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 기관장·연구원·기업인등과 오찬간담회
연구·산업현장 목소리 전달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 시급"

# "연구소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창조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보호도 필요하다. 창업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국가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는 연구원의 생산성에 대한 정의 등이 과학기술기본법에 규정돼야 한다." # "출연연의 인재유출, 인재확보의 문제가 심각하다. 출연연의 연금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 "비정규직 문제는 그 분들에게 기회가 많다는 걸 인식시켜줘야 한다." # "연구원들이 아이디어를 창출하면 그걸 실제로 만들고 구현하는 것은 엔지니어다. 정부의 우수연구원정년연장제도에 기술원이 빠져 있다." # "예산제도, 관리제도, 비정규직 문제는 복합적인 것으로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출연연의 기능이 먼저 정립돼야 한다."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만난 대덕의 연구·산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다. 4일 대덕을 찾은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위원들은 대덕연구현장의 산학연 구성원 14명을 초청,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오찬 간담회에는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과출협 회장) ▲황주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이효숙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오세정 IBS(기초과학연구원) 원장 ▲이재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유진녕 LG화학기술원장 ▲이승완 서울프로폴리스 대표 ▲정규수 전 ADD(국방과학연구소) 박사 ▲신용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표준연 박사) ▲정초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 ▲이정호 한국기계연구원 박사 ▲김건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정용환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김철환 카이트재단 대표 ▲이석봉 대덕넷 대표 등 14명이 참석해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인수위에 가감없이 전달했다.

인수위에서는 장순흥 인수위원(KAIST 교수)을 비롯해 장진규(국과위 과학기술정책국장)·양종오(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송종국(STEPI 원장)·윤종록(연세대 교수)·곽노성(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전문위원, 박래혁 실무위원 등 7명이 참석했다.

연구현장 목소리를 청취한 장순흥 인수위원은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들을 잘 정리해 이곳에 계신 분들이 일잘 할 수 있는, 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며 "기관장들도 기관을 위해 자율성을 갖고 일하는 한편 국민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오찬 간담회 참석자들의 주요 발언 내용을 소개한다.(이하 발언순)

◆ "대덕 40년 경험 살리려면 출연연 미션 바로 세우고 자율성 줘야한다"

▲강대임 표준연 원장=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원들과 회의한 내용을 이미 인수위에 전달했다. 연구현장의 자율성을 강화하되 각 기관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출연연별로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일자리 창출'처럼 하나의 미션만 던져주면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 현안해결, 인프라 제공, 기초연구와 같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출연연이 해야할 역할을 4~5개 정도 제시하면 각 기관별로 역할에 맞는 것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단기평가가 아닌 2~3년 후에 하자. 성과가 안 나오면 그때 기관장 교체, 기관 개편 등의 대응을 하면 된다.

▲황주호 에너지연 원장=대덕단지가 만들어진 지 40년이 됐다. 초반에 투자가 많았지만 이후 실질적인 투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단지 전체에 대한 정주여건 개선 등이 상당부분 필요하다. 또 연구소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창조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현재 국가연구개발사업 하위 규정에 연구원 참여율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는 우리 환경에 맞는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창업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국가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는 연구원의 생산성에 대한 정의 등이 과학기술기본법에 규정돼야 한다. 또 역동적으로 연구원들이 뛸 수 있도록 연구원보호프로그램이 충분히 가동돼야 한다.

▲이효숙 지질자원연 원장=출연연의 인재유출, 인재확보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출연연의 연금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자원분야는 취업이 어려워 대학에 전공 교수도 적고 인재 양성이 잘 안 된다. 최근 자원분야 대학교수들의 퇴직이 몰리자 지질자원연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분들이 지난해에만 10명 정도 대학으로 옮겨갔다. 실제 대학으로 가도 연봉이 우리의 60~70%밖에 안됨에도 이직을 하려고 한다.

이직 이유 중 하나는 연금이다. 부연 설명하면 미국의 경우도 자원분야는 우수인력 확보가 어렵다. 미국 자원연구소의 경우 퇴직후 연구원들이 자긍심이 많기 때문에 무보수로 나와서 퇴직전과 같이 활동적인 연구를 하면서 공백을 메운다. 과연 우리나라는 연구자로서의 자긍심이 떨어진 상황에서 퇴직후 무보수로 나와서 일하라면 누가하겠나? 지금은 연구비보다 연금제도 증액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진녕 LG화학연구소장=이제는 국가적으로 베이직 사이언스를 제대로 해야 퍼스트 무버가 될 것이다. 국가연구소는 산업화를 드라이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상당히 오래전 미션이다. 지금은 민간연구소와 학교는 물론 출연연까지 모두가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연구소가 민간연구소와 경쟁구조를 갖는 경우도 있다. 비효율의 극대화라 할 수 있다.  국가연구소는 목적기초연구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일부는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학교와 기업도 각자의 역할에 맞는 연구를 해서 산학연 협력이 제대로 돼야 한다. 또 새 정부가 R&D를 중소기업 위주로 지원하겠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방향성에 동의한다. 다만 경우에 따라 일부 기술 난이도가 높거나 중소기업에 인프라가 없는 특정 상황에서는 대중소기업이 함께하며 시너지를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

