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태광 신임원장 '문제해결' 의지 결연
'따뜻한 카리스마' 강조…"3년 임기동안 세계적 연구그룹 3개 키울터"

"위기 상황이라고 하면 위기 상황이겠죠. 그러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그렇게 약한 단체 아닙니다. 강한 조직입니다. 3개월 안에 산재해있는 문제를 정리하고, 내년부터는 생명연의 발전을 위해 뛰어다닐 생각입니다.

진심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신임원장이 지난 달 31일 취임식을 갖고 3년 임기의 원장 집무에 들어갔다. 그의 현재 목표는 위기의 연구원을 정상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잇단 외풍과 전임 수장들의 중도하차와 비보, 이번 원장 선임과정에서의 적지 않은 진통이 생명연을 위기로 몰아갔지만 그는 끄떡없다고 단언했다.

오 원장을 만나기 위해 생명연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오 원장의 취임인사가 담긴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축하 문구로 장식되어 있는 다른 기관장의 취임 플래카드와는 사뭇 달랐다. "당당하고 자신있는 KRIBB(한국생명공학연구원)를 만듭시다!" 원장 취임을 축하받기 이전에 어수선한 연구원 분위기를 추스르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구원투수'로서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지금 생명연은 기관 설립 이후 가장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다. 오 원장은 대덕넷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전히 불안요인이 잠재돼 있긴 하지만 생명연은 약점보다는 강점이 많은 조직"이라며 "연구원들의 진정성을 믿기에 지금의 위기를 타파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군림하고 지시하는 원장이 아닌 동반자 입장에서 함께 뛰는 동료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고 각오를 밝혔다. 오 원장은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3·3·3'을 강조한다. 3개월 안에 기관 내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원장 본연의 업무에 주력해 3년 임기 동안 3개의 세계적인 연구그룹과 연구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오 원장은 생명연의 산 역사로도 불린다. 생명연의 모태인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전공학센터가 세워졌을 당시부터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이후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생명연과 함께 했다. 오 원장의 젊음, 그리고 열정이 생명연에 쏟아부어졌다. 그만큼 그에게 생명연은 남다른 애정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원장 공모 기간에 많은 고민을 했었죠. 10년 동안 프론티어 사업단을 이끌어왔고, 지난 9월에 끝났거든요. 집에서는 그만 하라고 하더군요. 너무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데 연구소 상황이 눈에 들어왔어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 말고도 다른 분들이 해도 잘하셨겠지만요." 취임 이후 첫 날은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 견딜 수가 없었다는 오 원장. 생명연이 직면해 있는 문제들을 직접 마주하고보니 실망감이 들었던 것. 그는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기존에 있던 일들이 그냥 넘어가다 보니 문제들이 양산됐다"며 "전쟁에서 이기려면 장군부터 병졸까지 동일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생명연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생명연 정상화 프로젝트는 기술경영에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오 원장이 기술경영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프론티어 사업을 이끌어 온 10년 간 기술경영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는 오 원장은 "생명연의 보직자들을 기술경영의 전문가로 만들 예정이다. 쓸데없는 교육 대신 경영 분석을 통해 효율적인 생명연 경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발품팔고 돌아다니겠다"…'따뜻한 카리스마' 발휘 강조

연구원 시절 오 원장은 일반 연구원들에게 거목같은 존재였다. 일에서는 정석이었지만 뒤에서는 참고서같은 사람이었다. 앞에서는 카리스마 있게 이끌었고, 뒤에서는 그들이 분출할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주었다.

오 원장은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없다. 발품을 많이 팔고 돌아다니면 된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나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말을 해주면 된다"며 "보통 사람들은 출구가 없다 생각하면 발악적인 행동을 한다.

