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오세정 기초과학원 원장-유진녕 LG화학기술연 원장
국내 기초·응용과학 분야 대표 "다시 태어나도 이공계 선택"

 
최근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 1년을 맞았다. 대선과 맞물려 미래 과학기술 정책,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위상과 역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초과학을 선도하는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과 응용과학을 대표하는 유진녕 LG화학기술연구원장이 만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두 원장의 대담을 통해 국내 과학기술계의 현재와 미래, 기초과학 출연연과 산업기술연구소와의 역할분담 및 협력 방안, 이공계 기피현상의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물리를 전공한 남자와 화학공학을 전공한 한 남자가 정상에서 만났다. 그것도 기초과학을 대표하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수장으로, 응용과학을 대표하는 기업 연구소의 대표로 말이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과 유진녕 LG화학기술연구원장이 한 회의실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오 원장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하다 1년 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을 맡은 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핵심 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의 초대 원장직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경기고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Stanford University)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자연대학장 등을 지낸 국내 대표적 물리학자다.

특히 오 원장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전문위원회 위원장과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기초과학연구원 출범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해 왔다. 또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 등 과학기술계 주요 요직을 맡으며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그간의 학문적 업적과 함께 서울대 학장, 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며 쌓은 행정 능력이 기초과학연구원에서도 발휘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진녕 원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리하이대학교(Lehigh University) 대학원에서 고분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LG화학 고분자연구소에 들어가 연구원 신소재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기술연구원장직을 8년째 수행해 오고 있다. 유 원장은 안전성 강화 분리막 등 이차전지 소재를 세계 최초로 개발, 자동차용 리튬(lithium)이온 폴리머 전지 양산을 이끈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세계 최고 수준의 메탈로센(metallocene) 촉매 기술 개발에도 성공, 석유화학분야의 새로운 성장사업을 창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밖에 편광안경 방식의 3D TV에 필요한 편광필름(FPR)을 비롯, 다양한 원천기술 연구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 걸어온 길도, 추구하는 방향도 다른 그들 사이에 있을 법한 어색함은 없었다.

특구 내 자리한 기관의 대표로 이미 많은 만남을 가져왔던 그들은 편안하고 솔직한 대화로 분위기를 주도해나갔다. 명확한 방향이 있는 두 가지의 과학. 기초과학이란 공학이나 응용과학의 밑바탕이 되는 순수과학으로 자연과학의 기초 원리와 이론에 대한 학문을 뜻한다. 통상적인 의미로 기초과학은 영리 활동을 목적에 두지 않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나오는 학문의 진리 탐구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학분 분야라는 뜻에서 순수과학이라고도 한다.

응용과학은 하나 이상의 자연과학 분야로부터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의 응용이다. 공학 분야가 응용 과학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응용과학은 기술 개발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상태다. 오 원장과 유 원장은 명확한 미션이 있는 연구원의 수장 입장에서 과학기술계의 어제와 오늘부터 이공계의 미래까지 전반적인 과학기술계 현안을 두루 짚으며 대화를 진행했다.

◆ 산·학·연 각각 가진 고유 기능이 제대로 정착돼야 시너지 낼 수 있다

 

▲유진녕 원장은 각각 기관들의 고유 기능
정착이 무엇 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12 HelloDD.com
김형석(이하 김) : 기초연구 대표 기관과 응용과학을 대표하는 산업기관의 수장이 만나셨는데, 서로 보기에는 어떠신가요? 각 기관이 제대로 방향을 갖춰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유진녕(이하 유) :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설립 취지를 제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지난 10년 동안 출연연이 응용 연구 쪽으로 치우쳐 오지 않았나 생각을 했습니다. 산·학·연이 각자가 가진 고유 기능을 잘 나타내면서 시너지를 내야죠.