◆ "대덕과 과학기술·산업현장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
 

▲간담회에 참석한 대덕현장 구성원들은 '현장의 문제는 결국 사람이 답'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2013 HelloDD.com

▲신용현 여성과기인회장(표준연 박사)=대덕의 활성화는 결국 사람 문제다. 20여 년 전에 환경이 더 열악했을 때는 사람들의 자부심과 의욕이 충만했지만 지금은 사명감, 자부심, 자신감이 떨어진 상황이다. 연구원 내부의 정신적 변화와 개혁을 이뤄야 하지만, 외부에서도 연구원, 과학자를 우대하는 풍토를 만들어줘야 한다.

또 대덕이 누구든지 와서 일하고 싶은 곳이 되려면 사람들의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되는 곳이어야 한다. 여기 오면 아이디어를 충분히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는데, 매년 성과평가를 받다보면 그렇게 하기 어렵다. 성과평가, 연구평가 시스템을 개선해 줘야 사람들이 모이고 창의적 연구가 가능할 것 같다. 우수 인력을 대덕에 유치하려면 여성과기인이 일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된다. 그러면 남자연구자들도 따라 온다. 연구단지들이 직장보육시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여성기관장들도 많이 나와 롤모델이 돼야 한다.

▲정초록 생명연 박사=2002년에 포닥 신분으로 생명연에 처음 와서 나름 운좋게 정규직이 되고 또 책임연구원이 됐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부산대 출신이다. 당시 지방대생이라는 피해의식이 강했던 선배들이 '너 학위받아서 뭐할래?'라고 묻곤 했다. 그래도 해외연수 등 계속 도전하니 기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책임연구원이 돼서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보면 그들이 희망을 놓는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그분들에게 기회가 많다는 걸 인식시켜 줬으면 좋겠다. 지금 있는 비정규직들이 차별을 안 받는다는 생각을 하도록 정규직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정호 기계연 박사=지난 3~4년 동안 영국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영국은 제조업이 무너진 상태에서 금융에 의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제조업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계공학의 세계적 대가인 옥스포드대 피터 교수는 현대, 삼성 등 한국의 제조업이 현재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출연연이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제조업의 발전은 학교와 기업이 할 수 없는 산학연의 고리를 출연연이 연결해줬기에 가능한 것 같다. 제조업의 끈을 놓지 않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출연연이 긴밀한 관계를 갖고, 출연연에서 개발된 기술들이 제조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

▲김건희 기초지원연 박사=기능사 2급으로 시작해 기능장, 석박사를 따고 지금은 과제책임자로 일하는 나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연구원과 기술원이 함께할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 연구원들이 아이디어를 창출하면 그걸 실제로 만들고 구현하는 것은 기술원(엔지니어)이다. 정부가 마련한 우수연구원 정년연장제도에 기술원이 빠져 있다. 연구원과 기술원이 함께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될 때 더 좋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우수 연구원 정년 보장, 비정규직 관련 문제는 인건비 예산이 관계된 것으로 안다. 정년연장에 기술원도 포함하고 예산으로 뒷받침해주길 기대한다.

▲정용환 원자력연 박사=대부분의 과기인들이 미래과학부 탄생에 기뻐하고 희망을 갖는 반면 원자력연은 크게 실망하고 사기가 떨어져 있다. '선수 –심판' 논리에 밀려 원자력연의 개발업무가 산업통상자원부로 가는 방안은 이해하기 어렵고 실망스럽다. 원자력은 미래 원자력을 비롯해 핵주기 등을 개발하는 복합기술로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 걸리는 기술들이 많다.

