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과기계·산업현장 목소리
첫 이공계 출신 대통령 탄생 환영 "약속한 정책 실천을"

매서운 한파도 통합과 안정을 바라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과학기술계는 '사상 첫 이공계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봤다.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역사적인 선거가 19일 전국 1만3542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역대 선거일 중 가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고공행진을 거듭한 투표율은 저녁 6시 최종투표율 75.8%로 마감됐다. 이는 지난 17대 대선은 물론 김대중-이회창, 노무현-이회창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승부를 펼친 15대·16대 대선보다 높은 수치로 2000년 이후 치러진 역대 선거 중 최고 기록이다.

1971년 박정희-김대중의 제7대 대선 이후 41년만의 실질적인 보수-진보 양자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후보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내년 2월 25일 취임식을 마친 뒤 같은 날 자정부터 5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대덕넷은 선거가 치러진 19일을 전후해 향후 국정을 책임질 새 대통령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희망과 염원을 모았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특히 미래창조과학부 신설·R&D 예산증액·자율적 예산권 부여·과기인 처우개선 등을 약속하며 "과학기술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두고 과학기술계의 무너진 자존심을 되찾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선거 전부터 이미 과학기술인들의 큰 기대를 받아왔다.

◆"500만 과학기술인들의 기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약속 지켜달라"

과학기술계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전부터 꾸준히 보여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유세 기간 중 발표된 과기계 관련 공약 역시 아직 세부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아 아쉽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내용은 모두 담고 있다"며 입을 모아 반가워했다. 대덕연구단지의 원로 과학자인 장인순 박사(전 대덕클럽 회장)는 무엇보다 박 대통령 당선자의 트레이드 마크인 '약속'을 강조했다.

장 박사는 "과학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며 "지금까지 말해온 공약이 헛된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옥시크린 박사'로 불리는 이정민 대전테크노파크 센터장. 그 역시 30년 넘게 연구원으로 대덕연구단지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이 센터장은 새 대통령에 대한 바람을 묻는 질문에 "젊은 사람들이 이공계로 모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결국 사람의 머리뿐"이라며 "젊은 인재들이 이공계를 선택해 팔자는 못 고쳐도 최소한 상대적 박탈감은 느끼지 않을 만한 유인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장)은 "대덕특구를 대표해 대통령 당선을 축하드린다"며 "특히 후보 시절부터 보여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지금 우리 과학기술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물질적 보상보다 존중받고 있다는 확신"이라며 "새 정부에서는 과학자들에게 책임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권한이 주어져 연구자들이 더 큰 사명감으로 연구에 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정 원장은 또 "과기인들이 더 많은 자율성을 누리고 행복지수가 올라가면 그 열매는 고스란히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돌아갈 것"이라며 "새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인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더 치열하게 노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전에서 유세하고 있는 박근혜 당선자.
<사진=박근혜 캠프 제공> 
ⓒ2012 HelloDD.com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국가의 미래를 두 어깨에 걸머진 500만 과학기술인들의 기대와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진정한 선진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파급효과가 큰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며 과학기술인 처우개선과 이공계대학 지원 등의 공약을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펼쳐달라고 요청했다.

현장 연구자들 역시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새 대통령 등장에 한층 고무된 분위기다. 지난 정부에서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과학기술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은 만큼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오영제 KIST 박사는 최근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 신임회장으로 선출됐다. 오 박사는 "출연연이 신나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는 먼저 과학기술계 콘트롤 타워부터 바로 서야 한다"며 "교과부와 지경부로 나뉜 정책기능을 한 곳으로 이관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성우 공공연구노조 위원장 역시 "지난 정부에서 거버넌스를 비롯해 제도적 부분까지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하다보니 정상화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MB정권의 과학기술 정책 실패만 답습하지 않아도 현장의 호응은 좋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박사와 이 위원장은 특히 '정년환원' 공약이 과학기술인 사기진작과 함께 이공계 기피 현상 완화에도 중요한 만큼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 속에 '유리천장'의 현실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여성과학기술인들에게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연구단지 여성과학기술인연합을 이끌고 있는 주성진 ADD 박사는 "여성과기인들이 바라는 건 특별우대가 아니다"라며 "성별을 떠나 능력에 맞는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게 여성과학자들이 바라는 전부"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과거 정권들이 채택했던 여성할당제와 채용목표제가 유명무실해진 현실을 지적하며 "여성과기인에 대한 인식변화와 정당한 대우는 의사결정 과정에서부터 참여가 보장돼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여성과학자들이 바라는 건 우대가 아니라 정당한 대우"

