 않은 게 당연하다.
 

 

 

▲"혹시나 잊을까 해서…" 에티오피아로 떠나기 전 꼭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꼼꼼히 메모해 온 최 전 이사장. ⓒ2013 HelloDD.com

그는 미래부의 설립 배경으로 세 가지를 반드시 생각하자고 역설했다. 첫째는 위에서 언급했듯 과학을 경제로 잇는 기술혁신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기술혁신은 지식의 창출(creation)이 아니라 활용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물론 현재는 자연과학 또는 공학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과학기술 발전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기술혁신은 반드시 국내에서 우수한 R&D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기술을 사와 그것으로 비즈니스와 시장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면 되기 때문에 R&D 역량강화가 능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술혁신을 가능케 하는 시장과 창업환경, 산업정책과 제도 등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세 번째 배경에 대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줄곧 국가의 지원을 받는 위치였으나, 이제는 국가 사회를 선도하고 국가 간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며 "미래과학부가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즉 미래과학부의 신설을 계기로 이제는 과기계가 내부발전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요구하는 위치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과 경제, 복지, 외교 등을 견인하는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최 전 이사장은 "이러한 미래과학부 설립 배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핵심적 위치에 가야 한다"며 "미래부 장관을 비롯해 구성원들은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가를 고민해 본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그는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인 미래과학부 장관에 대해서는 "그래도 기술혁신에 대한 이해도는 기업에서 기술경영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낫지만 그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이해집단이 얽혀 있는 국가정책과 공공성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본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의 미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 본 사람만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왜?'에 대한 궁금증에 해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조직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발휘되죠. 앞서 과학기술계의 리더십이 부족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기계 리더들도 국가 차원의 맥락에서 큰 고민을 해야 합니다."

◆ "왈가왈부할 때 아냐…혁신을 논할 때다"

최 전 이사장은 성공적인 기술혁신을 위한 과기계의 정책과 제도, 조직문화 등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벤치마킹 대상이 없다는 것이죠. 한국의 모델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사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어야 하는 일인데 못하고 지금까지 끌고 온 문제죠. 지금까지는 과기정책이 진흥과 규제로 양분되었지만, 이제는 과학기술계에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재정립해야 하고, 실제 조직과 정책에 있어서도 혁신을 가져와야 합니다.

사무관들의 할 일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 없는 일, 특히 쪼개고 나누는 일은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이건 조직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다운 R&D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원칙과 철학, 전략적 선택 등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원칙이란 과기계 기관들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일관된 운영 규칙을 말한다. 그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이러한 원칙을 갖고 있는 곳이 없다고 평가했다. 철학이란 과학기술계를 관통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몇몇 선진국에서 과기인들에게 스스로 개척하는 프론티어 정신을 강조하듯 우리도 우리만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 그는 전략적 선택에 대해서는 "미국 정도가 되어야 연구자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지 대부분의 나라들은 한정된 자원에 따라 전략적 선택을 한다"며 "우리나라 과기계는 전체모니터링을 해서 큰 그림을 그리고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과학부를 주축으로 과기계가 여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시점에서 과학기술계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21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고 가장 효과적인 정부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하지요. 특히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설정함으로써, 정부가 많은 일에 개입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 "50년 만에 선진국이 된 경험은 우리의 자산…한국형 발전모델 전수하고 돌아오겠다"

최 전 이사장은 '씨 없는 으름'을 개발해보겠다며 서울대 임학과를 들어간 전형적인 과학도였다. 그러나 졸업 후 진로가 막막했던 터라 취업을 위해 행정학을 같이 공부했고, KIST에 입사해 과학기술정책 관련 일을 하며 진정한 적성을 찾았다.

비자를 내보이며 활짝 웃는 최 전 이사장
비자를 내보이며 활짝 웃는 최 전 이사장
국가 및 사회, 기업의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보람됐으며, 또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년간 한국의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사에 대해 기록해온 그가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한국의 발전과정이 일반적인 국가발전론과 무엇이 달랐는지를 비교해서 한국형 발전모델을 이론적으로도 정립하는 것이다.

이번에 에티오피아 과기부 자문관으로 떠나는 목적에는 이도 포함돼 있다. 인프라 구축과 에너지 개발 등에 필요한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자문해주며 우리의 과학기술 발전 사례를 제대로 이전해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셈. '우선 2년'을 기약하고 떠나지만 에티오피아 측에서 장기 자문을 원하고 있어 더 오래 체류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빠른 경제성장 경험과 관련해 우리나라처럼 많은 인재풀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죠. 게다가 주변국에 위협을 가한 역사가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선의를 가진 국가'라는 이미지도 있어 더 진출이 유리합니다. 다만 개도국에 과학기술을 전수하는 시스템은 점차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KOICA 분류에 과학기술이 별도로 돼 있지도 않습니다. 고급인력들이 개도국으로 가서 각국의 경제사회 리더들과 어울리며 우리나라 위상도 높여야 하는데, 현재는 일반 자원봉사자들과 똑같은 프로그램과 여건으로 갑니다. 독일의 경우 자국의 전문가들이 해외에 자문을 떠날 때 대우가 확실하죠. 우리도 관련한 개별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그는 "개도국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최근 50년간의 발전사는 의문과 관심의 대상"이라며 "한국형 발전모델이 검증되면 우리나라 고경력과학자들이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수요가 아주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단 그부터가 에티오피아에서 자리 잡는대로 국내의 정책 전문가들을 분야별로 초청해 교류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 에티오피아 행에는 최 전 이사장의 부인도 동행한다.

현지 상황이 식당은 물론이고 식재료도 변변찮아 당장 먹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출국시 가져간 짐에는 압력밥솥까지 얹혀졌다. 에티오피아에서 최 교수는 과기정책 자문을, 부인은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다. 미래과학부 신설로 과기계가 한껏 고무된 와중에 현재 보다 미래를 보고 최빈국으로 떠나는 부부의 모습에 숙연함마저 들었다. 그가 '다음세대들의 몫'이라며 맡기고 떠난 미래과학부가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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