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억 에너지연 박사 내달 1일까지 전시회 '창(窓)' 개최
'에너지창' 출판기념회도…"연구·그림·글은 내 인생의 전부"

"미래 에너지의 트렌드는 꾸준한 에너지 수요 증가와 자원개발에 의존할 겁니다. 특히 자원개발의 환경은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안보가 강화될 것이고, 병행해 온실가스 배출규제를 위한 국제적 논의가 확대돼 범세계적인 감축 추세가 지속되겠죠.

이 중심에는 에너지 기술의 역할이 크게 위치하고 있으며, 이 기술혁신이 앞으로의 수요를 충족시켜 줄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 빈국이자 에너지 다소비국은 자원 경쟁에서 뒤쳐질 경우 후손의 어깨에 짐만 잠겨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에너지 우등국으로 꿋꿋이 일어서기 위해서는 기술 우월 국가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에너지 창'이 그 길의 문을 활짝 열어줄 겁니다." 개인 그림 전시회에서 에너지 기술 정책에 대한 신랄한 평이 이어졌다. 박수억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소개보다 '에너지의 미래는 기술이 결정짓는다'는 자신의 관점을 설명하기 바빴다.

에너지기술정책 분야에서 30여 년을 종사해 온 연륜이 느껴졌다. 은퇴 시기를 2년 남겨놓고 박 박사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자신의 인생이기도 한 연구원 생활을 마무리하며,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에너지 정책으로 연결되는 '박수억의 에너지창' 출판과 '창(窓)' 그림 전시회였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글로 옮긴 그의 열정은 차치하고라도, 전시된 그림의 수준은 아마추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업무하랴, 그림그리랴, 원고 쓰랴 바쁜 1년 이었지만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는 욕심 많은 그였다.

"제게는 그림보다 책을 내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림은 부차적인 부분입니다. 에너지창을 그림으로도 연결시켜 본 것이 이번의 전시회입니다. 그런 의미를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시회 메인 작품인 '창'. 풍력 에너지를 주제로 그렸다.
전시회 메인 작품인 '창'. 풍력 에너지를 주제로 그렸다.

'박수억의 에너지창'은 그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내놓았던 글들과 외부 언론기관에 칼럼으로 발표됐던 글들을 중심으로 엮어진 책이다.

박 박사는 "창의 역할은 '열고 나가보자'는 의미다. 창의 역할이 그렇듯 에너지 기술이 역시 국력을 신장시키는 창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그의 그림은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과학과 기술, 정책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들이 그림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다. 박 박사는 "딱딱해서 그만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림을 보고 '이게 무슨 의미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며 "최대한 독자 입장에서 에너지 기술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부드럽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에너지연의 대표 화가 박 박사는 사실 이번 전시회가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11년 에너지연 로비에서 '쁘띠 갤러리'를 연 적이 있다. 당시 그가 내건 한국화 작품은 4점이 전부였지만 입구를 들어서는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는 충분했다.

당시 그는 '낙, 춘하추동(樂, 春夏秋冬)'을 주제로 시골의 한적한 고택을 소재로 한 사계절의 변화를 화폭에 담아 호응을 받았다. 8년 째 매주 화요일마다 목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있다는 그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예술의 길을 가려했던 그의 결심을 무너뜨린 건 다름아닌 가족들이었다. 부모님은 그가 험난한 화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결사 반대했다. 어려웠던 시절 당시, 예술의 길은 멀고 험난했다. 그러나 당시 과학기술의 길은 넓고 평탄했다.
 

▲박수억 박사의 개인 전시회 내부 모습. ⓒ2013 HelloDD.com

"어렸을 때 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감각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그 길을 온전히 가기란 어렵죠. 그래도 후회는 안 합니다. 정책 연구도 국가 입장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연구거든요.

또 이렇게 취미 생활로 그림을 그리고 있고요." 일주일의 단 하루,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그에게 단비와 같다. 그의 전문 분야는 산수화다. 겸제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산도, 이정의 풍적,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좋아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자신만의 화풍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작품을 내놓았다. 박 박사는 "'신강산무진도'다. 강산무진도를 그린 이인문의 화풍을 좋아한다. 섬세하고 부드럽게 그렸다"며 "한국화에서 주로 쓰이는 화풍이 준법이다.

준법의 대가가 바로 정선 선생이다. 나는 점미법을 쓴다. 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어느 그림에서나 그의 낙관이 눈에 띄었다. 그의 호는 향곡(香谷)이다. '다반향초(茶半香初)'라는 말을 좋아하는 박 박사의 취향에 따라 지어진 호다.

그는 "다반향초라의 뜻은 차를 마신 지 반나절이 됐으나 그 향은 처음과 같다는 뜻으로, 늘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중시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며 "은퇴하고 나서도 '향곡이라는 사람이 그리는 그림은 어떻더라'라는 정체성을 만들고 싶다.

어떤 일에서든 나를 연마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박수억 박사의 '창(窓)' 전시회는 1월 26일부터 2월 1일까지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갤러리 키낮은하늘보기에서 볼 수 있다. 박 박사는 "한국화는 여백의 예술, 비움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여유의 예술이다. 그 공간에서 자신을 반추해볼 수 있다"며 "작품의 의미와 메세지를 잘 느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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