김지현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과학도들의 일자리 부족'을 호소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과학기술 공약 중 '좋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며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지 않고 이공계에서 자존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강신영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상임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균형잡힌 결단력'과 '추진력'을 주문했다. 그는 "현재 세계정세는 경제침체 속에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개편되는 시점"이라며 "이런 긴박한 흐름을 통찰해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생존과 번영전략을 진두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구체적 제언도 있었다. 이장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정책연구소장은 "성장보다는 발전을 추구하고 복지를 구현하는 과학기술정책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소장은 "과학기술이 국정운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정책틀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추격형(Catch-up)의 과학기술 패러다임을 창조형(Post catch up)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실천방안으로 "연구개발 아이디어에서 경제사회 파급에 이르는 과학기술 전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최적 기술혁신 생태계 구축"과 "공공 연구개발 관리시스템의 변화"를 꼽았다. 또 '증거기반의 과학적인 과기정책'을 들었다. 그는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구매력을 기준으로 보면 미국, 일본, 중국의 투자규모에 비해 크게 적은 편"이라며 "게다가 이미 많은 연구개발 축적량을 갖춘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수집과 분석, 이에 상응하는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 빅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규모 정부 투자프로젝트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며 '국가과학기술혁신전략원' 같은 기구의 신설을 주장했다.

◆말잔치에 그쳤던 대-중소기업 상생 "강력한 의지로 실제 움직이게 해달라"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의 악재 속에 고군분투를 거듭하고 있는 대덕벤처들도 "다시 한번 잘살아보세"를 강조하고 있는 새 대통령 당선자의 추진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익우 대전상장법인협의회장(젬벡스앤카엘 대표)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과학기술과 중소기업의 힘이 중요하다"며 "유세과정에서 이미 과학기술과 중소기업 육성에 큰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확인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닌 의지"라며 "기업에서 CEO의 의지가 쏠리는 곳에 전체조직의 관심과 역량이 집중되는 것처럼 새 대통령이 먼저 중소기업 육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는 행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 박근혜 당선자가 국민들의 요구와 변화의 열망을 어떻게 수용하고 정 책으로 반영할지가 관건이다. 사진은 시흥삼미시장에서 유세하고 있는 박 후보.<사진=박근혜 캠프 제공>  ⓒ2012 HelloDD.com

유진산 파멥신 대표는 항암항체 신약개발을 하고 있다. 유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현실성 있는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주문했다. 그는 "연구비 조달과 판로개척, 기술이전은 소규모 기업에서 하기 어렵다"며 "기업들의 필요를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펴달라"고 밝혔다.

바이오벤처회사를 운영하는 이은정 바이오비엘 대표는 일상적인 자금부족을 호소했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은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자금 사정으로 제품화에 난관을 겪는다"며 "현행 정부지원제도의 도움을 받고자 해도 번번히 턱없이 높은 평가항목의 벽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뿌리산업이라 불리는 제조업계의 희망사항 역시 벤처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태희 삼진정밀 대표는 "대기업이 우선시되는 분위기 속에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 공약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라며 상생발전에 대한 보다 공정한 지원을 요청했다. 정 대표는 또 "현재 우리나라 고용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떠맡고 있는 만큼 집권 초기의 관심을 임기 끝까지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철강기업을 운영하는 김재문 케이에스텍 대표는 공항버스에서 대덕넷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수출상담차 러시아로 출장을 떠났다가 선거일에 맞춰 귀국했다. 김 대표는 먼저 "지난 2개월 새 환율이 100원이나 올라 충격이 크다"며 환율을 비롯한 경제정책 전반을 예측가능한 구조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그는 또 "중소기업 관련 공약이 충실해보이지만 이것은 '언제 술 한잔 하자'는 말처럼 덧없는 약속이 될 수 있다"며 "기업인들이 정말 실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정책변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벤처인들은 청년층의 '안정지향'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새 대통령 당선자가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

각각 20대와 30대인 윤주현 위클레이 대표와 김수헌 하기소닉 과장은 "젊은이들이 대기업 아니면 공무원을 꿈꿀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한 뒤 "안정도 중요하지만 도전적인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토대를 가꿔줄 것"을 강조했다. 김 과장은 "창업환경이 우수한 대덕에서조차 창업이 안 일어난다"며 "이전 정부에서도 창업지원을 크게 확대했지만 자금에 집중하다보니 장려책보다도 마약처럼 변질된 측면이 있다"며 "단순히 돈만 풀 게 아니라 자생적인 창업생태계 조성을 고민해달라"고 밝혔다.

윤 대표는 "기술집약적 벤처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젊은 인재 확보"라며 "새 정부에서는 우수한 청년들이 과학기술 산업에 몰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대덕넷 공동취재팀> steady@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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