출구를 만들어주면 그런 행동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자로서의 덕목과 행정가의 덕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 원장과 프론티어 사업단을 함께 이끌었다는 한 박사는 "보통 이공계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법이 미숙하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 오 원장의 추진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며 "가지와 잎만 무성했던 생명연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원장이 됨과 동시에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시작했다. 일단 자리에 앉아 있질 않았다. 행정부서를 돌면서 직원들과 마주보며 인사를 했다.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오 원장은 "아직은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진심에 대해 호응을 조금씩 주시는 것 같다"며 "일에서는 강하게, 아닌 곳에서는 따뜻하게 대하면서 능력을 발휘해 볼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직원들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한대 토론회'도 계획 중이다.

그는 "미국의 대기업이 변화를 꾀할 때 했던 것이 바로 무한대 토론회다. 충분히 들어주고 이야기를 한 후에는 변화에 대한 접근 자세가 달라진다"며 "무한대라는 시간적 압박감에 눌려 제대로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연구원 자체 내에서 시도해보려고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 대형연구과제 없이 운영 힘들다…세계적인 연구그룹 육성 시동
 

▲오 원장의 목표는 강한 연구소다. ⓒ2012 HelloDD.com
"연구개발 측면에서 봤을 때는 우리가 기술 정책과 기획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단기 과제 위주여서 대형 과제 도출이 안되고 있죠.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대외 경쟁력도 하락되고요.

계속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까 '너희는 도대체 무엇을 하냐'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 사스 등 국민들이 불안해 할 때 아무 역할도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죠." 오 원장의 시선에서 본 생명연은 연구개발 측면 뿐만 아니라 경영 관리 측면에서도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조직의 방향성이 개인의 방향성과 불일치 하다 보니 연구에 대한 몰입도가 크게 떨어졌다.

연구 분야에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이 안되다 보니 국내 구심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연구원들이 피로감과 타성에 젖어있다. 작은 과제만 수주되다 보니 자잘한 행정업무가 늘어나게 되고, 같은 일을 수십 번 반복하는 상황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며 "재미도 없고, 동기유발도 될 수가 없다.

비효율적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소통강화로 조직 안정과 목표의 일체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가 내세운 것이 바로 '바이오 융합을 주도하는 창조적 글로벌 연구원'을 위한 4개의 액션 플랜이다. 4가지 전략은 바로 리더십 강화와 핵심역량 강화, 미래도전 융복합, 소통과 안전이다.

이 전략을 통해 강한 연구소를 만들자는 게 그의 현재 목표이자 바람이다. 오 원장은 "국가를 위한 대형원천기반 과제, 국민을 위한 국가 인프라 과제, 조직을 위한 복합과제를 추진해 국내외 패러다임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나갈 예정이다"라며 "이를 위해 규모에 따른 책임 운영방식을 도입해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해 나갈 계획이다.

평가에 의한 철저한 일출일몰제를 도입해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중간인 연구를 도입해 실용화 가능한 플랫폼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를 위해 국내외 우수대학 및 연구원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 방안을 도출하는 한편, 과감한 아웃소싱을 추진해 적극적인 기관 운영 태세를 갖춘다는 전략이다.

세계적인 글로벌 연구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도 이미 세워뒀다. 일명 '세계 선도 탑 그룹'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는 "융합을 하려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건 좋지 않다. 생명연과 스타 연구그룹들이 협업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최고 수준의 우수 연구자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3년 안에 인재를 육성한다는 게 힘든일이기는 하지만, 지속해서 지원을 해나갈 생각이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국책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방안도 계획 중이다. 오 원장은 "벤처·중소기업들이 모르는 것들이 많다. 우리 연구원이 답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다"며 "'바이오 신문고' 형식의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기업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모르면 직접 질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착해 나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명연 직원들을 향한 격려와 당부의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다면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는 대형 원천기반기술을 주도하는 연구원, 국민을 위해서는 바이오산업 경제를 주도하는 연구원, 그리고 직원 여러분들께는 미래가 보장된 안정된 연구원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지난 우리의 허물과 과오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희망찬 미래로 전진합시다."
 

▲생명연 정문에 걸린 오태광 원장의 취임인사 플래카드. 생명연이 해결해야 할
과제와 오 원장의 의지가 엿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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