지난해 100억 원대의 기술이전에 성공한 핵연료피복관 기술은 97년 과제를 시작했다. 기술이전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기부 시절부터 긴 안목을 갖고 오랜 기간 연구를 했기 때문이다. 지경부 과제는 5년 안에 성과가 안 나오는 경우 과제 시작자체가 어렵다. 원자력이 산업통상자원부로 갔을 때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원자력은 종합과학기술분야로 미래창조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미래과학부에서 담당해야 한다. 더불어 원자력안전위는 국민적 관심, 원전의 독립성을 위해서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규수 전 ADD 박사=먼저 사람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기술은 건물도, 장비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축적된다. 사람은 진행돼 온 일을 되돌아보면 10년, 20년 전 것을 비교적 정확하게 재연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미래를 내다보기엔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출연연 기관들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비전과 예산안을 급조해야 했다. 이제 5년 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부터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서 시행착오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인력팀을 마련해야 한다. 또 많은 출연연을 보면 연구자들이 각종 보고서 작업, 평가작업으로 바빠서 연구할 틈이 없다. 블록예산을 중장기적으로 세우게 하고 책임은 5년 정도의 기간으로 진행, 의무와 책임을 함께 부여하면 좋겠다.

◆ 대덕 종사자·과기인도 이제 주인의식 가져…책무성 강화
 

▲정용환 원자력연 박사(사진 왼쪽 뒷모습)가 인수위원들에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 거버넌스와 관련한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2013 HelloDD.com

▲이승완 서울프로폴리스 대표=지난해 대덕 벤처기업이 1000개를 돌파했다. 이중 종사자 10명 이하의 소규모 기업이 전체의 87% 정도다. 40년 출연연의 역사와 벤처, 학교의 상생관계의 효과가 이제 나타나는 것 같다. 대덕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상당하다. 하지만 아직도 연구기관의 문턱은 높다. 대덕에서 1년에 1만 건 이상의 특허가 나오지만 기업에서 쓸 수 있는 것은 몇 안 된다. 연구를 위한 연구만이 아닌 기업과 함께할 수 있는 연구도 필요하다.

또 출연연은 기술이전을 한 뒤 애프터 서비스가 없다. 또 하나는 벤처기업 종사자를 위한 영유아 보육시설이 필요하다. 영세한 벤처는 출산, 육아휴직시 인력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부사원을 쓰기 힘들다. 또 주부사원의 입장에서도 월급이 적으니 아이를 보육시설에 따로 보내기도 힘든 실정이다. 기혼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들도 자기의 전문성을 살리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김철환 카이트재단 이사장=대덕은 공적 자산이 많지만 이것들이 가치산정이 가능한 가치로 전환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유는 연구소 성과들이 사업화되기 아직 적절치 않은 경우가 있으며 연구원들이 창업 생태계에 던져졌을 때 자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카이트재단은 이들 공적자산을 가치산정 가능하도록 중간에 링크업하고 싶다. 또 하나는 고경력 과학기술자와 공부를 많이 한 주부들이 모여 있는 곳이 대덕이다. 계층적 필요성을 잘 조합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될 수 있다. 고경력 과학자들은 머리는 있는데 근육이 없다. 반면 창업의 욕구와 열정이 강한 젊은이들은 기술사업화를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별로 없다. 고경력 인재의 경험을 젊은이들이 사업화 가능하도록 연계할 계획이다. 재미있는 지역이 만들어진다면 젊은이들이 이제 과학을 해보겠다는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이재구 특구진흥재단 이사장=새 정부의 공약에 예산제도, 관리제도, 비정규직 문제를 다 다루고 있다. 이 문제는 복합적인 것으로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 이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출연연의 기능을 정립이 먼저 진행돼야 한다. 이것이 잘 정립되면 비정규직, PBS 등도 자동적으로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출연연이 민간과 경쟁해서는 안된다. 응용개발 연구의 비중은 줄이고 기초연구, 공공연구, 국민행복 기술연구로 방향을 잘 잡고, 또 중소기업 지원으로 잘 간다면 PBS가 필요하겠나? 과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PBS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도 심화됐다. 앞으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이 되며 출연연의 기능이 정립, 국가 연구개발시스템이 재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오세정 IBS 원장=대덕에 예상되는 한 가지 큰 변화는 과기인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과 창조경제는 과학이 끌고 갈 것이란 사실이다. 주인의식을 갖는 것 만큼 당연히 책임도 당연히 따른다. 현재 표준연처럼 분명한 미션이 있는 기관도 있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그 미션을 위에서 줄 수는 없다. 가장 잘 아는 구성원들이 미션을 확실히 하면서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비정규직 문제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얼마전 한 출연연에서 6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해온 사람과 대화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근무하는 연구소에서 지난 10년간 비정규직이 정규직 된 사례가 없다고 했다. 자리가 나면 외국 유학파가 채용된다. 정규직들은 연구비 따러 다니고 실제 연구는 비정규직이 하지만 연구성과는 정규직이 받아간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대덕연구현장에 신바람 나는 연구가 어려울 것이다.
 

▲오찬간담회에 앞서 표준연 식당에 속속 도착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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