국가에서 늘 제동을 걸다보니 전부 응용 연구에 치우쳐져 있는 겁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반영이 되진 않고 있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기초과학연구원의 설립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곳이 생긴 것 같아요. 기초과학원이 출연연에 자극제가 돼서 출연연이 원래의 기능을 찾아가는 데 큰 기폭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출연연 스스로의 위상이나 위치를 돌이켜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매우 환영하고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세정(이하 오) : 우리나라가 그동안 발전해왔다고 하지만 사실 응용 기술 위주로 산업화가 이뤄져 왔죠. 그런데 쫓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해왔는데, 이제 앞서가는 게 문제거든요. 앞서가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합니다. 앞으로 치고 나가려면 뒤떨어져 있었던 기초과학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기반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연연의 지원 시스템도 변화돼야 합니다. 정부의 과학기술연구 지원이 쫓아가는 형식에만 익숙해지다 보니까 단기간에 성과를 요구하고 평가해요. 과제들도 정부가 내주고요. 너무 급하게 몰지 말아야죠. 물론 산업체는 당연히 응용 연구를 해야 하죠. 하지만 국가는 기본에 충실한 과학 연구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데, 물론 한번에 바꾸기는 어렵죠. 우리가 먼저 성과를 보이면 다른 출연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업적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연구지원시스템의 선진화가 구축돼야 합니다. 쫓아가던 입장에서 탈피해 선도하는 과학 국가로서의 틀을 마련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션 중의 하나입니다.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유 : 기업 연구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기업이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규모가 큰 기업들은 꽤 예전부터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 목적 기초 연구를 통한 발견을 통해 선도자가 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돼야 하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거든요. 기업에서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국가적인 경쟁력이 나오기가 제한적이죠.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가 산업적으로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게 업적이 나와 응용되면 그 효과는 굉장히 클 수밖에 없거든요. 소위 말해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앞서나가는 연구는 출연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 : 앞으로 기초과학원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 같으신데요. 부담이 많이 되시겠어요. 오 원장님.

오 : (웃음)그렇죠. 부담이 많이 됩니다. 사실 기초과학원 연구단장 평가할 때 흔히 기준이 되는 논문이나 특허 개수는 제외했었어요. 이들이 얼마나 영향력있는 성과를 냈는가만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대상자를 평가하는 전문 평가단에게 논문이나 특허에 대한 자료를 줬더니 오히려 헷갈리니 주지 말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논문의 질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숫자가 들어오니 더 혼란스럽다는 이야기였어요. 그 장면을 보고 생각했죠.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구나 하고요. 전문가들은 다 알아요. 논문 아무리 많이 써도 엉터리인지 어떤건지 다 압니다.

그렇게 평가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저희 생각이에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까요. 매번 객관적, 정량적인 요소로만 따지려고 하죠. 그래서 교수들도 논문만 많이 쓰려고 하고, 개수를 늘리려고 하니까 굵직한 성과는 못내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돼요.

◆ 표면적인 교류만 활성화, 개방적 혁신 정착으로 진짜 교류해야
 

▲오세정 원장은 기초과학원이 국가의 씽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2012 HelloDD.com

김 : 대기업의 평가시스템이 출연연에 도입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

유 : 기준은 달라야겠죠. 기업과 출연연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죠. 자기만의 독자적인 분야를 구축해나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분야에서의 통찰력도 생길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연구하시는 분들끼리 지식이나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우리가 소위 이야기하는 개방적 혁신,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하는데요.

연구자들끼리 창구를 만들어서 여러 시너지를 만들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분야별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출연연에 너무 많은데, 공유가 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융합의 시대인만큼 지식을 공유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세계적으로 볼 때도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곳은 별로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남이 하지 않은 것을 말이죠.

김 : 기초과학원에 석학들이 많이 모이고 있는데, 그런 분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 : 기초과학원의 연구는 공동연구, 즉 융합연구입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벤치마킹했어요. 물론 막스플랑크처럼 매일같이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매일 같이 하는 식까지는 바랄 순 없겠지만 융합연구를 위해 석학들이 머리를 맞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각자의 연구를 인정하지만, 그룹 리더들을 포진시키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같이 하게 될 예정입니다.

유 : 이미 고려를 해서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김 : 많이들 이야기하는 부분이죠. 기초과학원이 아니더라도 출연연과 기업 연구소가 상생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요. 물론 미션도 다르고 위상도 다르지만 그런 부분을 바라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그런 면이죠. 다 밀집돼 있긴 한데, 표면적인 교류만 있지 실질적인 협력은 없으니까요.

유 : 제가 한 번 놀랐던 적이 있는데요. 어떤 출연연에서 하는 기술 소개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딱 보니 우리 쪽과 연관성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쪽에 우리와의 기술 교류에 대해 말을 했더니 안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군요. 가르쳐 줄 수 없다고요. 저희를 경쟁 상대로 여긴거죠. 여기서 벌써 문제가 나타나죠.

