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중심 국정철학에 한껏 고무된 대덕연구단지
연일 자발적 움직임…"당선인 현장 찾아 기름 부어야"

"과학입국(科學入國)의 비전은 동작동이 아니라 대덕에 묻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덕 방문을 요구하는 연구현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 당선인의 통치철학이 '과학기술 중심 창조경제'인 만큼 취임식 전에 국정운영의 최전선을 책임질 과학자들을 찾아 협조를 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 당선인의 국정철학이 故 박정희 전대통령이 지향한 '과학입국'의 연장선인 만큼 미완성의 꿈이 깃든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과학중심 국정 실천의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번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로켓공학자인 채연석 박사는 "지난 24년 동안 대덕연구단지에 근무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용했던 때가 별로 기억나지 않는 점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수많은 국가 근대화 작업 중 아직도 확실하게 제자리를 못 잡은 것이 대덕연구단지가 아닌가 싶다"며 "이들이 신바람 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기적이 이곳으로부터 일어나서 새로운 일자리와 상품을 창출하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 박사는 이어 "대덕연구단지를 설립할 때 박정희 대통령의 구상과 꿈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라며 "고래도 칭찬을 하면 춤을 춘다고 한다. 자녀들이 가정의 미래 희망이듯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들을 국가의 희망으로 보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국가의 발전에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며 박 당선인 방문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한껏 고무된 과학기술계 현장…"박 당선인 방문해 자발성 더 큰 불씨 당겨야"

미래창조과학부 출범을 비롯 연일 계속되는 박 당선인의 과학기술 중시 행보에 현재 과학기술계는 어느 때보다도 한껏 고무된 상태다. 새 정부의 핵심기조인 창조경제는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운영을 통해 국가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정책'이다. 창조경제의 실현 여부는 박 당선인이 천명해온 바대로 과학기술정책의 성패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연구현장에서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과 관련한 공식·비공식 토론회와 간담회가 곳곳에서 수시로 열리고 있다. 과학기술인들은 한목소리로 막중한 책임감을 피력하는 동시에 그간의 수동적 모습을 자성하며 적극적인 대정부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구동성의 목소리들을 갈무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처럼 제대로 된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철학이 제대로 담겨 있는 것 같다. 과학기술계와 연구현장이 이렇게 결집이 잘 됐던 적이 없었다." "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왔다. 이 정부가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역할을 잘 해야 한다. 그동안 요구는 많이 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주체의식을 가지고 공동체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변화의 주체는 관료가 아니다. 현장 과학자가 주체가 돼야 한다. 60년대 경제개발계획도 중간에 수없이 바뀌었다. 그러나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에 제대로 갔다. 우리 모두가 주인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한 과기계 인사는 이같은 연구현장의 분위기를 놓고 "터지기 직전 유증기가 꽉 찬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박 당선인의 몸짓 하나, 말 한마디면 큰 불을 당길 수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작은 움직임 하나는 역사의 큰 궤도를 바꾼다.

특히 최고지도자의 관심은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을 위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이다. 미국이 스푸트니크 쇼크로 휘청거릴 당시 막 미국 대통령이 된 존 F.케네디는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올려놓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제시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10년 내에 달을 개척한다는 이른바 '뉴프론티어'를 목표로 국방·산업·교육 등 모든 국가정책을 달 착륙에 집중시켰다. 성장을 위한 혁신에 꼭 필요한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슴 뛸 만한' 비전을 함께 제시한 것이다.

◆"누구나 관심과 격려에 기분 좋아져…최고지도자의 현장방문은 사기를 하늘 끝까지 올린다"

과교흥국(科敎興國), 즉 과학과 교육으로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국가전략 하에 중국 지도부가 원로 과학자들에 대해 깍듯한 예를 표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덩샤오핑, 후진타오, 원자바오 총리 등은 춘절(설날)과 연말연시, 한여름에 원로 과학자들의 집을 찾아 문안하는 것을 최고지도부의 전통으로 삼았다. 사상도 당성도 보지 않고 과학자는 무조건 우대하는 정책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현재 대덕의 연구현장이 대체로 박 당선자를 지지하는 이유 역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영광을 재현해보고자 하는 공감대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관심을 표시하며 연구현장을 방문해 '잘한다'고 격려해주면 어려움 속에서도 결과가 착착 나오게 할 정도로 힘이 난다"면서 "대통령마다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은 많았지만 실제로 그런 느낌을 준 이는 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 전 대통령은 예산도 예산이지만 잦은 현장 방문으로 과학자들의 사기를 하늘 높이 끌어올렸다는 게 동시대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고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그의 책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틈나는 대로 연구현장을 찾아 관심을 표명한 것이 과학기술 발전의 중요 '모멘트'였다고 밝혔다.

'10년간 20회.' 박 전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공식방문한 횟수다. 비공식 방문도 셀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안방 드나들듯 불쑥 연구소를 찾아 연구원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건설현장 노동자들과도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과학기술 현장에 대한 애정을 수시로 표시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장 최근의 사례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일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제2과학기술입국'을 국정운영 슬로건 중 하나로 내세우고 끊임없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원로 과학자들과 달리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많지 않은 대덕의 젊은 과학자들은 과학현장에 대한 애정을 특유의 투박한 어조로 듬뿍 표현했던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가 많다.

취임 초나 임기 막바지에 한두 번 의례적으로 연구단지를 방문했던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은 수 차례 대덕을 찾았다. 특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방문했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지금도 연구원들 사이에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연구소에서 와이브로 기술을 직접 체험한 노 전 대통령은 한동안 말을 안해 연구원들을 의아하게 한 뒤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며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노고를 치하했다.

한 연구원은 "모두 사기가 껑충 뛰었다. 리더의 역할은 그런 것 같다"며 당시의 감동을 여전히 기억했다. 지도자의 행동 하나가 큰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변치 않는 진리다.

손 욱 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은 최근 한 기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세종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솔선수범했다. 왕으로부터 존중받은 기술자들은 몰입하여 위대한 기술 업적으로 보답했다. 사람들은 뜻과 말과 마음이 통하면 존중받는다고 생각한다. 한강의 기적을 얘기하며 그 주역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의 뒤를 이으려 할 것이고 평생을 걸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세종처럼 하면 된다. 최고지도자들이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자를 존중하면 모두가 따라온다. 말이 아니라 솔선수범의 실천이 중요하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28일 인수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다음달 4일에는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위원들이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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