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영역등 다양한 의견 분출…"입법과정서 재조정 불가피" 우려도
'과기중심 국정운영' 원칙에 철저한 기반…초대수장 철학 확고해야

그릇은 준비됐다. 하지만 어떤 내용이 어떤 모양새로 담길지 여전히 미지수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궁금증이 연일 증폭되고 있다. 첫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새정부 5년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미래 운명이 좌우되는 만큼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오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특히 벌써부터 미래과학부의 '단명'을 걱정하고 있다. 기초연구부터 일자리 창출까지 차기정부의 주요정책을 모두 관할하는 '공룡-실세-핵심' 부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자칫 대내외의 견제와 질시로 다시 공중분해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다. 그렇게 되면 중장기 계획이 요구되는 과학기술 발전은 5년후 다시 원점에서 새판짜기를 하게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무엇보다 초대 수장을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미래과학부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게 과학기술계의 중론이다. '창조경제'와 '과학기술 르네상스'의 균형을 잡고 짧게는 5년, 길게는 10~20년의 과학기술로드맵을 건조해 출항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미래과학부 첫 선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

미래과학부는 과학기술부터 정보통신까지 많은 분야를 관장할 거대부처다. 초기에 예상되는 입법부-부처간 힘겨루기에서 잡음을 최소화하고 유연하게 미래과학부를 운영할 수 있는 정치력의 소유자를 찾는 것 또한 관건이다. 과기계는 전반적으로 '과학기술 이해도'뿐만 아니라 '시대인식' 또한 적임자의 조건이 되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강대임 표준연 원장은 "과학과 경제라는 두 가지 중심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분이 긴 호흡의 로드맵을 그리다보면 그 가운데서 스핀오프되는 것들을 통해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경수 국제핵융합평의회 의장은 "과거 힘있는 부처가 중심을 못 잡고 결국 해체된 예가 많다"며 "이를 타산지석 삼으면 첫 리더가 누가 되야 할지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출연연 관계자 역시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미래과학부가 베풀고 막아주는 맏형처럼 품격있는 부처가 되야 한다"며 "과학계 내부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두루 살필 수 있는 넓은 시야의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산업계 출신 초대장관도 거론되고 있다. 한 과학기술계 원로는 이를 두고 "거대 행정부처를 이끄는 것은 기업 경영과 다른 차원이다. 효율과 경제성의 원리로 잘되는 것을 키우고 부족한 것을 쳐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가를 통치하자면 모든 것을 끌어안고 포용해야 한다"며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단기적으로는 정부조직개편 입법과정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기형적으로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업무가 어떻게 조정되느냐에 따라 예산과 인력이 크게 좌우되는 부처들 입장에서는 사활을 걸고 '밥그릇 챙기기'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일부 부처는 국회에서 재조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물론 과거 노무현, 김대중 정부에서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부처의 로비나 업계의 입김에 따라 미래창조과학부도 일부 기능이나 업무가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이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미래창조과학부가 당초 박근혜 당선인의 철학대로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운영'을 펼치는 핵심사령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원칙에 철저하게 입각한 부처 업무조정과 재편이 필요하다고 과학기술계는 입을 모은다.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역시 부처가 만들어진 이러한 배경 철학과 원칙을 일관되게 지킬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름은 가치관과 목적의식을 이끄는 나침반이다. 언론사별로 미래부, 미래과학부, 심지어는 미창부로도 마구 혼용되고 있는 부처 명칭 역시 하루빨리 교통정리가 필요한 사안이다. 한 출연연 기관장은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다 보니 부처의 핵심가치, 핵심업무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린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창조과학이라는 단어가 논란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부처의 약어, 약칭 사용이 더 혼란스러운 것 같다"며 "무엇보다 과학을 중심으로 운영될 부처인 만큼 지금 주로 쓰이는 미래부, 미창부처럼 과학과 무관한 이름 말고 과학부 또는 미래과학부 등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약어 명칭 역시 국제무대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 현 정부의 무리한 '콩글리시' 작명으로 외신들이 기획재정부(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는 국방부, 지식경제부(Minstry of Knowledge Economy)는 교육부로 혼동했던 전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래과학부가 ICT를 포괄하면서 현 정부 들어 해체됐던 부처별 ICT 기능 흡수에도 과학기술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 연구원은 "장기적인 과학기술 분야와 단기적인 ICT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중장기 전략으로 이를 풀어간다면 기대 이상의 융복합 결과물이 생길 수 있다"며 기술융합의 시너지를 기대했다. ETRI의 한 박사는 "ICT 관련기술을 미래창조과학부가 담당하는 게 옳지만 창업이나 일자리 창출 같은 단기성과에 치중하지 않고 건강한 창업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가 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15일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 발표 내용에는 '미래 인재 양성'이 언급됐다. 이는 곧 대학 R&D 지원 기능과 고급 이공계 인력양성에 관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반면 산업경제와 연구개발을 지탱하는 기술인력 저변 활성화에 관한 언급은 빠져 이의 시급한 보완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 기술인은 "과학과 기술이 분명 성격이 다른데 정부조직과 정책에서 기술을 찾기 어렵다"며 "인수위에 기술정책을 맡을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한 설문조사에서는 고교생 중에 기술자를 희망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 만큼 기술과 기술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며 "정부관계자들 누구나 예외없이 기술이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정작 기술자를 어떻게 길러야 한다는 소리는 쏙 빠져 있다"고 비판한 뒤 "나라발전에 정말 기술이 필요하다면 미래창조과학부에 반드시 기술전담조직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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