서로 협력이 아니라 경쟁의 상대로 돼 있다는 건 뭔가 역할이 잘못돼 있다는 거죠. 물론 모든 출연연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초래했을 정도로 산·학·연이 본래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입니다. 기업이 여유가 많아서 출연연이 해야 할 목적 기초 연구를 한다는 건 잘못된 사실입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오히려 출연연이 기술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팔아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안돼 있어요. 비슷한 것을 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건 무언가 크게 잘못돼도 잘못됐다는 거죠.

김 : 출연연의 성과도 경제성을 많이 고려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연구 업적이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내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됐으니까요.

오 : 놀라운 이야기인데요. 사실 그동안 어떻게 생각했냐면, 학교와 기업이 연계가 잘 안돼는 이유가 학교에서 기업에 제공할 게 없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김 : 겸손한 말씀아닌가요. 유 : 기업 잘못도 있죠. 요구를 무식하게 하니까요. 학교에 무엇을 개발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잘못된겁니다. 교수들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학교에는 인프라가 없죠. 개발하려고 하면 인력도 많아야 하고, 필요한 파일롯도 갖춰져 있어야 하고 해야 하는데 없잖아요. 문제는 기업에서 이상한 걸 요구하는 것과, 또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교수들이 있다는 거에요. 이상하죠.

오 : 기초과학을 하다보니 기업과 무슨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은 기업도 이제 받아들일 자세가 됐다는 거죠. 같이 협업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 같아요.

유 : 무식한 요구가 아닌 목표가 분명한 요구를 해야합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요구가 명확해야 해요. 그래야 서로가 시너지를 낼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진행돼 왔어야 합니다.

오 : 서로 수준이 올라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필요성을 느끼니까 이렇게 기초연이 세워진 것처럼요. 공감한거죠.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김 : 그래도 아직 표면상으로 나타나는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유 : 지금은 별로 많지 않다고 봅니다. 기초과학원 17개 연구단이 정해졌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요. 한 개 연구단 정도는 어느 정도 협력이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을 하고 있긴 한데, 기초과학원에 그런 것을 바래서는 안돼죠. 기업에 즉시 응용될 수 있는 연구는 기초과학원에서 하면 안돼니까요. 기초과학원에서는 기초과학을 하고 그 와중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사실이 상업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할 때 협력을 하면 됩니다.

오 : 학계에서 위상이 있는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있는 게 자산이죠. 모르는 게 있으면 와서 물어볼 수 있고요. 대가에게 물어보면 훨씬 더 쉽게 풀리잖아요. 기술의 동향이나 방향, 사회의 트렌드를 아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초과학원이 국가의 씽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죠.

◆ 기초과학원=노벨상? 그것보다 선도적인 연구환경 구축이 먼저

 

▲오 원장은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 무엇보다
연구환경이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2 HelloDD.com
김 : 기초과학원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노벨상 이야기입니다. 진부하지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유 : 한 분야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면 당연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환경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기초과학원에서 노벨상 수상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조건만 갖춰진다면 어디에서든지 노벨상 수상자는 나올 수 있어요. 산업 쪽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금방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한 가지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오 : 우리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을 뽑아 그 사람이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가 기초과학원의 기본적인 철학입니다. 실패해도 좋다라는 게 기본이죠. 남이 안하는 것을 개척해야 하니까요.

노벨상은 분야를 개척하는 자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쫓아가는 것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실패를 할 수 없었죠. 목표도 정해져 있고요.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 시스템이 잘 구축되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도 마찬가지고요. 대학의 경우 연구 분야가 훨씬 다양하니까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김 : 연구 환경을 선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오 : 그게 훨씬 중요한 일이죠. 유 : 환경을 리드해 나간다는 것이죠. 국가적으로 정착이 돼야 합니다.

◆ 출연연 기관장 임기 3년, 그만둘 3년의 시간은 더 빨리 간다

김 : 다른 기업 연구원들도 원장직을 장기간 계속 하나요?

유 : 기업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대체로 보면 제품의 주기가 짧으면 재임 기간도 짧고, 길면 길게 하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8년째 원장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회사의 경영진이 어떻게 평가하고, 구성원들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거죠.

김 : 출연연은 보통 3년입니다. 너무 짧지 않나요?

유 : 어떻게 보면 가장 진정한 의미의 혁신은 문화를 변화시키는 거에요. 제가 볼 때 3년은 너무나 짧아요. 더군다나 3년도 그만둘 3년이라는 것은 말도 못할 정도로 단기간입니다. 제대로 뭔가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죠. 연임이 언제든지 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고, 또 실제로 연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합니다. 현재 출연연에서 연임되신 분들은 거의 손에 꼽죠.

오 : 진짜 큰 문제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주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또 워낙에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요. 기초과학원 원장 임기는 5년이고 연임할 수 있죠. 길게 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 정권이 바뀌는 데서 오는 불연속성도 과기계 큰 문제 중 하나인데요.

오 : 제일 고민되는 것은 3년 뒤 평가할 때인데요. '기초과학원, 뭐 했나'라고 물어보면 많이 당황할 것 같아요. 이런 게 힘든거죠. 정치권에서 정작 한 게 뭐냐고 나오면 난감해져요. 예산 문제는 오히려 맞춰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 설립된 목적을 건드리고 나오면 상실감이 커지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인 급한 면이 나타날까봐 걱정입니다.

성과가 눈에 안 보여 '엉망이다'라고 하면 우리나라 연구소 지배구조가 무너지게 돼요. 그래서 연구단장에게 전권을 준다고는 했지만, 돈을 낭비하면 안된다고 누누히 강조는 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 지원을 해주는데, 밖에서 보기에 납득할 만하게 연구비를 사용해야 한다고요.

◆ 부가가치 창출하는 이공계인들, 결론보다 과정을 중요시해야
 

▲유 원장은 이공계 사람들을 사회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로 정의했다. ⓒ2012 HelloDD.com

김 : 화제를 돌려서요. 대학 입학을 다시 한다고 하면 어느 분야를 가고 싶으신가요?

오 : 물리학을 공부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물을 너무 싫어했어요. 피 보는 걸 싫어해서요. 대학 들어가자마자 완전히 포기했죠. 그런데 지금은 생물을 안 한 게 후회가 돼요. 생물이 중요한 분야가 됐잖아요. 물론 물리는 방법론 상에서 중요한 학문이고, 탐구하는 부분에서는 학문의 근간이 되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양한 분야를 접하지 못했던 게 아쉬운 부분같아요. 이제는 겁이 나서 못하겠어요. 못 따라갈까봐.

유 :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석사 박사 학위때는 고분자재료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후회는 물론 없어요. 화공에 별로 재미를 못 느끼다가 고분자재료를 전공하면서 흥미를 느꼈거든요. 하고나니 재료 과학을 처음부터 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산업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김 : 오 원장님은 학문적인 부분을, 유 원장님은 산업적인 부분을 신경쓰시는 것 보니 지금의 자리에 괜히 올라오신 분들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 : 오 원장님은 천재 기질이 있으시죠. 저는 평범합니다. 김 : 이공계 대학생들, 젊은 연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오 :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너무 시험보는 데만 익숙해져 있어서 주어진 문제를 푸는 건 잘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연구하다 보면 뭘 할까 생각하는 시간보다 제안서 쓰기 바쁜 것처럼요. 무엇을 할까가 중요한데, 어릴 때 습관이 되지 않으면 사회에서는 해야하는 것만 신경쓸 수밖에 없거든요. 문제 자체를 발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답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요. 그래야만 새로워질 수 있어요. 제대로 된 연구는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김 : 제도적으로 변화가 온다면 이공계 위기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오 : 이공계 기피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어요. 얼마 전 교토에서 진행된 회의에 참석했을 때 리켄 연구소장이 관련해 이야기를 했는데요. 자기가 공부할 때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과학이 필요하다는 국가의 부름과 함께 사명의식이 있었다는 거에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KIST 처음 세웠을 때 외국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애국심만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왔잖아요. KIST에 가면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구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져 있죠. 돈이 드는 게 아니에요. 과학을 해서 제대로 공부했으면 먹고 사는데는 큰 지장이 없어요. 그저 인정이에요. 그건 사회적으로 돈이 드는 게 아니잖아요.

유 : 이공계 사람들은 사회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죠. 사실 제 자식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면 자부심으로 살아야한다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직원들에게 자부심 가지고 살라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공계 기피라는 것 간단하죠. 돈 많이 못 벌고, 정년까지 일 못하고, 사회적 대우를 못받으니까 생기는 거죠. 사회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현재 저희 연구원에서는 그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연구위원 제도도 만들고, 임원급 처우도 해주는 등 이런 작은 부분들이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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